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웃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by 나른한오후


"은이 씨는 항상 밝아서 좋아."

누군가 건넸던 그 말을 떠올리며,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 말에 대답 대신 미소로 답했지만, 속으로는 그 말이 틀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하철 의자에 기대앉아, 나는 창밖을 스쳐가는 어둠을 바라본다. 희미한 조명 속에서 스치는 얼굴들, 저마다의 피곤함이 묻어 있는 표정들. 그 속에서 나는 분명 나인데,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내가 있다.

서류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정리된 자세로 앉아 있는 내가 스스로 우스워진다. 방금 전까지도 나는 직장 동료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음소리를 터뜨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중심으로 모여들었고, 모두가 나를 좋아하는 듯 보였다.


문득 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본다. 지하철 창문에 희미하게 비치는 그 얼굴은 낯설다. 아까 웃었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사람인지조차 알 수 없다. 동료들이 떠들썩한 대화 속에서 내가 보였던 그 '밝은 사람'은, 어쩌면 내가 만든 허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밖에 나가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밤마다 느끼는 공허함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도록 단단히 가둬둔다. 나는 철저히 연기한다. 웃음소리는 진짜 같고, 말은 유려하며, 손짓은 당당하다. 모두 내가 누구인지 의심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내가 누군지 점점 더 모르게 된다. '밖에서의 나'는 마치 무대 위의 배우처럼 완벽하게 준비된 대본을 따라가지만, 무대 뒤로 내려오면 그 대본의 목적조차 잊어버린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언제나 무대 뒤에 남은 어둠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가진 얼굴들이 모두 진짜 나의 일부일까?


눈가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주름은 내가 웃었던 적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하지만 왜 웃었을까? 무엇이 그토록 즐거웠을까?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그 웃음이 어땠는지, 그 순간의 감정이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웃었던 그 순간에 진짜 느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 순간은 진짜 같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텅 빈 무대 위에서 혼자 춤추던 기억처럼 낯설다.

웃음은 왜 그렇게 쉽게 나왔을까. 아니, 그 웃음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남아 있는 건 단지 흔적뿐이다. 눈가에 새겨진 희미한 주름은 오래된 필름처럼 그 웃음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말해주지만, 정작 그 필름을 재생해 보면 화면은 까맣고 소리만 울린다.


무엇이 나를 웃게 했는지 떠올려보려고 애쓰다가, 결국 체념한다. 웃음이 어땠든, 무엇 때문이었든, 그 순간의 나에게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것을 알 수 없다. 웃음은 흐려졌고, 나는 다시 거울 속의 나를 마주한다.


그토록 즐거웠던 웃음이 왜 기억나지 않을까. 웃는 그 순간의 나는 분명 나였을 텐데, 왜 지금의 나는 그 감정을 떠올릴 수 없는 걸까. 아니, 어쩌면 지금의 내가 웃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할지도 모른다. 밖에서 웃는 나는 내가 아니라, 거울 속의 이 낯선 얼굴이 진짜 나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있을 땐, 공허함이라는 감정 자체를 잊은 것처럼 행동하지만, 내면 깊은 곳엔 여전히 무언가가 웅크리고 있다. 그 공허함은 나에게 말을 건다.


"너는 진짜가 아니야. 네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잖아."

나는 그것을 외면하며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외면한 그 순간에도 공허함은 나를 따라온다.

밖에 나가면, 공허함은 또 다른 인격으로 분리된다. 그 공허함을 감추고 살아가는 것이 내 역할인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보여주는 그 '나'는 사실 진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진짜가 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그 역할에만 충실하다.


오늘도 내가 누군지, 그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나의 모습이 내일은 조금 더 선명해지길 바라며, 다시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