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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정 Jun 11. 2015

너는 너를 사랑하게  됐어?


_ 너는 너를 사랑하게  됐어?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가 이야기 끝에 던진 말.

 

자기도 무심결에 말해놓 질문이 하다고, 자기 술마신거 아니라며 깔깔 웃는다.


그래 그래, 이게 우리다운 대화지.


어떤 이야기를 하든 결국 이야기의 방향은 이런 으로 흐른다.





_ 나는 좋았다 싫었다 자꾸 그러고 있어.


고민하지 않고 대답해버렸다.




친구와의 관계든, 부모 자식 간의 관계든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한가지 감정만 있는 것이 아니듯, 나와 나의 관계도 그렇다.


우리 엄마는 이제 나랑 떨어져 사는 건 상상도 못한다고 매일 사랑을 고백하지만 내가 미울 땐 또 소리를 빽 지른다.


뭐, 다 그런 거 아니겠나.





이만하면 나라는 인간도 참 근사하다고 생각하는 날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이 따위로 생겨먹어서 도대체 뭘하겠냐 싶은 날이 있다.


내가 참 멋지다고 생각되는 날은 나를 미워했던 날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고, 앞으로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다 받아줄 수 있겠다 싶을 만큼 마음이 부풀지만,


어쩌다 나를 미워하는 마음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날이면 그날만큼 내가 못생겨 보이는 날도 없다.






처음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접하고, 자존감이 높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생각했다.


자존감이라는 걸 갖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을 믿는 상태를 매일매일 유지할 거라고.





그래서 어떤 날 나락으로 떨어져 도대체 나란 인간은 뭔가 싶을 땐 나는 자존감 같은 건 가질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한순간도 빠짐없이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봐줄 수 있는 시선을 가져야 자존감이라는 걸 얻을 수 있는 거라면


자존감은 죽을 때까지 내 품에 들어올 수 없는 거라고 좌절했다.





그러나 그건 전제부터 잘못된 생각이었다.


어떻게 그런 상태를 매일매일 유지할 수  말인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난 정말 무릎이라도 꿇겠다.





어제까지 사랑을 속삭이던 애인에게도 분노를 느끼고 자주 실망을 하는 게 인간이지만 사랑하니까 어쩌겠어, 라며 용서를 하는 것도 인간이다.


나는 여기에 자존감을 얻기 위한 힌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워 죽겠지만, 용서하는 것.


사랑하니까, 한 번 더 껴안아 보는 것.


그러니까 다시금 믿어보는 것.





결국 자존감이 있다는 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유지되는 불가능한 상태가 아니라



나라는 인간을 저 멀리 바닥에 내팽개쳤다가도, 그래 그래 그래도 어쩌겠니, 이게 너라는 사람인걸,하면서 다시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인 것이다.





나의 흠을 인정한다는 건, 그런 것쯤 용서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조금 느린 나를 보채지 않고 기다려 주기


무언가에 실패했다고 네 인간적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라고 말해주기



오늘 또 내게 말해본다.



괜찮아, 그게 너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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