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네 살 터울의 큰 이모는 엄마와 마찬가지로 일흔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망한 결혼 생활'로 고통받고 있는데, 여기에도 외할머니의 '외모 지상주의'가 큰 역할을 했다.
인물이 좀 되던, 그 당시(유신시대) 절대권력의 중심인물들을 배출했던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큰 이모부가 때깔 나는 군복을 입고 큰 이모와 함께 외갓집에 첫인사를 간 날, 할머니는 너무도 만족스러웠던 나머지 이모부를 사윗감으로 검증해 볼 생각도 못한 채 환한 표정으로 엄지 척을 들어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육사출신의 군인이었음에도 너무 유순한 성격을 지닌 큰 이모부는 기 세고 막무가내였던 부모님과 동생들로부터 큰 이모를 보호해주지 못했고, 결혼 이후의 이모는 시가 식구들에게 맞서며 점점 투사가 되어갔다. 그러던 언제부터인가 이모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불면증에 걸려버렸고, 의사에게 처방받은 수면제에 의지해 겨우 밤잠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엄마 얘기를 들은 큰 이모가 엄마에게 수면제를 추천하며 시작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는 수면제에 의지하지 않고도 하루에 다만 몇 시간 정도는 잠을 잤다.
그런데 큰 이모에게서 수면제의 효과를 들은 후, 큰 이모가 동생을 향한 측은지심으로, 의사 처방 없이 선뜻 나눔 해준 수면제 한 두 알을 받아먹기 시작하며 엄마는 수면제의 늪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십 년도 더 넘게, 물론 이제는 의사의 처방을 받아, 수면제를 복용하면서 엄마는 수면제 없이는 단 한 시간도 제대로 잘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심각한 사실은, 수면제에 오래 의지하다 보니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부작용은 늦은 밤 ‘폭식’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평소의 엄마는 식탐이라고는 없는 사람이다. 딱히 좋아하는 음식도, 무언가를 맛있게 먹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런데 수면제를 장기복용하면서부터 거의 매일 자정 무렵이면 냉장고를 뒤적인다. 자기 전 수면제를 먹고는 반쯤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맛나게 생긴 음식이 보이면 두 손 가득 챙겨서는 방으로 들어간다. 걱정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라도 엄마가 배불리 먹으니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상황은 이 정도 선에서 그치지 않았다.
엄마는 같은 양의 잠을 자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양의 수면제를 필요로 했다. 의사가 한 번에 반알씩만 먹으라고 처방해 준 알약을 어느 때는 한알, 그래도 잠이 안 오면 두 알을 먹었다. 나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단지 엄마의 행동이 점점 더 이상해진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싱크대 위에 올려둔, 포장도 안 뜯긴 수제비누를 쿠키인 줄 알고 갉아먹은 뒤 기억을 못 했을 때도, 새벽과 늦은 밤 시간을 구분 못하고 부엌을 서성일 때도, 가스레인지에 불도 켜지 않은 채 프라이팬에 고기 굽는 시늉을 하고 있을 때도 그저 엄마가 약 기운에 정신이 흐려져 순간적으로 착각을 했겠거니, 여겼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의 상황들은 단순히 엄마의 착각으로 일어난 것이라고 하기엔 공포스러운 지경으로까지 치달았다.
엄마는 자꾸 죽은 아빠가 눈에 보인다고 했다. 아무 말도 없이 방구석에 서서 엄마를 노려보며 서 있는 아빠가. 그러다 어느 날엔, 흰 옷을 입은 손님들이 엄마방에 머무르다 둘째 아이방으로 건너가는 걸 봤는데 별일이 없었냐고 물었다. 그 순간 내 생애 처음으로 엄마가 무서워 보였다. 그리고 두려웠다. 죽은 사람이 자꾸 보인다는 건 엄마 곁으로 죽음이 가까이 다가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며. 그때가 새벽 네 시쯤이었다. 결국 그다음 날 우리 부부가 회사에 출근한 뒤 집에서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둘째 녀석과 함께 집에 있던 엄마가 둘째가 보는 앞에서 기절을 한 것이었다.
당시 여덟 살 꼬맹이었던 둘째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아이는 충격이 심했는지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결국 엄마는 구급차에 실려갔고 나는 황급히 조퇴를 하고 병원으로 뛰어갔다.
엄마의 수면제 과복용에 대해 알게 된 건 그렇게 간 병원에서였다.
의사는 엄마에게 이렇게 수면제를 마음대로 늘려먹다가는 큰일이 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엄마에게 진짜 죽고 싶은 거냐고, 그렇게 억울하게 인생 마감하고 싶은 거냐고, 소리를 높이며 화를 토해 냈다.
그날부터 꽤 오랫동안 둘째는 수시로 할머니방 문을 열고 할머니가 잘 있는지를 감시했고, 나는 둘째 핑계를 대며 엄마를 계속 협박(?)했다. 어린 손주를 가슴 졸이게 만드는 할머니가 되고 싶냐고, 둘째가 엄마 때문에 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문제 생기면 어떡할 거냐고.
다행히 그 이후로 몇 해가 지난 지금까지 무시무시한 상황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고 있다.
엄마는 비록 수면제를 끊지는 못하고 있지만 더 이상 과복용하지는 않는다. 방구석에 서 있는 죽은 아빠가 보이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