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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정 Jun 12. 2015

불안에 대처하는 법

좌절하긴 이른데 극복이란 단어는 손닿지 않는 저 멀리에, 아스라이 떠있을 때가 있어. 무릎 꿇기에도 그렇다고 완전히 괜찮다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무언가 그늘이 드리워진 것 같긴한데 그다지 심각한 건 아니어서 호들갑 떨긴 그런 상황.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인데 따지고보면 아무것도 내 앞을 막는 건 없어서 대놓고 불평도 못할 때는 뜻모를 한숨만이 마음을 대변해줄 뿐이지. 어제와 오늘, 지난 달과 이번 달. 객관적인 조건과 상태는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거늘 마음은 무언가에 짓눌린 채로 한껏 웅크리고 있고 그걸 보는 나는 또 아프고.  



 도대체 이 묘한 상태는 무엇일까. 슬프다, 짜증난다,는 말로는 온전히 담아낼 수 없어서 더 기막힌 상황이지. 이런 때는 생각보다 꽤 많아서 어쩌면 생의 대부분을 이런 기분으로 살아야할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도 들어. 이게다 '불안' 때문이야. 어쩌자고 인간은 불안을 타고난건지. 이런 상태를 다독이며 매일을 버티는게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의무일지도 몰라.



 이런 감정에는 불안 그 자체만 있는게 아닌 것 같아. 그래서 나는 '불안이 확신을 압도한'상태 라고 정의하기로 했어. 내 생각엔 누구나 불안과 확신을 똑같이 타고나는데 확신이 때에 따라, 컨디션에 따라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거야. 불안은 항상 똑같은데 확신이라는 게 자꾸 유동적으로 변하는거지. 그래서 어떤 날은 확신이 마구 커져서 그 밑에 깔린 불안이 흔적조차 보이지 않다가 또 어떤 날은 확신이 콩알만해 지면서 불안이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지는거야. 그렇다면 이런 결론이 나와.



 우리는 불안을 버티기 위해 확신을 키워야한다.



  불안과 확신이 서로 길항작용을 하는 거라면 우리는 불안이라는 불쾌한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 확신을 키워야 해. 그건 어떤 행동일 수도 있고 아니면 차분히 기다리는 일이 될 수도 있겠지. 중요한건 그 과정에서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자꾸 스스로 묻게된다는 거야. 너 잘하고 있는거 맞니? 잘가고 있는거 맞아? 이렇게. 확신을 키우려는 노력이 동반된다면 불안도 나쁘지 않겠지.


 끊임없이 불안에 확신을 새겨야 한발자국 나아갈 수 있으니까.



 그래서 불안은 극복한다거나, 말끔하게 없앨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지. 극복한다한들 아주, 아주 잠깐 찰나적일 뿐 결코 지속되지 않을테니까. 나는 말야. 그런 점에서 정말이지 불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그건 내가 태어날 때부터 몸 어딘가에 콜타르처럼 찐-득하게 붙어 있었을거라는 생각이 들어. 또다른 장기라고 해두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기다리는 것 뿐이야.



이 글도 매일 조금씩 야금야금 쓰는 중이야. 두 줄을 쓸 때도, 운이 좋아 세 줄을 쓸 때도,심지어 한 줄도 못쓴 날도 있어.  확신을 키우는 과정은 이렇듯, 아무래도 좀 힘들더라. 그런데 얼마나 다행이야, 못쓰는 날도 있었지만 지금은이렇게 마무리를 짓고 있다는 게. 어쨌든 매일 조금씩 노력할 수밖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땐 비가 청승맞게도 오더니 지금은 아주 맑고 화창해


무엇이든 순환하고, 지나간다는 사실도 참 다행이지 않니?



그러니까 낚시하듯 찬찬히, 찬찬히 기다리기로 하자. 찌가 흔들릴 때까지.


기다리면서 미끼도 바꿔보고, 자리도 조금씩 옮겨보면서 조금씩 노력하자.


만약에 물고기가 미끼를 물고 달아나버려도 실망하지 말기로 하자.


우리는 또다시 미끼를 끼우면 되니까.


그리고 또 한참을 기다리는 거지.


 참을성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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