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잡지를 읽어줘야 해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거든요...
영화 비포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비포 미드나잇(Before Midnight), 2013>에 나오는 대사 중 일부다. 부부가 된 셀린(줄리 델피)과 제시(에단 호크)의 약간은 장난스러운 대화 중 셀린이 소설가인 남편을 향해, 소설만 읽고 살 수는 없다는 의미로 하는 말이다.
나도 이 대사에 적지 않게 공감한다. 어쩌면 그렇기에 내가 잡지 수집에 꽂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조명, 재즈, 클래식, 패션, 스릴러, 여행, 노동, 낚시, 바둑 등 셀 수도 없이 다양한 인생의 영역들이, '지루한 삶'을 '살아볼 만한 삶'으로 일궈가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들이 잡지 속에서 생동하며 우리의 눈과 귀를 활짝 열어젖힌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땅 위 수많은 사람들이 엮어가는 일상 속 보석 같은 삶의 조각들이 곱다랗게 담겨있는 곳. 그것이 바로 잡지(책)이다.
그러니 동시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잡지에 관심을 기울이면 된다. 영화 속 셀린의 말처럼. 적은 돈과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들이고도 내가 한 번 보지도, 얘기 나누지도 못한(할) 사람들의 삶을, 열정을 현장감 넘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잡지 수집러로서 한때는 십 여종에 달하는 잡지를 구독하고 사 보았지만, 경제적인 부담으로 인해 요즘은 잡지에 들이는 비용을 줄여가고 있다. 그래도 차마 끊지 못하고 구독을 이어가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이 글을 읽는 이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가볍게 소개해보고자 한다.
* 컨셉진 / 월간지
속담으로 치자면 '작은 고추가 맵다'에 딱 들어맞는 잡지라는 생각이 든다.
크기가 딱 성인 여성의 손바닥만 한 이 잡지를 보다 보면 마치 아기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 작은 곳에 어찌 이리도 알찬 내용들이 오밀조밀 엮여있는지 감탄스러울 지경이다.
2012년에 창간되었으니 올해로 12년 차에 접어든 중견 잡지인데, - 한 해에도 수많은 잡지들이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면 - 그 자그마한 몸집으로 짧지 않은 역사를 일궈온 것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힘든 과정을 거쳐 지금껏 잘 버텨왔듯 앞으로 건재해 독자들이 '일상 속 작은 통찰'을 목격할 기회를 계속 제공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컨셉진은 스마트폰과 유사한 크기로 인해 출퇴근길 들고 다니며 부담 없이 읽기에 좋다.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대중 속에서 홀로 책을 보며 '차별성이 주는 묘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매달 한 가지 주제를 정해 주제와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이야기 속에서 '공감과 통찰의 시간'을 갖게 해 준다.
이번 달 주제는 '꾸준히 무엇인가를 하는 삶'에 관한 것인데, 꾸준히 헬스를 하고, 피아노를 치고, 일기를 쓰며, 주말마다 핸드드립 커피를 마치고, 심지어 꾸준히 바디로션 바르기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삶이 독자들의 마음을 톡, 하고 건드린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지나치게 작은 글자 크기다. 5-6포인트 정도 되는 글자 때문에, 노안이 오기 전 꾸준히 구독하며 읽어봐야겠다는 위기의식이 들 정도다.
* 작은책 / 월간지
평범한 우리 이웃인 노동자들이 직접 기록한 삶으로 꾸려지고 있는 잡지이다.
잡지에 실리는 글 대부분이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지 않은 현장 노동자들에 의해 쓰였기 때문에 다소 서툴고 투박한 느낌이 있다. 그러나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글이 주는 생생한 현장감은 그 어떤 잡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작은 책>만의 특징이자 강점이다.
<작은책>을 읽다 보면 우리 사회에 실로 다양한 노동자들이 있으며, 그들이 꿋꿋이 버텨주고 있기에 이 사회가 지탱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노동자가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안타까운 현실이 이 잡지로 향한 애정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것 같다. 우리 모두는 결국 노동자고, 그러므로 노동자가 업신여겨지는 사회는 결코 발전하지 못할 것이기에.
독자들의 투고를 환영하는 '참여형 잡지'이며, 그러므로 투고를 통해 글이 실릴 확률도 타 잡지에 비해 높으므로 관심이 있는 사람은 한번 도전해 볼 것을 (경험자로서) 추천한다.
*톱클래스 / 월간지
처음 이 잡지를 알게 된 건 내가 덕질하고 있던 아이돌이 표지 모델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 현재는 잡지 표지가 인물이 아닌 단색의 배경으로 단순화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구버전이 더 좋았다 - 사실 그때의 나는 표지만 건지면 된다고 생각했고, 표지 인물의 인터뷰를 제외한 다른 내용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이 녀석을 책꽂이에 오래 비치해 두고 보니 시간이 갈수록 점점 잡지의 ‘속’이 궁금해졌고, 결국 책장을 들추고야 말았다.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이 잡지는 각계각층 사람들의 인터뷰가 주콘텐츠인, '인터뷰 전문 잡지'라는 것을.
톱클래스도 컨셉진과 유사하게 다달이 하나의 주제를 관통하는 인터뷰들을 싣는다. 어느 달은 MZ세대가 열광하는 운동에 대해, 또 어떤 달은 위스키를, 또 다른 달은 책을 사랑하는 '애서가들'의 삶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톱클래스를 보다 보면 모든 사람 각자가 '하나의 책'과도 같다는 말이 실감 난다. 물론 개중에는 다소 자아의식이 비대한 자들의 자기 자랑에 가까워 보이는 인터뷰와, '내가 이렇게 했으니 여러분도 따르세요'하는 류의 계몽적인 어조에 심기가 불편해지는 글들도 있다. 그러나 작가, 가수, 피아니스트, 정치인과 일반인을 두루 아우르는 다채로움은 사람과 삶을 공부하는 데 유용한 안내자 역할을 해준다.
* 미스테리아 / 격월간지
추리소설과 스릴러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구독해 볼 것을 추천한다.
<미스테리아>는 격월간지로 한 가지 주제를 '매우 집요하게' 심층 분석해서 싣는다. 글씨나 편집 스타일이 예스러워 처음에는 다소 촌스러워 보일 수도 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힙한 레트로'의 향기가 강하게 느껴진다.
<미스테리아>를 읽다 보면 문득 과거로 돌아가 어두운 골목 한켠, 옅게 불 밝히고 있는 방구석에 앉아 함께 범인을 추적해나가고 있는 느낌이 몰려온다. 표지가 매우 감각적이라 인테리어 효과도 탁월하다. 멋진 '물성'을 마구마구 칭찬해주고 싶은 녀석이다.
<미스테리아>는 대형출판사인 '문*동네' 출판그룹에서 장르소설만을 전문적으로 출간하는 임프린트인 '엘릭시르'에서 출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정기구독을 할 경우 사은품이 푸짐한 편이다. '엘릭시르'는 매년 자체적으로 '미스터리 소설 공모전'을 개최하는데, 대상 수상 작품을 정기구독자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한정판 비매품을 손에 넣는 즐거움이 있다.) 또한 함께 주어지는, 자체적으로 제작한 탁상달력도 추리 스릴러 마니아들의 구미를 몹시 당길 만큼 매력적인 아이템이다.
잡지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무엇인가를 열렬히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취향의 집합체이자 정수'와도 같다.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굴러가는 일상을 지치지 않고 '살아내기'위해 우리는 잠재된 열의를 쏟아낼 대상을 끊임없이 찾아내고자 한다. 그러한 관심과 열의는 '취미', '덕질'이라는 이름의 옷이 되어 우리가 삶이 주는 혹독한 추위와 더위를 이겨낼 수 있게 한다. 살아갈 든든한 에너지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는 잡지의 형태를 통해 더 견고하고 반영구적으로 확장된다. 물론 잡지 그 자체가 덕질의 영역이기도 하다.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살아있는 삶'을 오늘도, 내일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누구든, 지금 삶의 어느 순간에 서 있든 상관없이 말이다.
잡지는 이렇게 삶을 애정하는 누군가에게 든든한 동반자로서 기꺼이, 손을 내밀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