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할 수 없으면 스트레스가 된다.

by 이소망

10여 년 동안 학교에서의 나의 업무는 생활지도와 학교폭력 담당이었다. 일단 성별이 남자였고 얼굴로보나 덩치로보나 모로 보나 그것이 나에게 어울린다고 학교에선 판단했던 것 같다. 다른 업무를 맡고 싶어서 업무 분장 때마다 다른 부서를 신청했지만 교감 선생님과 부장님이 오셔서 이래저래 말씀을 하셨었다. 혹시 선도나 학교폭력 담당이 가능하겠냐고. 당연히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라는 생각은 존재했었다. 여자선생님들보단 내가 더 낫지 않을까. 내가 더 잘하지 않겠는가. 그게 10년이었다.


문제 있는 학생들과 대면할 때 필요한 것은 그 학생들을 내 학생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게 친근한 형이든 무서운 삼촌이든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어른이든. 어떤 방법이든 내 사람으로 만들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 대번에 학생이 변화되고 달라지는 일은 당연히 없었지만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힘든 업무 속의 꿋꿋이 찾아낸 보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학생을 내 편으로 못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종종 보다는 자주 있는 문제가 되었다. 문제학생들 중 내 통제를 벗어나 내 손이 닿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치는 경우들이 생겼다. 그것은 정신상의 문제일 수도 있고 가정의 문제일 수도 있었으며 이미 많은 사람들의 지도에서 벗어나 더 이상 정상적인 교육의 범주를 넘어선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 나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 힘으로 될 수 없는 것을 부여잡고 있을 때. 혹은 내가 하고 싶은데로, 내 방법으로 하고 싶은데 여건이나 상황이 되지 않을 때. 그때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큰일이든 그 일이 내 통제 안에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큰 배도 내가 키를 잡고 있으면 운전이 되지만 통제에서 벗어나면 사고가 된다.


오늘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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