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여.

by 이소망

결여.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빠져서 없거나 모자람.

요즘 제가 결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없어서 모자란 듯한 느낌입니다. 요즘이라고 하기엔 그렇고, 어쩌면 저의 전체 삶이 그러했나 싶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 아쉽다는 감정이 큰 요즘입니다.

예를 들자면 저는 색약입니다. 적록색약. 색을 온전하게 보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색을 봐야 하는 순간에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어쩌면 지금 내가 못 보는 색으로 인해 더 큰 감동을 못 느끼는 건 아닐까?'

아픔을 느끼는 통각도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파할 상황에 저는 별로 아프지 않습니다. 뜨거운 것도 잘 먹고 매운 것도 별로 문제없습니다. 어쩌다 새끼발가락을 찧어도 아프긴 하지만, 동시에 이 상황이 웃겨서 웃음이 납니다.

싫어하는 감정도 잘 모르겠습니다. 싫은 것은 있습니다. 별로라고 느끼는 것도 있습니다. 화도 나고 짜증도 나지만, 생각보다 그 감정이 금방 휘발되곤 합니다. 좋은 것 같지만 안 좋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 반대로 좋아한다는 감정도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좋은 감정, 행복한 감정을 느끼긴 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감정과 행복한 감정이 있는데 혹시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닌가 아쉬움이 듭니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은 어떤가 궁금하기도 합니다.

사실 영화를 보며 울기도 잘 울고 감동도 잘 받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그 분위기에 젖어들기도 합니다. 우울한 감정을 느낄 때는 한없이 우울해지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잘 모르겠습니다. 감동을 잘 받으면서도 왜 결여되어 있다고 느끼는지.

어쩌면 제가 느끼는 결여는 감각 자체의 부재가 아니라, 그 감각 너머에 있을 무언가에 대한 갈증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분명 느낍니다. 아프고, 기쁘고, 슬프고, 화가 납니다. 하지만 그 감정들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의문이 듭니다. '이게 전부일까?'

빨강을 볼 때도 그렇습니다. 저는 빨강을 봅니다. 제가 보는 빨강이 다른 사람들의 빨강과 다를지라도, 저에게는 이것이 빨강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는 빨강은 어떤 빨강일까요. 그들이 보는 빨강에는 제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는 건 아닐까요.

이것이 결여의 본질인 것 같습니다. 없는 것에 대한 자각.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 제가 경험하는 세계가 완전하지 않다는, 아니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마음.

그래서 저는 계속 물어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게 얼마나 매워?" "이 색이 예쁘게 보여?" "지금 얼마나 화나?" 제 감각을 그들의 감각과 비교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돌아오는 건 그들의 언어뿐입니다. 그 언어가 가리키는 실제 감각은 영원히 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결여는 외롭습니다. 제가 경험하는 세계와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는 세계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습니다. 저는 제 세계에 갇혀 있고, 그들의 세계를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듭니다. 어쩌면 모두가 이런 식으로 결여되어 있는 건 아닐까요. 저는 색을 덜 보지만, 누군가는 소리를 덜 듣고, 누군가는 냄새를 덜 맡습니다. 누군가는 공감을 덜 느끼고, 누군가는 고독을 덜 느낍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 다른 방식으로 불완전합니다.

그렇다면 제 결여는 특별한 게 아닙니다. 단지 제가 조금 더 자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이 아쉬움과 함께 살아가는 것. 완전함을 포기하고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결여를 가진 채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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