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의 블랙하우스 리뷰
이 사실만으로도 블랙하우스는 이미 한 수 먹고 들어갔다. 그동안 나는 꼼수다, 뉴스 공장 등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거침없는 독설과 사회에 대한 날선 비판으로 두터운 팬층을 얻었던 그가, 권력에 장악된 메인 언론의 대척점에서 그들을 비판하고 성역 없는 취재를 해오고 알려왔던 그가, 메인 언론사의 대표 축인 SBS의 메인 MC로 나오는 것만으로도 비로소 정권이 바뀌었음을 실감하게 된 부분이었다.
사실 나는 꼼수다나 뉴스공장을 구독해서 들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김어준에 대해서는 똑똑하지만 삐딱한 반항아 이미지만 있었다. 그를 제대로 보게 된 건 블랙하우스가 처음이었는데 간단하게 기대 평을 말해보자면 김어준이란 사람에 대해서는 기대 이상이었고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다 담지 못해 한 두 개 튀어나온 장난감 통을 보는 느낌이었다.
블랙하우스는 1,2부로 나뉘어서 총 5개의 코너를 병렬적으로 보여줬다. 마치 모 기획사의 아이돌 그룹을 처음 봤을 때처럼 '네 취향이 뭔지 몰라서 일단 다 넣어봤어'의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청와대와는 다른 흑와대를 표방한 세트와 분위기 컨셉은 신선햇지만 사실 그 속에 꾸며진 프로그램은 어디선가 봐 왔던 시사 예능 프로그램을 김어준이라는 특색있는 사람을 넣어 차별화한 퓨전 요리의 느낌이 나는 건 사실이었다.
블랙캐비닛은 배정훈 PD와 함께 성역 없는 취재를 모토로 공기관이 수사를 못했거나 중단했던 사건들에 대한 탐사보도를 골자로 하고 있지만 사실 스튜디오로 옮겨온 그것이 알고싶다의 느낌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보다 훨씬 정치적인 이슈를 다룬 취재이며 내레이션과 진행자를 통한 시청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함께 취재한 PD와 패널 들이 대화하며 해설해줬다는 게 다르다면 다를까. 첫 화에 다뤘던 박근혜 전 대통령 5촌 살인사건은 목숨 걸고 취재했던 그 비화를 함께 듣는 다는 점에서 충분히 흥미로웠지만 공권력이 수사하지 못한 지점에 대해 설득력있게 전하는 스토리텔링 부분에 있어서는 다소 아쉬웠다. 워낙 많은 패널들의 첨언이 이어지다 보니 그것이 알고 싶다 보다 집중도가 떨어지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 기존 시사 프로그램과의 차별점을 두기 위해 가장 공을 들인 코너였던 것 같은데 매주 다루는 아이템에 많이 좌우될 것 같은 탐사보도의 한계점 또한 예상되었다.
이슈 벙커는 말할 것도 없이 JTBC의 썰전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코너인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패널과 메인 MC의 역할이 바뀐것 일까.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이 코너와 뒤에 나오는 비슷한 형태의 이슈 브리핑, 아는 척 매뉴얼 모두 공통적으로 김어준의 말과 의견에 모든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이슈 벙커에서는 메인 주제가 거의 트럼프는 미치광이인 것이냐 아니면 미치광이 전략을 쓰는 것이냐였는데 사실 이 주제를 위해 정신과 전문의 원장까지 데려다 놓고 이야기 한 의도와 그리고 메인 MC의 이야기 진행 방식은 이 프로그램의 한계점을 단적으로 보여준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김어준이기 때문에 화제성이 있었지만 그이기 때문에 편향된 진행과 보도를 할 거라는 사람들의 편견을 극복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사실 그 지점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 진행이 매력적이겠지만 이를 통해 자신만의 정치 시각을 갖고 정보를 얻고자 했던 성향의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피곤한 진행일 수밖에 없다. 썰전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논리가 팽팽히 맞서 시청자는 그들이 내세우는 논리를 받아먹으며 사안에 대해 한 발자국 물러서서 가치판단이 가능했다면 블랙하우스에서는 끊임없이 김어준의 시각에 편향되지 않기 위해 날 세워서 그들의 논리가 정당한지 불합리한 점이 없는지 스스로 찾아야 했고 결국에는 시사 프로그램에서 중립적인 가치를 상당히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사실 더 자극적인 소재를 갖고 오지 않는 이상 안티가 다수 생성될 수밖에 없고 대중적인 프로로 성장하기 보다는 팟캐스트처럼 마니아층을 형성하는 프로로 갈 수 밖에 없다는 한계점이 보였다. 사실 여기 이슈 벙커에서 만큼은 찬반이 분명한 사안과 공신력있는 패널을 두고 김어준의 말을 조금 줄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블랙코미디를 표방한 프로그램의 정체성과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게 본인의 업이고 그러기 위해 방송에 나왔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김구라와는 다른 좀 더 전문가스러운 진행을 바랬던 시청자로서는 다소 실망스러운 진행이 아니었나 싶다.
타일러와 알파고와 함께했던 아는척 매뉴얼은 그 취지와 방향이 신선하긴 했다. 사실 비정상 회담의 심도 있는 버전이었는데 해외 이슈에 대해 외국인의 시각을 보는 것은 이미 경험해 봤듯이 상당히 매력적인 포맷이다. 외신 보도와 그와 관련된 자신만의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취지 또한 좋았지만 여기에서도 김어준의 말을 좀 줄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이슈브리핑은 사실 강유미를 통해 시청자의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그럼으로써 이 프로그램의 취지를 알리고자 하는 의도가 컸던 것 같다. 정.알.못이라고 불리는 시사 프로그램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강유미의 성장 스토리(?)를 의도한 것이 아닐까 싶은데 사실 촛불 집회 1년을 돌아보자는 취지와 흑터뷰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아서 다소 산만하게 진행된 감이 없잖아 있었다. 이 부분은 앞선 이슈 벙커와 합쳐 강유미의 흑터뷰만 코너로 따로 빼서 살리는 게 프로그램 내에서도 색깔이 겹치거나 지루해지는 부분도 완화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은 독한대담인데. 사실 김어준씨의 강점이 가장 잘 발휘된 코너였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해서 잘 몰랐던 나도 그의 인터뷰를 보면 왠지 모르게 속 시원한 느낌이 드는데 거침없는 입담에 상대방이 속수무책 드러나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이 또한 의도가 된 그림이겠지만 그의 독하고 거침없는 캐릭터와 가장 잘 맞았던 지점이 바로 이 코너였다. 그의 말대로 JTBC의 손석희의 인터뷰는 상당히 잘 정제된 사회 이슈에 대해 신사적으로 논하는 화이트 인터뷰라면 이 독한 대담은 정제되지 않은 하지만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보여 지는 듯한 블랙 인터뷰의 표본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사실 각 코너에 대해 조목조목 얘기를 했지만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SBS에서 대단한 프로를 또 만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지상파에서 이런 대담한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선했기에 파급력이 더 컸다. 아마 제한된 러닝타임안에 무리하게 여러 코너를 넣은 것은 김어준이라는 독한 인물을 어떻게 활용 할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시도와 고민이었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코너가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공을 많이 들였고 완성도 또한 높았지만 정규물로 가기 위해서 제한된 시간이라는 제약을 어떻게 넘을 것인지가 관건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슈 벙커와 블랙캐비닛, 아는 척 매뉴얼 이렇게 세 축으로 가되 독한 대담과 흑터뷰를 이슈가 있을 때에 비 정기적인 삽입 코너로 넣는 건 어떨까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