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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go Apr 10. 2017

여행 중 한 끼의 포근한 식사

요르단 국경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는

이집트 시나이 반도의 남동쪽에 위치한 다이버들의 천국, 파아란 바다가 펼쳐져 있는 다합에서는 유난히 검게 그을린 여행자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들은 보조개가 흠뻑 파이도록 매력적인 웃음을 지으며 매일매일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는 얼굴로 좁게 난 거리 곳곳을 쏘아 다니고 있었다.

아프리카 이집트의 드넓고 파아란 바다. 이슬람 문양의 스카프를 두른 이국적인 사람들.

그곳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고 요르단의 국경 지역으로 가기 위해 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난 하얀 블라우스에 색이 예쁜 청바지를 입고 있는 작은 일본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도 역시나 얼굴과 눈에 보이는 살갗이 태양으로 그을러 져 있었고, 얼굴엔 마냥 행복한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

그 아이는 다짜고짜 요르단의 사막인 와디럼을 가고 싶다며 처음 만난 나에게 같이 가기를 권유했고, '대체 왜 나에게?'란 물음이 들어, '난 사막은 너무 많이 다녀서 흥미가 없어'라고 솔직하게 말하니 그러면 국경이나 같이 넘자고 한다. 난 난데없이 나타난 이 동행자가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국경을 함께 넘는 친구가 생겼군 하는 마음에 안심이 되기도 하여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중동지역을 여행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닌데도, 그 묘한 낯선 느낌 때문인지 길에서 만난 이들은 곧장 친구가 되곤 한다. 가냘픈 체구와 작은 키를 가진 그 아이는 나보다 훨씬 더 터프한 매력으로 아프리카 전 지역을 용감하게 여행한 홀로 여행자였다.

 우리는 듬성듬성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공터에서 오랫동안 배를 기다렸고, 그렇게 함께 바다를 건너 국경을 넘었다. 밤늦게 요르단이라는 새로운 나라에 떨궈진 우리는, 다른 한구석에 조용히 떨궈진 무리를 보게 되고, 이미 어두워진 골목을 더듬어 첫 번째 발견한 아주 허름한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낯선 여행자와 함께 자는 것보다는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날은 남은 방이 없기도 하였고, 사실 요르단에서의 첫날을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에서 혼자 잠들고 싶지도 않았다. 시멘트 벽이 한가득 차가운 공기를 머금은 듯한 작은 방에 담요가 덮인 두 개의 일인용 침대, 그리고 한눈에 봐도 청소가 되지 않은 욕실이 열린 문으로 보였다. 그 작은 일본 아이는 어디서 그런 배짱이 나오는지, 깨끗하지 않은 변기 물을 내려버리고는 '이젠 괜찮아졌지?' 하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나는 수긍하는 눈빛을 보냈고, 우리는 곧장 가방을 내려놓고 같이 떨궈진 다른 방의 여행자들과 우르르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갔다. 밖은 생각보다 밝았고, 이름도 모르는 한 무리의 우리들은 그저 요르단이라는 새로운 나라에 대한 호기심을 안고 골목길을 걷고 걸어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일행들은 메뉴판을 보고 여러 가지를 시켰는데, 바닷가 마을에서의 풍성한 해산물 요리를 기대하였건만, 모두들 풀 죽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것 같았고, 채식을 하는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그저 올리브 오일을 듬뿍 뿌려 토마토만 가득한 차가운 샐러드를 입안에 넣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들은 짐을 들고 또다시 만나 이젠 마지막이 될 아침 식사를 하러 숙소 근처에 한 광장에 자리 잡고 있는 식당으로 갔다. 탁 트인 광장에 놓인 몇 개의 테이블에 마을의 남자들이 가득 앉아 있었고, 그들은 홍차에 물담배를 피우며 커다란 미소를 얼굴에 함빡 물고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무리의 외국인들인 우리들이 테이블로 다가가는 것을 보자 한 남자가 수염이 가득한 얼굴에 너털웃음을 머금고는 한 사람씩 커다란 포옹과 악수로 우리를 맞이하였고, 아침 식사를 준비해 주겠다고 하였다. 메뉴는 따로 없었다. 그저 그들이 먹고 있던 같은 종류의 음식이 테이블에 차려지기 시작했다. 민트가 올려져 있는 짙은 빛의 홍차가 나오고, 올리브 오일에 듬뿍 빠진 '후무스 (이집트 콩으로 만든 콩 페이스트)', 그리고 이집트 콩을 튀겨 만든 '팔라펠', 갖은 야채를 넣은 풍성한 샐러드와 알록달록한 올리브, 그리고 빵 광주리에 쌓여 나온 '피타'라는 중동 지역의 빵 등 그들이 흔히 먹는 아침 식사가 테이블에 한가득 올려지기 시작했다. 탄성을 지르며 빵에 후무스를 발라 샐러드를 한가득 넣고는 팔라펠 튀김을 넣어 허겁지겁 먹는 우리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는, 한 사람씩 와서 이것저것 음식에 대해 설명을 시작하더니 대화는 곧 우리들의 여행과 각각의 국적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따뜻한 눈빛을 가진 그들은 배고픈 여행자들을 한눈에 알아보았고, 그들이 먹는 현지식 아침식사를 한가득 차려준 따스함을 가진 아주 평범한, 보통의 이슬람 지역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아주 저렴한 가격의 그윽한 한상은  요. 르. 단.이라는 나라의 매력으로 단숨에 빠져 들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나의 마음은 한껏 차려진 아침식사만큼이나 풍성한 행복으로 물결을 치기 시작했고, 여유를 가지고 홍차 한잔을 즐기면서 우리처럼 아침식사를 참으로 맛있게 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마음은 더 편안해졌고, 더 즐거워졌다. 


  아침식사를 했던 그 짧은 시간 속에서 이렇게 낯선 기분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여행은 한 끼의 포근한 식사와 만나는 사람들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싱그러운 이 아침 식사를 끝으로 얼떨결에 동행인이 된 우리 모두는 그날 바로 헤어졌지만, 그들도 나처럼 이 음식과 낯 모르는 이의 환대로 인해 중동지역에 대한 끊임없었던 마음속의 두려움을 한 번에 가시게 되었을 것이다.


 날은 좋았고 난 그저 즐거워 웃음 짓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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