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뉴 Apr 21. 2023

서점보다 도서관이 좋은 4가지 이유

스르륵, 부드럽게 문이 열린다.

익숙하고 향긋한 내음이 코끝으로 와락, 달려들며 기분 좋은 마중을 나온다. 새것이 주는 각성의 냄새가 아닌, 묵은 것들에서 은은하게 스며 나는 향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내가 사랑하는 책들로 가득한 곳.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나의 '최애' 공간, 도서관이다.



예전에는 도서관보다는 (대형) 서점을 들르는 경우가 더 많았다.

신간 서적과 베스트셀러들을 둘러보고, 새롭고 다채로운 책들로 가득한 곳에서 기분 전환을 하며 힐링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요즘은 서점을 덜 가는 횟수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도서관으로 향하게 된다.

여기에는 내 나름대로의 몇 가지 이유들이 있다.




1. 서가 사이를 '어슬렁거릴'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물론, 서점에서도 매대나 책꽂이 사이를 돌아다니는 기쁨이 있긴 하지만 도서관의 높은 서가 이곳저곳을 유유자적, 마치 양반이 된 듯한 걸음걸이로 어슬렁거리는 그 즐거움을 따라오지는 못한다.

서가에 빽빽이 꽂혀있는 책등(책의 옆면)에 시선을 주며 느긋하게 걷다 보면 일상에서 느끼기 힘든, '고요한 활기'라고 표현할 수 있을 법한 신선한 감각이 환기되곤 한다. 그래서인지 소설 <나는 농담이다>의 작가 김중혁은 작품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종종 도서관 서가를 어슬렁거린다고 한다.



2. 책들의 세계에서 소외계층에 속하는 책들을 더 친근하게 접하게 된다.

아무래도 서점은, 특히 대다수의 시민들이 즐겨 찾는 대형 서점은, 지극히 상업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개개의 독자들에게 필요할 '좋은 책' 보다는 '팔리는 책' 위주로 돌아간다.

수백만 원도 더 드는 홍보비용을 등에 업은 베스트셀러(혹은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진 책)들이 독자들의 시선을 끄는 매대를 가득 차지하고, 홍보비를 감당할 뒷배가 없는 '힘없는' 책들은 세상 빛을 보기도 전에 한 구석에서 책등만 보인 채 머물다 관심 한번 받지 못하고 사라진다.


그러나 도서관에서는 이 모든 책들이 동등한 입장에 놓여있다. 똑같이 책등을 보인 채 서서 독자들을 기다린다.

대형 출판사의 책이나 베스트셀러를 찾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런 책들은 도서관에서 그다지 큰 활약을 하지 못한다. 대출마저 매우 힘들어 독자들과 만나기가 쉽지 않다.

도서관의 책들은, 매대에 누워있을 때 중요한 책표지(얼굴) 보다는 책등에 적혀있는 제목이 함의하고 있을 내용(내면)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한다. '팔려야 한다는 지독한 경쟁’에 내몰려 있지 않아 돋보이려 애쓰지 않는다. '나를 선택하려면 하고 말려면 마라'라고 말하는 듯 한층 느긋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쫓기듯 생활하는 내게 훨씬 더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3. 외부로부터 강요된 수동적 취향이 아닌, 나의 주체적이고도 능동적 취향이 발전할 수 있는 곳이다.  

서점에서는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매대와 베스트셀러 코너를 점령하고 있는 '힘 있는' 책들에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기운도 그곳으로 집중되고 그 외의 곳으로는 쉬이 발걸음이 향하지 않는다.

그러나 도서관의 서가를 탐험하다 보면 이름 없는 작가의 작품이지만,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제목의 책이지만 어쩐지 마음이, 손이 이끌리는 녀석들이 있다. 그렇게 내 취향이 능동적으로 선택한 책들은 (내가) 페이지 하나하나를 더 정성스럽게 읽도록 만들고, 그 독서의 끝이 만족스러울 때면 '발견의 큰 기쁨'을 내게 안겨주기도 한다. 물론 때때로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그것조차 내 취향을 발전시켜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에 후회스럽지는 않다.



4. '순수하게 읽는 즐거움'을 위한 곳이다.

서점에서는 책을 훑어보는 것이 조심스럽다. 모든 책들이 새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흔적 없는 곳에 혹여 내 손때가 묻을까, 책이 구겨지지는 아닐까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오랜 시간 책을 붙잡고 있노라면 눈치가 보이고 그 책에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도서관에서는 이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도서관이 문 여는 시간 동안 이 공간에 있는 모든 책들이 내가 한껏 누릴 수 있는, 오롯이 나의 것이 된다.




청소년 소설 <체리새우 : 비밀글입니다>를 쓴 황영미 작가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캄캄한 시절 살기 위해 도서관 문학 서가에 꽂혀 있던 책을 거의 다 읽다시피 했다고 한다. 소설을 읽으며 상처를 견디는 법을 배우고, 막막했던 미래를 내다보기 시작했으며 삶과 죽음을 대면하는 지혜를 발견했다고도. 그렇게 그녀는 도서관 서가 독서로부터 시작해 글을 끄적이고 리뷰를 적다 나중엔 소설 쓰기에까지 이르렀고, 결국 '공모전 대상 수상'이라는 기쁨을 거머쥐며 작가로서의 새로운 삶을 맞이했다.



이렇듯 도서관은, 주머니에 동전 한 닢 없어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공간이자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는 곳이다. 내가 낸 세금을 알토란같이 활용한다는 보람도 덤으로 선사하니 어찌 이곳을 애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다.

당신이 즐겨 찾는 도서관이 언젠가 당신에게도, 미처 생각지 못한, 천금 같은 기회를 가져다줄지도 모를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찐 방탄회식’을 보며 지난 5년을 추억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