불편한 동거
나와 짝꿍(=신랑), 나와 엄마, 엄마와 짝꿍 사이. 그러다 때로는 아이들까지 여기에 끼어든다.
(아마도) 고부관계만큼은 아니지만 사위와 장모 사이의 갈등도 만만치가 않다.
갈등은 마치 땅속에 파묻혀 있는 지뢰처럼 집안 곳곳에 몸을 낮춘 채 도사리고 있다. 누군가가 건드려 주기만을 기다리면서.
많은 다툼들이 그러하듯 집안 내 갈등도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기름기가 덜 빠진 설거지감, 취향이 맞지 않는 물건들, 보일러를 켜고 끄는 문제와 흐린 날 돌아간 세탁기 같은 것들에서.
나와 짝꿍의 경우, 집안이 들썩일 정도로 크게 다투고 난 뒤에도 돌아서면 금방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웃으며 일상으로 돌아가곤 한다. 가장 심각한 갈등 관계는 엄마와 짝꿍 사이다.
내가 보기에 엄마와 짝꿍은 너무도 판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몇십 년을 그렇게 살아온 두 사람은 성격이 바뀌거나 개선될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결정적인 문제는 둘 사이에 대화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간혹 둘 사이에 대화라고 하기 힘든 말의 파편들이 오가기는 한다. 그것도 '나'를 통해서.
오랜 기간의 동거에도 불구하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엄마에게 사위는 여전히 불편한 존재이고, 그런 마음은 평소 짝꿍을 대하는 엄마의 태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짝꿍도 그런 엄마가 편할 리 없다. 싹싹한 성격과는 다소 거리가 먼 경상도 남자인 짝꿍도 특별히 애써서 엄마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딸을 통해 자신에게 하고픈 말을 전하는 장모에게 자신도 와이프를 통해 말을 전하는 것이 장모의 입장에서도 더 편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평소엔 이런 '한 다리 건넌 대화'가 크게 문제 되진 않는다. 그러나 숨어있던 갈등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상황을 필요이상으로 악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사소한 일도 심각한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반영구 미제사건'으로 남겨버리며.
최근에는 세탁물을 둘러싸고 그만 갈등이 터져버렸다. 세탁을 할 때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는가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평소 짝꿍은 세탁하는 순서를 중요시한다. 급하게 세탁해야 할 빨랫감이 있으면 일정양의 세탁물이 차기 전에도 세탁기를 돌리고, 양이 차더라도 이불같이 급하지 않은 빨래는 후순위로 미루고 다른 빨래를 먼저 한다.
엄마는 그 반대이다. 엄마에게 중요한 건 빨래의 선후 관계보다 세탁물의 양이다. 엄마에게는 빨랫감의 부피가 일정 이상 쌓이면 무조건 세탁기를 돌려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이전에도 세탁물을 둘러싼 사소한 신경전은 있어왔지만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지 않으며 무마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무마'된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무시'되며 넘어간 거였고,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못한 채 묵힌 갈등은 결국 '돌아간 세탁기'를 앞에 두고 터져버렸다.
처음에는, 역시나, 나를 사이에 두고 말이 오고 갔다. 그러다 감정이 격해졌는지 두 사람의 말은 톱니바퀴라도 단 듯 까칠까칠해졌고, 나는 마치 양편에서 날아오는 배구공의 강스파이크를 얻어맞은 네트가 된 것처럼 기분이 너덜너덜해졌다. 급기야 서로의 날 선 말을 둥글여 전하는 것에 넌덜머리가 난 나는,
"그럴 거면 둘이 직접 얼굴 보며 얘기 나눠!"라고 말하며 폭발해 버렸다.
결국 두 사람은 나를 거치지 않고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한 채 세탁물 신경전을 벌이게 되었고, 나는 고성과 삿대질이라도 오가는 건 아닐까 우려했지만,
어라, 상황은 급커브를 돌아 내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간 내가 쌓아왔던 걱정과 화가 허무해질 정도로.
'제가 부족했습니다...' '내 탓이다...'라는 자신에게로 책임을 돌리는 말들이 오가기 시작하더니 궁극에는 '앞으로는 얼굴 보며 대화를 나누자'는 훈훈한 분위기로 마무리되었다. 그것도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 소설로 치자면, 개연성 없어 보이는 급작스러운 결말로 인해 독자들의 불만을 야기시키는 쉬운 결말 같았달까.
물론 서로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자신의 마음을 다 드러내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다시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갈등의 크기는 조금 더 작아져있으리라고 나는 믿고 싶다.
결국 해결의 열쇠는, 불편하더라도 서로 눈을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는 것에 있었다,라고 결말을 짓고 싶다. 이렇게 ‘불편한 동거’의 한 고비 한 고비를 넘기며 '불편'에서의 '불'을 희석시켜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당사자들은 불만을 제기할 성급한 나의 결말일지 모르겠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