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인생이 꼬여버린 데는 할머니의 지분이 크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3.1 운동이 일어나기 직전 경상북도의 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여장부 스타일의 할머니는 아가씨 시절 동네 총각들에게 그다지 인기가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고 한다.
어쩌면 할머니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20세기 초반은 씩씩하고 생활력 있는 여성보다 조신하고 참한 여성이 훨씬 더 대접을 받았던 때였으니.
열아홉 노처녀로 늙어가던(?) 딸자식 때문에 노심초사하던 증조부는 지인의 아들이자 할머니보다 두 살 아래인 외할아버지를 할머니의 짝으로 눈여겨보았고, 큰 하자가 없는 총각이면, 어떻게든 딸자식을 넘겨버려야겠다고 다짐했던 모양이다.
심지 굳은 여장부였던 할머니에게는 이성을 보는 치명적 단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할머니가 지극히 '외모 지상주의적'인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할머니는, 다른 건 어찌 되었든 간에, 잘생긴 청년이었던 할아버지에게 마음을 빼앗겼고 할아버지와 기꺼이 평생의 연을 맺었다. - 그 당시 열일곱이었던 할아버지에게는 이성을 보는 식견이랄 게 따로 없었던 듯하다 -
문제는, 할머니의 이성을 볼 줄 모르는 좁은 식견이 딸의 짝꿍을 선택하는 데도 고스란히 영향력을 끼쳤다는 사실이다. 젊은 날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데다 이따금 폭력적이기까지 했던 할아버지로 인해 고생을 했으면서도 할머니가 남자를 보는 눈은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던 듯하다.
엄마에게는 결정적 흠이 하나 있었다. 얼굴에 남아있는 '마마 자국'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결혼적령기였던 70년대는 결혼을 앞둔 여성의 '외모'가 그 어떤 자질과 능력을 능가하는, ‘으뜸 가는 자산’으로 간주되던 시기였다.
위와 같은 연유로 할머니는 그 옛날 증조부의 선택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사지육신 멀쩡한 총각이 엄마에게 호감을 표시하면 흔쾌히 딸을 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제법 반반한 얼굴을 한 청년이 엄마를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빠였다.
할머니는 딸을 쫓아다니는 청년이 어떤 사람인지 - 이를 테면 사고방식이나 가치관 같은 것들 - 제대로 파악해 볼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엄마에게 결혼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어디 가서 엄마가 그만한 인물의 청년에게서 구애를 받기는 어렵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내가 판단하기에 아빠는 엄마를 사랑한 게 아니었다. 가시적 성과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아빠는 엄마의 탄탄한 직장과 경제력에 끌렸던 것뿐이었다.
거기다 할머니까지 적극적으로 본인의 편을 들어주었으니, 아빠의 눈에는 여성으로서의 엄마보다 엄마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들에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꼈을 거다.
엄마는 아빠를 만나며 '싸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이 남자랑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처음부터 아빠를 마음으로부터 멀리 밀어냈다고도.
하지만 엄마는 결국 억센 할머니의 강압을 이겨내지 못했다. 시집 안 가고 노처녀로 늙어가는 딸년이 창피해서 살 수 없다는, 독기 어린 할머니의 신세한탄 앞에서 엄마는 결국 자신의 의지를 꺾고 아빠와 평생을 약속했다. 아빠와 사는 동안 엄마는 자신의 육감이 옳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고, 때때로 할머니를 원망했다.
나는 그런 엄마가 답답했다. ‘바닥에 드러누워 시위라도 하고 안되면 집이라도 나갔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본인의 평생이 걸린 문제에 그런 식으로 굴복해 버린다는 게, 그러고 나서 후회와 원망을 안고 살아간다는 게 바보 같았다.
나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였다. 짧지 않은 시간 만났던 그와 헤어져야겠다고 내가 바닥에 드러누워 몸서리쳤던 이유가. 길바닥이었으면 더 좋았으련만 소심히 거실 바닥에 ‘대’ 자로 드러눕고야 말았지만.
수련의였던 그를 엄마는 좋아했다.
사람이 좋았다기보다는 그가 가진 타이틀에서 안정감과 만족감을 느꼈으리라. 엄마는 아빠가 엄마에게 주지 못했던 - 경제력이나 간판 따위의 - 것들을 가지고 있는 그를 놓치기 싫어했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그를 보내버리고 싶었는데 말이다.
나는 그를 만날수록 만남을 지속하면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와 평생의 인연을 맺으면 내 인생이 내 뜻과는 반대방향으로 흘러가리라는 확신이 커져갔다.
의사가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온 가족이 그만 쳐다보며 사는 집, 그가 선택할 여자에 대해 갑질을 할 준비가 되어있었던 사람들과 평생을 엮여 시들시들하게 나이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안 되겠다'라고 판단하게 된 이유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가 몹시 우유부단한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에 대한 미련을 차마 버리지 못했다. 할머니의 잘못된 고집으로 망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며 평생을 회한 속에 살았던 엄마는 내게 같은 길을 걸어갈 것을 요구했다. 할머니만큼은 아니었지만 엄마의 고집은 꽤 끈질겼고 설득은 요원해 보였다.
그때의 엄마는 내 생각과 의지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 같았다. 엄마는 나를 그저 인생을 잘 알지 못하는 ‘철부지’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인생을 안다'는 것이 반드시 인생을 살아온 시간과 정비례하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와 함께하면 딸이 꽤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의 판단만을 옳다고 굳게 믿으며 내 미래를 결정하려는 엄마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온몸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
어린 시절에도 장난감 사달라고 땅바닥에 드러눕는 시연 한번 해보지 않았던 내가, 성인이 되어서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엄마 앞에서 반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발버둥 치며 시위를 했다. 나는 내 인생을 살겠다고. 결코 엄마처럼은 살고 싶지 않다고.
그러고 난 후로도 나는 꽤 오랜 시간 이날과 유사한 각오와 자세로 엄마와 시시때때로 부딪혀야 했다.
20대의 나는 돈 좀 없어도, 그깟 '사모님' 소리 못 들어도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리고 결국 내가, 이겼다. 내 인생이 달려있는 엄마와의 전쟁에서.
나는 삼대에 걸쳐 내려올 뻔한 이성의 흑역사를 그렇게 끊어냈다.
장모님과의 불편한 동거를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사위와 평생의 연을 맺었다.
후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