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 있었습니다. 다른 이야기와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이 있는 단단함. 자신만의 신념과 확고한 생각이 있기에 깊이 뿌리를 내린 나무와 같아 보였습니다. 저도 그런 뿌리를 갖고 싶었죠.
하지만 저는 우유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음... 우유부단을 넘어 기준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까요. 물론 저도 나름대로의 기준은 있지만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고. 자신 있게 저의 주장을 관철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취향의 문제라고 판단했습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구분이 적당했고 반듯한 선이 없었기에 흔들리는 갈대와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취향을 찾아보았습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 등.
어느 정도 취향이 생겼다고 생각하여 뒤를 돌아보니 취향이 아니라 편식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심지어 저를 싫어하는 사람도 특별히 싫지는 않았습니다. 일도 곧잘 받아들였습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넘어오는 많은 업무들 수업들 일들. 할 수 있다면 기분 나쁘지 않고 억울하지 않고 즐겁게 일을 했더랬습니다. 딱히 싫어하는 것도 없었습니다. 핫바랑 개고기 정도를 못 먹었지요.
취향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싫어하는 사람이 생겼고 싫어하는 업무가 생겼고 싫어하는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업무, 좋아하는 것들이 분명해져야 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 편식이 심해 편협함이 늘어난 것인지 올바른 저의 취향을 찾아가고 있는 과정인지 점검을 해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게 저의 취향이라면 사양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