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내가 책임져줄 수 있는 것.

by 이소망

기말고사가 끝나고 성적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각자 자신의 점수를 만족하기도 하고 아쉬워하기도 합니다. 성적을 확인하고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아이도 있는 반면 낮은 점수임에도 환호하며 들어가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렇게 학년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년을 준비합니다.


학생들은 저에게 내년에도 함께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내년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아이들이 세계사와 동아시아사를 가르쳐달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담임이 되면 더 좋겠다는 말을 덧붙이죠. 작년부터 봐왔던 학생들이니 이제 익숙합니다. 편합니다. 더군다나 다른 학년보다 아이들이 순하고 착해서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장점도 있습니다. 충분히 함께 하면 좋겠지요.


하지만 그럴 때 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습니다. 바로 학생들이 저에게 거는 기대치입니다. 교사로 지내면서 많은 학생들과 연을 이으면서 살아왔는데 자주 느끼는 것이 학생들이 제 등에 자주 업히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번에도 한번 쓴 적이 있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교육관 중에 하나가 자립입니다. 학생들 스스로 설 수 있는 성인이 될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역할이 제가 할 일입니다.


하지만 아직 성인이 되기 두려운 학생들은 부모님에게 혹은 선생님에게 자꾸 기대려 합니다. 업히려 합니다. 입시라는 두렵고 무거운 짐을 앞에 두고 있으니 자신의 짐을 나누어드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이 책임져주길 바라는 것이 학생들의 모습이죠. 하지만 당연하게도 저는 그것을 책임져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저에게 그것을 기대하고 있지요. 그래서 내년에 우리 학생들을 다시 보는 것이 약간 염려가 됩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책임져 줄 수 있는 것은 사실 없습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월권이자 자기 과신, 교만입니다. 제가 선생님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트레이너가 될 뿐입니다. 학생 스스로가 짐을 둘 수 있도록 옆에서 다리근육을 쓰는 법, 짐을 들 때 허리를 다치지 않는 법, 조금씩 짐의 무게를 늘려 근육이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법 등입니다. 결국 자신의 짐은 자기 스스로 져야 합니다.

학생들이 그것을 알고 있고 깨달을 때 아마도 내년에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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