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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정 Jun 09. 2015

거절과 거부, 그 사이에서-






한쪽이 한쪽에게 바라는 것이 있거나, 아니면 서로가 서로에게 뭔가 원하는 것이 있는 건 관계에 있어서 옵션처럼 따라붙는 일이다.


부탁을 받는 자에게 부탁을 들어줄 여력이 되고, 기꺼이 받아줄 여유가 있다면 그보다 좋은 관계는 없을 터.


이처럼 인간관계가 이것저것 잴 것없이 그저 산뜻하고 쿨하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에게 더 많이 허락되는 건, 마음대로 되는 것보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다.





관계가 불편해지거나 어딘가 삐그덕 거리는 경우는 보통 부탁 받는 자가 들어줄 만한 여력이 없어 부탁하는 자에게 부득이 거절을 해야할 때이다.


능력은 있으나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던가, 마음은 굴뚝같으나 들어줄 능력이 없다던가, 이유불문하고 어쨌든 거절하는 경우말이다.


거절당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은근히 자존심이 상한다. 거절하는 입장에서도 이것 참 난감하다.


그래서 부탁과 거절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모, 아니면 도다.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하거나 아니면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거나.




그러나 사실 부탁과 거절 자체는 죄가 없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 문제일 뿐.


잘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부탁할 권리가 있고 거절할 권리가 있다.


다만, 우리가 부탁과 거절이라는 메커니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그로 인해 관계에 드리워지는 그림자 때문이다.


부탁을 하는 입장이라면, 내 부탁으로 인해 저 사람이 난처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반 그리고 만약에 거절하면 자존심상해서 어쩌지,하는 마음반.


부탁을 받는 입장이라면, 내 거절로 인해 저 사람이 상처받을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그러면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거지, 하는 생각들.






나는 오랫동안 부탁을 하지 못했고 거절도 잘하지못했다.


부탁을 하지 못하는 건 거절 당할까봐 두려워서였고, 거절하지 못하는 건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내 부탁에 대한 상대방의 거절이, 내 존재 전체를 '거부' 하는 느낌이었기에 두려웠으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은, 그것이 능력 밖의 일이어서 손해를 본다 할지라도 무리하게 응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생각들은 관계를 매끄럽지 못하게 했고, 언제나 전전긍긍하게 만들었다.


항상 뭐가 마려운 사람마냥 어정쩡하게 서있기도 했다.


부탁과 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해 수많은 불면의 밤들을 보내야했던 시절.








이런 나에 비해 내친구 K양은 산뜻했다.


그녀는 부탁의 말미에 항상 단서를 덧붙였다.


'현정아 거절해도 돼. 힘들면 거절해도 된다잉.'

'네가 힘들다면 진짜 거절해도 괜찮아.'


그녀는 항상 관계에 있어서 자신이 찌질하다고 울부짖지만, 내가 아는 한 건강한 관계란 어떠해야하는 것인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어쨌든.




나는 그녀가 부탁의 끝에 항상 붙이는 이 말들로 인해, 거절과 거부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하던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건, 우리 사이에 무수한 부탁과 거절이 있더라도, 우리의 관계가 절대로 깨어지지 않는다는, 그러니까 거절해도 안전하다는 확신을 주는 말이었다.


그렇다. 관계를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게 만드는 '거절과 부탁'에서, '거절로 인해 내가 상처받을까봐 두려워하는 마음'과 '저사람이 날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욕망을 걷어내면 될 일이었다.


쓸데없는 걱정과 욕망을 걷어내면, 거절과 부탁은 '반드시 들어주어야 하는 어떤 부담스러운 것'에서 소통의 창구로 변한다.


부탁을 하는 이의 절절한 마음과 거절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마음이 만나는 소통의 창구.


부탁과 거절이 원활하고 자연스럽게 일어나면, 그것은 그것대로 건강한 관계가 되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거절 당하는 것과 내 존재가 거부 당하는 것 사이에는 일말의 관련이 없으며 거절하는 것도 나의 당당한 권리라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다.



내 부탁을 누군가가 거절하였다면, 상대의 능력이 그것을 들어주기에 조금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우치는 일일뿐이다.


자존심 상하거나 상처받아 울부짖을 일이 아닌 것이다.


내가 거절하는 건, 내 권리이므로 주눅들 필요가 없다.


그 과정에서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는 내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전할 의무는 따라붙겠지만.






거절과 거부를 구분할지어다.


아, 이 얼마나 산뜻하고 쿨한 결론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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