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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마스떼 Jun 26. 2021

선생님

정수기에서 물을 받다가 문득 옆에 있던 복사기에 시선이 간다. 뽀얗게까지는 아니지만 생활 먼지가 앉아 있다. 계절은 여름이지만 환기 없이 에어컨만 돌아가다 보니 겨울 못지않게 먼지가 내려앉을 수 있다. 수납장에서 물티슈를 꺼내 복사기 위에 먼지를 닦았다. 지나가던 막내 사원이 찜찜했는지

"어? 복사기 지저분한가요? 제가 닦을까요?" 물어본다

괜찮다며 돌려보내고 마저 닦는데 문득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난다.


여고 출신들은 잘 알겠지만 여고상상 이상으로 더럽다. 교실에 교복만 단정하게 입고 있는 학생보다 체육복입고 치마를 겉에 있거나 교복 조끼만 겉에 걸치는 수준이라 복장만 보면 체고와 헷갈릴 지경이다. 청소시간은 창문 열고 환기나 하면 다행이고 빗자루와 마대걸레는 장난치다 끝난다. 점심시간은 급식이었지만 도시락을 따로 또 싸와서 매시 휴게 시간마다 꺼내 먹는다. 한창 많이 먹을 때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책상 서랍은 간이매점 수준이다.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40대 후반의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시골에서 올라오셔서 순박한 인상을 가진 선하신 분이었다. 화가 나거나 잘못한 학생에게도 싫은 소리 잘 못하시는 인자하신 분이었다. 성격상 잔소리를 하느니 내가 하고 말지 스타일이기도 하셨다. 방과 후 야간 자율학습 시간 때의 일이었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청소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으며 잠을 청하려던 때였다. 감독으로 들어온 선생님이 조용히 빗자루질을 하셨다. 다들 무슨 일인가 영문을 모른 체 어찌해야 할지 모른 체 멀뚱멀뚱할 때, 선생님 옆자리에 있던 친구가 조용하게 물었다.

“선생님, 도와드릴까요?”

“아니야. 너희들은 자습에 집중해. 청소는 내가 할게”

그렇게 선생님은 묵묵히 빗질을 끝내고 물걸레까지 혼자서 다 하셨다. 세상에서 제일 불편한 자습시간이었다. 다들 곁눈질로 선생님을 모니터링하느라 자습은커녕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다. 어찌나 불편했는지 자습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서 이건 아닌 것 같다며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가뜩이나 우리 반이 학년 전체 반 평균 꼴찌를 해서 다른 선생님의 놀림거리 자존심상하던 차였다. 군사부일체라 했던가.

선생님 얼굴에 똥칠도 유분수지. 소리 한번 지르신 적 없고 잔소리 한번 못하고 직접 청소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큰 인상을 남기셨다. 다음날 청소시간에 우리는 자발적으로 교실 대청소를 했다. 몇 명은 여전히 뺀질거렸지만 청소는 나름 성공적이었는지 오후 수업시간에 들어오신 선생님은 교실 상태를 보고 웬일이야 하셨지만 얼굴에 오랜만에 미소가 지어졌다. 



정수기 먼지 닦다가 생각난 그날의 에피소드는 어떻게 나이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나의 수많은 고민에 대한 답 중에 하나가 되었다. 어느덧 나도 그때의 선생님 나이가 되었다. 마냥 어른은 되고 싶었지만 어떻게 되고 싶다는 없던 시절 몸소 보여주신 닮고 싶은 첫 어른이기도 했다. 아직 선생님에 비하진 못하겠지만 저 그래도 잘 가고 있죠?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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