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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Sep 02. 2022

K-클래식 현상과 한국인들의 감성

한국인의 DNA에 내재된 감성 (feat. 다소간의 국뽕적 요소)

유럽인들은, 아니, 최소한 우리 독일인과 오스트리아인들에게 한국인들은 '시칠리안'으로 불린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이 좋다...


위 글은, 최근 국내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K클래식 제너레이션'에 등장하는 한 독일 피아니스트가 한 말 중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위 작품을 감독한 벨기에 출신의 티에리 로로 감독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현장 중계를 25년째 맡고 있는 인물로, 2010년대 이후 각종 해외 클래식 콩쿠르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인들에 관해 끓어오르는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이번이 두 번째 작품인데 앞으로 세 번째 시리즈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K-pop에 이어 클래식계에도 'K-클래식'이란 용어가, 그것도 오랜 기간 클래식계에 종사하고 있는 외국인들에 의해 퍼져나가고 있는 모양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 3대 클래식 콩쿠르 중 하나로 꼽히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비롯해 전 세계의 저명한 클래식 콩쿠르에서 지난 20년간 한국인 700명이 결선에 올랐고 그중 110명이 우승했다고 하니, 그의 말처럼 이제 클래식 콩쿠르에서 한국인의 우승은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K-클래식’이란  말이 터져 나올 법도 한 요즘이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우승한 2022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도 준결선 진출자 12명 중 4명, 무려 3분의 1이 한국인이었다. 겨우 인구 5천만 남짓한 자그마한 나라가 이룬 결과로 보기에 실로 놀라울 만한 성과임이 분명하다.


티에리 로로 감독은 그의 다큐멘터리에서 이러한 현상을 이끌어내고 있는 원인들을 분석해 우리에게 제시하는데 그 원인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내 한국예술영재교육원으로 대표되는 체계적인 영재 (조기) 육성 시스템

2. 금호문화재단 등을 통한 적극적 영재 지원

3.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헌신적인 부모들의 열성적 교육열

그 외에 그는 목표 성과 지향적인 한국의 사회 교육적 분위기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의 주장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렇지만 그가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의 다큐멘터리 속 독일 피아니스트가 ‘한국인은 시칠리안'과도 같다고 한 표현 속에 K-클래식 돌풍의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시칠리안(Sicilian)은 이탈리아 남단의 지중해 연안에 위치하고 있는 시칠리아 섬 출신의 사람들을 일컫는다. 시칠리아는 마피아의 본거지-마피아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대부’ 시리즈의 촬영지이기도 함-로도 잘 알려져 있는 곳인데, 작열하는 태양과 에메랄드 빛 바다의 이미지로 대표되는 곳이며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으로 유명한 영화 ‘시네마 천국’의 배경이기도 하다.

시칠리아 인들은 낙천적이고 감성적이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고, 정이 많으며 다혈질의 기질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낙천적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한국인과 차이가 있는 듯 하지만, 감성적이고 정이 많으며 다혈질적인 면에서 그들과 한국인들과의 접점이 있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 경험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나이와 존칭의 문화가 걷힌 곳에서는 한국인들도 자신의 감정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실제 시칠리안과 교류할 기회가 있었다. 스코틀랜드에 머물렀을 당시 친하게 지냈던 친구 중 남부 이탈리아에서 온 아이가 있었는데 정 많고 다혈질에 종종 감성지수가 폭발하는 친구였다. 오히려 내가 이성적인 사람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어느 날 이 친구가 시칠리아 섬에서 온 친구가 있다며 내게 소개해주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남부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다혈질 및 감성 지수를 탑재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곳에 있던 일본인이나 중국인 친구들에 비하면 나도 '한 감성' 하는 인물이었는데, 이탈리아 친구들 앞에서는 명함도 내밀기 힘든 처지였다. 마치 우리들 간에 '감성 지수'의 부등식이, 시칠리아인 > 남부 이탈리아인 > 한국인, 과 같이 성립되는 것 같았달까.


우리는 노래와 춤을 좋아하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친구들과 어울리며 내 안에 잠재해 있던 한국인으로서의 감(수)성이 폭발했었던 것 같다. 여전히 성리학적 문화가 사회 전반에 짙게 배어 있는 곳에서 눌려져 있던 기운이 마치 이리저리 흔들린 콜라병 뚜껑이 열릴 때 거품이 '팡'하고 치솟아 올라오는 것처럼 터져 나왔다. 물론, 오랜 기간 유교권 문화 속에 길들여져 있던 나는 길을 가다 가게에서 나오는 음악에 급 흥이 돋아 엉덩이를 마구 흔들어대는 이탈리아 친구들의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터져 나오는 내 감성을 경험하며 그동안 내재하고 있던 본연의 내 기질이 많이 억압되어 있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내가 한국인 중에 특별한 경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실로 한국인들 안에는 이런 감(수)성이, 흥이 뿌리 깊이 녹아있는 것 같다. ‘한'의 정서를 능가할 정도로 말이다.


중국의 고대 역사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 편에도 나오지 않던가. 우리 조상들은 '술 먹고 노래하고 춤 추기를 잘한다'라고... 실상 한국인들만큼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민족도 드문 것 같다. 글로 생각을 '잘 표현'하는 자가 장원급제를 하고, 술 한 잔 걸친 채 술잔에 비친 달을 노래한 '이태백'이 낭만 좀 아는 시인으로 길이길이 기억되고, 죽음을 앞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이방원에게 저항하기보다는 문학적 감성 터지는 시조 한 수를 읊어대며 마음을 올곧이 표현한 정몽주가 추앙받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가 아니던가. 절대 왕권을 지녔던 영정조 시대 금주령도 백성들의 술 사랑하는 마음을 억제하지 못한 나라. 술 한 잔 들어가면 노래방으로 직행해 잘 부르든 못 부르든 흥을 돋우고, 트로트 한 가락이면 관광버스 안에서도 마구 어깨춤을 들썩이고, 술상 위에 놓인 젓가락들마저 화려한 리듬 악기로 변신해버리게 만드는 한국인들이 아니던가…




한예종 총장인 김대진 씨의 말-그는 인터뷰에서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을 맡았던 당시, 한국 학생들의 획일적 연주 방식을 보며 우리나라의 음악교육이 잘못됐음을 뼈저리게 자각했고 그 이후 개성을 깎아내지 않는 교육방식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2010년대 이전까지 한국인들이 클래식 콩쿠르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은 틀에 갇힌 교육이 한국인들의 풍부한 감수성과 표현력을 억압해서이기 때문이다. 마치 어른 공경과 존칭의 문화가 나이 어리거나 직급이 낮은 사람이 윗사람에게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드는 문화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 교육 방식이 바뀌게 되면서 내재된 잠재능력이 흡사 유전에서 석유가 분출해 올라오듯 폭발적으로 드러나 요즘의 이런 현상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예술은 무엇보다 감(수)성과 그에 따른 표현력이 중요한 영역이다. 2017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은 말한다. "(연주자는) 예민한 감수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요... 늘 신선한 감정 상태를 유지해야 좋은 연주가 나오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다소 억압적이고 획일적인 사회 문화가 보다 자유롭고 다채로운 방향으로 변화해 간다면, 풍부한 감성과 표현력을 DNA에 탑재하고 있는 한국인들은 앞으로도 K-클래식을 넘어, 사람들이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또 다른 문화적 역량과 폭발력을 계속해서 드러내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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