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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i Dec 10. 2022

밍과 함께 훌라

#관계의탠션 #늘져주는밍

밍과 거의 매일 산책을 한다. 여름엔 더위를 피해 아침 일찍이나 저녁에 산책을 했지만 따뜻한 햇볕이 아쉬운 요즘은 볕이 좋은 오후 1시에서 2시 사이 집을 나선다. 산책 루트는 P선생이 오기 전과 후로 확실히 나뉜다. 이것은 단순히 루트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산책의 주도권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전에는 내 위주로 루트를 설정했다면 P선생이 오고 한 달 동안 밍의 산책을 담당한 후 산책길에서 밍의 고집이 강하게 느껴졌다. 당황해 P선생에게 전화를 했더니 "밍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 했다. 

밍에게 많은 부분을 맡기고 나는 새로운 루트를 가지게 되었다. 때로는 길이 아닌 듯 험난한 곳도 있고 밍의 눈높이에 맞춰 나는 구부리고 지나가야만 하는 곳들도 있으며 리드 줄을 요리조리 빼가며 지나가야 하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늘. 길은 있었다. 

요즈음 적당히 밍도 당기고 나도 당긴다. 산책 시간이 1시간을 넘으면 데리고 돌아가려는 나와 더 돌아다니려는 밍의 팽팽한 기싸움이 둘 사이의 리드 줄에 그대로 드러난다. 대치 상태는 평균 30초 정도이다. 뒤돌아 나를 본 밍은 작게 한숨을 쉬고 내쪽으로 몸을 돌린다. 늘 져주는 밍이 고맙고 미안하다. 


산책길 리드 줄의 탠션


산책 후 목욕을 하고 인형처럼 자는 밍




지난 6월 고양이 우쭈를 남편에게 데려다주고 강아지 밍을 데리고 제주에 내려왔다. 2009년 1월 베트남 사이공에서 입양한 밍은 올해로 14살이 되었고 조금씩 늙어가고 있다. 나처럼. 늙어가는 두 생명체가 제주에서 등을 맞대고 잠을 자고 온기를 나누며 흙과 풀과 바람과 빛을 느끼며 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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