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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Jun 26. 2022

‘찐 방탄회식’을 보며 지난 5년을 추억하다

정거장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

지난 14일 '찐 방탄회식 영상'이 너튜브 방탄 채널을 통해 공개되었다.

영상이 공개되고 어마어마한 후폭풍이 일었다. 매스컴에서는 연일 방탄의 활동 중지에 관한 기사들과, 그 배경 및 이유에 대한 분석들을 쏟아냈다. 영상 공개 다음 날 하루 동안 하이브 주가는 24% 넘게 폭락해 2조 원 가까운 시가총액이 증발했고, 영상을 공개하기 전 주주들에게 먼저 활동 중지에 관한 '공시'를 했어야 하는 게 아니었나 하는 책임론까지 불거졌다.

소식을 접하고 방탄소년단의 영향력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말 한마디에 천문학적 숫자의 돈이 날아가 버리는 삶이란 얼마나 힘든 것일까 싶어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찐 방탄회식'이 공개되고 얼마 되지 않아 영상을 접했다. 몇 년 전 한 음식점을 빌려 찍었던 '방탄회식' 영상에 대한 좋은 기억이 남아 있어서 반가운 마음으로 영상을 재생시켰다. 무슨 얘기들이 오갈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평소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가는 조촐한 술자리 분위기를 즐긴다. 그래서 방탄소년단의 회식 영상에 더 애정이 갔다. 평소엔 팬으로서 스타와의 거리감을 어느 정도 느끼는데, 이 영상을 보다 보면 마치 이웃집 동생들의 가감 없는 얘기들이 오가는 자리 맞은편에 앉아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사실 요즘에는 예전만큼 방탄소년단 영상을 챙겨보지 않고 있었다. 내 생활이 바쁘기도 해서지만 한창 미친 듯이 덕질하던 시기에 비해 열정이 조금 가라앉은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들을 응원하는 내 마음이 변한 건 아니다. 매스컴에서 방탄 관련 소식이 들려올 때면 사정없이 머릿속 안테나가 서고 입꼬리의 각도가 급격히 올라간다.


이번 '방탄회식' 영상도 그런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상이 마칠 때쯤 난 거의 울 것 같은 마음이 되었다. 이날따라 날씨마저 우울했다. 영상이 끝난 후 창밖을 바라보는데 공허함인지 애처로움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정상의 자리에 서있는 지금, 멤버들은 오롯이 '자신'으로 잠시 살아보고 싶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한동안 완전체로서의 그들을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섭섭하기도 했지만, 멤버들의 눈물이, 그 심정이 이해가 돼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다. 그리고 미안하고 고마운 맘이 일었다.


이번 영상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들이 꽤 많이 들려온다. 잘 나가는 가수의 엄살 섞인 푸념처럼 보인다는 얘기, 개인 활동하기 전 어그로를 끌기 위한 것 아니냐는 얘기, 심지어 그룹을 해체하려는 수순 아니냐는 말까지...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충분히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지난 5년간 방탄소년단을 멀리서 지켜본 팬의 입장에서 지금 드는 생각을 얘기하고 싶다.




내가 처음 방탄소년단의 팬이 된 건 2017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방탄이 첫 공연을 하고 얼마 지나서였다. 그 무렵의 난 심한 공허감 같은 것에 시달리며 심적인 방황을 겪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방탄의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공연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호기심에 관련 영상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아주 우연히,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방탄소년단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많이 들어왔었고, 도대체 어떤 아이돌 그룹이기에 이렇게 아이들이 열광할까 하는 궁금증이 그전부터 있었다. 그렇지만 그룹 이름이 너무 이상해 보였고, 프로필에 떠 있는 멤버들의 사진이 학교에서 교사들 속 꽤나 썩였을 것 같은, 소위 '노는 아이'들 느낌이 물씬 나 (그 당시 다들 머리 염색을 형형색색으로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교사에게는 머리 염색이 진한 아이들은 일단 '노는 아이'로 보이는 직업병이 있다-_- ) 그냥 그렇고 그런 아이돌 그룹인가 보다, 고 생각했다.


그런데 호기심에 찾아본 너튜브 영상 속 열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그들의 무대에 '어라, 이건 뭐지...?' 하는 마음이 되었고,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난 덕질의 세계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처음 마주한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속 'DNA' 무대로부터 시작된 내 덕질은 '불타오르네' 속 절도 있고 파워 넘치는 춤사위와, 해방감마저 느끼게 하는 시원시원한 가사에 1000만 볼트 번개를 머리와 심장에 맞은 것처럼 폭발해버렸다.


그 이후로는 방탄 소년단의 공연 영상뿐 아니라 초창기 때 올렸던 소소한 일상 풍경 속 그들의 모습 (프로필상의 첫 이미지와 달리 정말 바르고 성실한 청년들이었다 )을 담은 영상까지, 너튜브에 뜨는 방탄 관련 영상이란 영상은 죄다 찾아서 봤던 것 같다. 그즈음부터 불면의 밤들이 이어졌고, 눈은 판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퀭해져 갔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마음만은 서서히 치유되어 갔다. 나도 모르는 새 마음속 공허감이 점차 수그러들었다. 학교에서도, 비록 좀 피곤하긴 했지만, 아이들과 더 열정적으로 소통하며 수업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멤버들과 함께 웃고, 울고, 그들을 아끼는 '또 다른 나'들과 소통하며 난 방황의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왔고 지금껏 건강한 일상을 누리며 잘 지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들에 대한 내 덕질의 열정도 조금은 사그라든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그들로부터 위로를 얻고 스스로를 치유하며 한 발짝 앞으로 나서 올 동안, 그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며 힘들고 지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제대로 한 번 쉬지도 못하고, '오롯한' 자신만의 삶은 접어둔 채, 팬들을 위해 달려온 그들. 정상의 자리에 서 있는 그들 앞에 그동안 달콤한 유혹들도 얼마나 많았을까. 그러나 늘 아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그리고 그 마음이 단지 말뿐만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을 성실하고 바르게 살아오며 행동으로 늘 보여줘 왔던 그들이다. 스스로를 잃어간다는 두려움과, 정상의 위치에 주어지는 엄청난 부담감을 이겨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버텨온 그들의 마음을 이번 영상을 보며 느낄 수 있었다.


문득 그들이 내게, 아마 다른 아미들에게도, 든든한 정거장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팬들은 그들의 '스타라는 정거장'에서 위로와 힘을 얻고 한 발짝 앞으로 더 나아갈 힘을 얻는다. 그렇게 떠나가는 자들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꿋꿋이 끝까지 머물러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다른 이들에게 늘 위로와 힘을 준다는 건 보람된 일이긴 하지만 정작 스스로를 잘 챙기지 못해 지쳐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그 자리를 지켜주고 있었던 방탄소년단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정거장이 되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도 잠시 떠났다 다시 돌아올 시간의 틈이 필요할 테니까.

문득 데뷔 초 첫(?) 콘서트를 마치고 난 직후 찍힌 방탄소년단의 영상 하나가 기억난다. 콘서트 후 밖에서 그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팬들을 향해, 차창 밖으로 고개를 쑥 내밀고 세상 가장 행복해 보이는, 소박하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손 흔들며 인사하던 지민의 모습이...


사실, 얼마 전 군대 관련하여 '진'이 인터뷰한 기사를 보고 맘이 불편했다. ‘Speak yourself’라며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라’고 얘기하던 그들이 정작 스스로의 목소리는 소신껏 내지 못하고 소속사의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병역문제에 대해 확실하게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던 멤버들의 말과 사뭇 대조적으로 보였다. 소속사 규모가 커지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가는 것이 아닌가 염려도 되었다.


방탄소년단 모든 멤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온전한 자신'으로 지내며 다시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듬뿍 얻어서 돌아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그때에는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소신껏 발언하고, 스스로의 삶을 즐기며 온전히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늘 그렇듯 멀리에서 마음속으로 그들의 삶을 응원하며, 그들이 완전체로서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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