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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Aug 06. 2022

21세기 한국 드라마에서 셰익스피어의 향기를 느끼다

Feat. 얕게 읽은 셰익스피어

우와! 이 드라마 재밌는데! 왠지 모르게 셰익스피어의 향기가 난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하고 있는 김희선 주연의 <블랙의 신부>를 보고 난 후 나와 짝꿍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이실직고하자면, 우리 둘은 나름 영문학도 출신이지만 셰익스피어를 잘 알지 못한다. 현재 우리가 셰익스피어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는, 그가 16세기 영국의 스트래트포드 어폰 에이번(Stratford-upon-Avon-이름 참.. 그의 작품만큼이나 난해하다 -_-) 출생에 40편에 가까운 희비극을 쓴 인물이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리어왕>>, <<한 여름밤의 꿈>> 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드라마를 보고 셰익스피어 작품의 어렴풋한 '향기'정도만 느낄 수 있을 뿐이었고 구체적으로 드라마의 어떤 점이 우리에게 그런 느낌을 준 것인지에 대해서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드라마를 보고 난 후 문득, 영문학과 4년 차들이 이 모양이라면 이건 우리나라 대학 전공교육의 문제인 것인가, 아니면 셰익스피어가 한국인의 정서와 맞지 않는 것인가, 그도 아니면 짝꿍과 나에게 위대한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결정적 흠'이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 자신은 잘 모르겠으나, 짝꿍은 대학시절 강의시간이면 눈빛을 번뜩이던, 전공 공부를 꽤나 열심히 하며 교수님에게 허를 찌르는 질문도 서슴없이 던지던 청년이었고, 그 지적인 영민함에 내가 끌리기도 했던 인물인데 말이다.


드라마를 보고 난 그날 밤 기분이 고무되었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재미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난 후 내가 곧잘 느끼는 기분이다- 기분 좋게 와인 한 잔을 기울인 후, 술이 살짝 달아오른 기운에 취해 인터넷 서점에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충동적으로, 과감하게 구매했다. 그래, 인생은 희극보다는 비극이 더 가슴 절절하고 설명하기 힘든 생의 아름다움이 녹아있는 법이지,라고 읊조리며 책을 읽어본 후 이번 주 브런치를 쓰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런데 그다음 날 정신을 차리고 난 후, 집으로 날아든 <<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 왕>>을 받아 들고는 내가 술을 마시고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가, 싶었다.


그래도 이왕 구입한 거니 한 권은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가장 두께가 얇은 <<맥베스>>를 펼쳐 들었다. 첫 페이지부터 마녀들이 등장했다. 한숨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판타지적 요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장황하고 지극히 연극적인 중세시대의대사들이 끊임없이, 흡사 폭격기에서 쏟아지는 폭탄들처럼, 내 머리를 가격했다. 번역이 비교적 잘 된 경우라고 하는데도, 내 모국어로 적혀있는데도 불구하고 도무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물론 중간중간 썩 괜찮은 시적 표현들이 눈에 띄기는 했다.


어떻게 저떻게 꾸역꾸역 읽고 어리둥절해진 기분으로 역자의 작품 해설 부분을 세심히 읽어봤다. 역자가 언급한 이 작품(맥베스)이 훌륭한 이유는, '악행을 쌓아 올려 그 무게로 양심의 힘을 누르려는 과정에서 고통받는 맥베스의 고귀한 인간성'을 잘 그려내서, 라는 표현이 눈에 밟혔다. 이건 무슨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란 말인가. 난 이 '고귀한 인간성'이라는 말에 당최 공감이 가지 않았다. ‘아니, 도대체, 어딜 봐서…?’라는 의문만 계속 들 뿐이었다. 내가 이 글에서 보고 느낀 맥베스는 21세기의 비속어로 말하자면 '개**'에 가까웠지 '고귀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를 '인도'라는 한 나라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오만방자함을 떠는 영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나의 이러한 감상평은 분노를 느낄 가치조차 없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허나, 그 위대하다는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작품을 두고 '감정 쓰레기통'이라고 혹평하는 우리나라의 유명 작가가 있는 것처럼, 작품 해석은 그것이 아무리 명작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더라도 개인의 자유 영역에 달려있는 것일 테니 나도 내 자유의지대로 셰익스피어에 대해 얘기해보련다.


돌이켜보니, 내가 21세기 우리나라 드라마를 보고 셰익스피어의 향기를 느꼈던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몇 년 전 Jtbc에서 방영한 <스카이 캐슬>과 <부부의 세계>(영국 BBC 드라마 ‘ 닥터 포스터’가 원작)를 보고 난 후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이, 개인적으로 셰익스피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향기가 느껴지는 드라마들에서 매력을 느낀다는 점이다. 도대체 왜 나는 이 모순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이유를 도출하게 되었다.


첫째, 내가 앞서 언급한 드라마들과 셰익스피어 작품의 공통점은 '죽음을 품고 있는 막장' 스토리라는 것이다.

위 작품들은 일단 주인공이나 주인공과 매우 가까운 인물이 죽어야지만(자연사 제외) 이야기가 진행, 완성된다. 독살이나 칼로 찔려 죽든(셰익스피어 작품들), 스스로 떨어져 죽든(블랙의 신부), 누가 밀어서 떨어져 죽든(부부의 세계), 총으로 쏴 죽든(스카이 캐슬) 말이다. 이야기 전개에서 등장인물의 극단적인 죽음만큼이나 감정을 격렬하게 자극하는 극적 장치도 없다.


둘째, 고급진 음악과 미장센이 이야기를 받쳐준다.

본 사람들은 느꼈겠지만 <스카이캐슬>과 <블랙의 신부>는 배경음악이 매우 유사한데, 공통적으로 약간 암울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이 살아있다. 셰익스피어의 경우엔 대부분의 중세의 연극이 그러했듯 중간중간 매력적인 음악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는 대체로 왕족이나 상류층 귀족이 주인공이어서 배경이 화려하다. <블랙의 신부> 등도 21세기를 살아가는 보통의 서민들이 접하기 힘든 최상류 층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함으로 인해 , 드라마 세팅이  '또 다른 세상'의 이미지를 품은 한 주인공으로서 굉장히 호사스럽고 자극적으로 펼쳐진다.


셋쩨, 인간의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감정이 극한으로 치닫고 관객(시청자)들로 하여금 내적 카타르시스가 폭발하게 유도한다.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며 그리하여 인간 심리의 가장 근원적인 부분을 건드린다. <블랙의 신부>나 <스카이 캐슬>을 보다 보면 처음엔 약간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 세팅과 대사들에 살짝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결국 그 상황에 묘하게 빠져들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저 나쁜 자식 죽여 버려!'라고 부르짖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중세시대 유럽의 왕궁이 21세기 한국의 상류층 집안으로, 권력에 눈먼 임금이 자식의 입시에 목매는 아버지로 바뀌어 등장한다. 허나, 그들의 허영, 욕망의 크기와 가면의 형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결론 내린 17세기 셰익스피어 작품들과 21세기 한국 드라마-스카이 캐슬, 블랙의 신부, 부부의 세계-의 가장 큰 공통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비록 위 작품들을 ‘막장'이라고는 얘기했지만 '김치 싸대기'류의 '개막장'과는 확실히 결이 다르다. - 물론 이런 류의 이야기 전개가 주는 나름의 통쾌함도 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지점에서 최소한 내가 ‘저급한 그 무엇’에 내 소중한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니, 고급진 막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서 '막장'의 '막'은 인간 감정의 극한과 닿아있다. 우리 모두 가슴에 내포하고 있지만 일상을 살면서 잘 발견하고 끌어내지 못하는 이 '막장'의 감정들이, 드라마를 통해 비로소 수면 위로 드러나 폭발하고 그로 인해 우리는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뭐라 설명하기 힘든 감정의 해소와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작가인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위에 언급된, '멋스러운 막장' 드라마 작품들의 작가나 연출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셰익스피어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확신이 든다.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이런 이야기들은 끊이지 않을 것이며, 셰익스피어는 앞으로 탄생할 수많은 이야기들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며 ‘고급 막장 드라마’의 원조(시조)로서 인류가 머무는 시대와 함께 살아나갈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셰익스피어는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작가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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