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지를 받자마자 가장 먼저 하셔야 할 행동은 내가 받은 시험지가 10학년이 맞는지. 통합과학이 맞는지 확인하시는 겁니다. 통합과학 시험지는 총 3장. 6면으로 되어있습니다. 인쇄상태를 확인하시고 문제가 있으면 손을 들어 표해주시고 없으면 시험지를 뒤집어 놓고 대기하십니다."
시험지와 답안지를 나눠주고 시험 시작종을 기다린다. 잠시 시간이 남아 학생들에게 주의사항을 알린다.
"시험 중 가장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은 당연히 부정행위입니다. 일부러 처음부터 마음먹고 부정행위를 계획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시험 중에 조금만 잘하면 옆 친구 답이 보일 것 같을 때 부정행위가 많이 일어납니다. 친구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시험지와 답안지 관리를 잘해주세요. 시험지를 한쪽으로 빼놓거나 답을 크게 작성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다 푸신 분은 제가 오해하지 않도록 두리번 하지 마시고 엎드려서 주무세요."
시험 시작종이 울리고 학생들의 문제 푸는 소리가 들린다. 탁탁 탁탁. 볼펜이 시험지를 뚫고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가 교실에 가득하다. 시험시간 45분. 이제 나는 아이들을 관리하면 지루하지 않도록 나와의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오늘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시간을 버틸까.
오늘 저녁 메뉴에서부터 세계평화까지 작은 교실에서 시작된 생각의 나래는 이내 전 세계로 이어진다. 나의 신념에 대해 한번 숙고해보기도 하고 러-우전쟁에 끌려간 북한군까지 생각한다. 옳은 것과 그른 것. 기쁨과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고 시계를 보니 9분이 흘렀다. 여태껏 했던 생각을 4번만 더하면 된다. 언제 끝나지.
제일 오른쪽. 뒤에 앉은 남학생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몇 번 한숨을 쉬고 볼펜을 들어다 놨다 하는 모습을 보니 몇몇 문제가 잘 안 풀리는 모양이다. 예의주시한다. 자기도 모르게 부정행위는 일어나니까. 눈동자가 왼쪽 끝까지 이동한다. 자칫하면 고개도 돌아갈 판이다. 주의가 필요한 상황.
"눈동자 관리 잘합니다. 자신의 시험지에 집중해 주세요."
남학생은 자기에게 하는 말인 줄 알았는지 이내 다시 자신의 시험지에 집중한다.
지금 헤매고 있는 그 한 문제가 어찌 보면 큰 문제는 아니지만 자칫하면 그 한 문제로 인해 대학이 결정될 수도 있겠지. 그러니 어떻게든 그 정답을 맞히고 싶겠지. 하지만 부정행위는 하면 안 된다.
자신의 실력으로 문제를 풀어야지 다른 사람의 것을 커닝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부정행위는 나쁜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부정행위는 왜 나쁜가. 자신의 실력으로 문제를 푼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노력을 빼앗아서? 자신에게 돌아올 양심의 가책 때문에?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도 중요하다는 도덕적 가르침이 있으니?
사실 학생들에게 아무것도 와닿지 않을 것이다. 한 문제쯤이야 괜찮은 거 아냐? 아무도 모를 일 아니야?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국 결과 아니야? 다른 애들도 다 하는 거 아냐? 아니 어른들도 가끔 부정행위 하지 않아? 당장의 부정행위가 필요한 학생은 온갖 이유와 핑계를 만들어가며 자신의 부정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찾아낼 것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인과응보. 권선징악을 보여주지 못하지 않았나 변하지 않을 원칙으로써의 힘을 잃어버린 원칙은 맛을 잃은 소금과도 같지 않은가. 도덕과 양심에 호소하기엔 이미 먼저 된 어른들이 잘못된 것들을 많이 보여준 것은 아닌가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지고 있을 때쯤.
"시험 종료 5분 전입니다."
곧 시험이 종료됨을 알려주는 예비종이 울린다. 나도 마지막으로 이야기한다.
"시험 종료 5분 전입니다. 반, 번호, 이름 과목코드 잘 썼는지 마지막으로 점검하시고 10학년 통합과학은 총 20문제입니다. 혹시 밀려 쓰거나 당겨쓰거나 두번쓰거나 실수한 것은 없는지 마지막으로 점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