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한낮의 정성을 다한 밥상

비 오던 날의 수다

by Mango

날은 흐렸지만 비옷을 가지고 나가지 않기로 했다. 인도에 들어와서 거의 매일 쓴 회색 체크무늬의 비옷을 입고 다니기도 그리고 들고 다니기도 지쳤다.


숙소에서 나와 구불구불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9월에 다가올 성수기를 맞아 한창 도로 공사 중인 시끄러운 큰길을 지나 좁은 마을 길로 들어섰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좁은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일본 식당이 나온다. 여행자 거리에서 많이 떨어진 시골 동네 구석에 있는 일본 식당. 대단하지 않은가. 카모메 식당의 여인이 헬싱키의 한 동네에 애매하게 자리 잡은 것처럼 말이다.

갈색의 무거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소라색의 이층 집이 나오고 1층에 그녀의 식당이 있다.

"카페 오카에리"

그곳에 가면 두어 마리의 큰 개들이 오고 가는 사람들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이 축 늘어지게 자고 있는데 우리는 그 옆에다 신발을 가지런히 두고 (개들이 깨지 않게) 문을 살짝 열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개들의 잠을 행여라도 방해할까 봐 말이다. 간혹 가다가 개들이 아주 귀찮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카페를 찾아온 손님이라는 것을 알고 이내 다시 바닥에 엎드려 버리기 때문이었다.



벌써 문밖에 손님이 온 걸 보고 전에는 나 같은 보통의 여행자이었을 일본 주인장이 활짝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고니치와"


그리고는 일본어로 갑자기 말을 터트리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일본 친구가 많은 데도 사실 난 고니치와, 곰방와, 이따다끼마스, 스니마생 외엔 일본어를 모른다.) '나는 한국 사람이야'라고 말하니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안 그래도 일본 사람인지 아닌지 궁금했었다고 한다.

마을 한구석에 있는 '오카에리' 카페에 전에도 일본 친구들과 몇 번 와보긴 했지만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그냥 눈인사 정도만 하고 조용히 밥을 먹고 사라지거나, 길가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서로 예의를 다하여 인도식으로 가슴에 한쪽 손을 올리고 고개를 숙여 인사만 하고 지나치곤 했기에 그녀와 말을 나누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흔한 말이지만 '헬싱키'를 배경으로 만든 일본 영화인 '카모메 식당'을 연상시키는 오픈 키친 형태의 오카에리 카페는 일본스럽게 정갈하고 아기자기했다. 카페를 혼자 지키고 있는 주인장도 작은 체구지만 당차 보이는 카모메 식당의 주인과 이미지가 비슷하기까지 하다. 문 옆의 벽에는 리시케시에 대한 정보가 붙어 있고 좌식의 테이블 두 개 그리고 의자 앞에 놓인 테이블이 두 개 있다. 식당 한편에 빽빽이 꽂힌 일본 책들과 오픈 키친 앞에는 인도 명상 책과 요리책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항상 여행자들이 북적이던 때에 이곳을 와서 오늘도 역시 사람이 많아 앉을자리가 없을 것을 걱정했으나 오늘은 나 혼자였다. 어색한 마음에 괜스레 작은 메뉴를 뒤적이며 보고 있으니 예상외로 활달한 주인장이 따듯한 차 한 잔을 내오며 말을 붙였다. 우린 가끔씩 식당에서 또는 길에서 마주쳤으나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인지 그만큼 궁금한 점이 많았나 보았다.

"인도의 아유르베다 (전통 치료 요법)를 배우려고 이곳에 자주 오는 거니? 난 너를 5년 전부터 몇 번씩 보곤 했어"라는 그녀의 물음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대답을 했다.

"나는 그저 요가를 하루에 한두 번 하는 여행자일 뿐이고, 여행 인솔자이기도 해. 겨울에는 인도의 시골에서 에스프레소 머신을 들여놓고 커피와 케이크를 만들어 팔지."

라고 대답을 하니 그녀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자유스러운 너의 생활을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것 같다면서. 네가 일을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을 때는 잠시 일을 안 할 수 있는 그런 직업인 것 같다며.
난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강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전혀 그렇지 않아. 나라고 항상 행복한 것도 아닌데. 난 그렇게 잘 나가는 사람은 아니야"

지나치게 솔직했던 나의 대답을 듣더니 그녀는 크게 웃었다. 난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그녀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었다. 그녀는 오 년 전에 이곳에서 카페를 시작했는데 처음에 이곳에 여행자로 왔을 때에는 자신이 이곳 리시케시에서 식당을 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어떤 이유로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지만 신기하게도 내가 커피를 팔고 있는 '보드가야'라는 인도의 시골 마을에서 그녀의 남편 역시 작은 카페를 하고 있다고 했다. 남편의 이름은 '리시케시'이고, 평소에는 떨어져서 일을 하고 있다가 겨울이 되면 함께 만나서 여행도 하고 같이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리시케시' -감각(sense)이라는 뜻의 리시케시는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성스러운 갠지스강이 흐르는 마을의 이름이자 인도의 신인 비시뉴를 뜻하기도 한다.

참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사람과 만나서 가정을 꾸리고, 리시케시라는 마을에 작은 일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장 '미치코'. 새삼 그녀가 대단하고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녀에게 우선 일본 정식을 주문했다.

미치코는 주방으로 가서 물소리를 내며 요리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잠시 메뉴판을 살펴보았다.
메뉴는 일본 정식과 오니기리와 밑반찬들 그리고 하루 전에 미리 주문해야 먹을 수 있는 인도 정식이 있었다. 영업시간은 일주일에 5일이었고 낮 11시부터 3시 반까지만 운영한다고 쓰여 있었다.



'뚝딱뚝딱' 도마에 야채를 써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곧 구수한 미소 수프의 냄새가 카페에 퍼졌다. 일본 정식의 반찬은 그날 그날 조금씩 바뀌기 때문에 오늘은 무슨 반찬이 나올까 기대하며 음식을 기다렸다. 인도 식당의 매력은 주문을 하면 바로 신선한 재료로 음식을 만든다는 것이고, 그래서 보통 음식이 아주 늦게 나오는 편이다. 그런데 이 작은 일본 식당의 음식은 보통의 인도 식당보다 더 느리게 나왔다. 아마도 여유 있는 그녀의 성격이기도 한 것 같고,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모든 일을 혼자서 다 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였다. 하지만 요가 이외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는 이곳에서 음식이 늦게 나온다고 불평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느긋하게 앉아서 옆에 있는 여행자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오히려 더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오늘의 나도 특별히 할 일도 없었고, 나른하고 조용한 이 카페에서 더 머물고 싶었기 때문에 그녀의 느린 동작을 천천히 따라가며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활달한 그녀가 또 말을 걸기 시작한다. 음식을 만드는 중이라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또박또박하고 친절했다. 나와 그리고 그녀의 남편이 카페를 하고 있는 인도의 시골인 '보드가야'는 작은 곳이기 때문에 위치를 말하면 대충 다 알 수 있는 곳이다. 내가 커피를 팔고 있는 곳은 시내 중심부로 여행자들이 오기 쉬운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그녀의 남편은 좀 많이 떨어진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카페도 외곽에 있지만 여행자들이 알아서 찾아온다면서 이번 겨울에 남편에게 일본 음식을 만드는 법을 알려줘서 메뉴에 넣으면 장사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어차피 너도 겨울에 이 카페 문을 닫으니, 겨울 장사는 보드가야에 가서 함께 하면 되겠다."라고 별생각 없이 말하니, 그녀는 단호한 얼굴로 "아니"를 외친다.

"나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해. 리시케시에서 8개월 정도 카페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나만을 위해 쓰고 싶어. 지금도 일주일에 5일만 문을 여는 이유는 틈틈이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지. 안 그래?"

그녀가 만든 정갈한 음식이 나왔다. 파릇파릇한 색의 싱싱한 호박이 굵게 따뜻한 미소 수프에 들어가 있었고, 하얀 접시 안에는 검정콩을 넣어 만든 쌀밥과 어린 새싹을 이용해 만든 샐러드 그리고 양배추와 호박 조림에 된장으로 무친 당근과 두부, 콩고기와 감자 당근을 큼지막이 썰어 익힌 야채 반찬이 나왔다.(리시케시는 채식의 도시이고, 그러므로 당연히 이곳은 채식 카페이다.) 따뜻한 미소 수프를 그릇째 들어 깊게 맛을 본 후에 본격적으로 밥을 먹기 시작하니 어느새 비가 우두둑하고 떨어지고 있었다.

토요일 한낮의 정성을 다한 점심 밥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