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얼마 전 바빠서 행복하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정말 할 일이 많아서,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행복하다는 말을 했었다. 그 느낌은 여전히 이어져있다. 하지만 그때 글을 쓸 때조차 나는 알고 있었다. 금방 이 감정은 희미해질 것이라고. 금방 좋지 않은 기분이 나를 덮을 것이라고.
내 예상대로 쉽게 그 감정은 나를 찾아왔다. 이유를 찾으라면 찾을 수 있겠으나 굳이 찾지 않는다. 왜냐하면 단순한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진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나를 둘러싼 걱정들. 잘 풀리지 않는 숙제들. 그때의 컨디션.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사회. 옛날에 실수했던 후회 등. 찾으면 수만 가지의 이유들이 쏟아진다. 그러니 이유를 찾기보다 해결책을 찾는 편이 더 좋다.
옛날에는 이런 감정이 찾아올 때는 이 우울감을 즐겼다. 한없이 밑으로 밑으로 가라앉아보면서 우울의 바다를 헤엄치다 다시 올라왔었다. 그런데 나이를 들다 보니 그런 헤엄칠 여유가 없다. 무엇보다 가족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괜한 눈치를 보는 가족들로 기분이 안 좋아있는 것은 가족에게 행하는 미안한 행동이다.
이런 나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는 법을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은 우울감을 맛보지 말고 그냥 행동하는 것이다. 이불을 개고 몸을 씻고 바람을 맞고 햇빛을 쐬고 책을 읽고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출근을 하고 업무를 보고 수업준비를 하고 해야 할 일을 더욱 많이 하는 것이다. 그러면 가라앉았던 감정들은 어느새 수면 위로 떠올라있다. 좋아진 것은 없고 달라진 것도 없지만 그냥 기분은 해결이 되어있다. 이제 그 문제들에 대한 해결을 찾아볼 여유가 생긴다.
스승님이 말씀하셨었다. 점집에 가면 3년의 시간을 주더라. 결혼 문제 3년. 직장 문제 3년. 건강 문제 3년. 무슨 문제든 3년이면 대충 결과가 나온다고 하셨다. 3년 동안 결혼을 했거나 못했거나. 취업을 했거나 못했거나. 건강해졌거나 악화되었거나... 그러면 이제 결론이 나온다. 잘 됐으면 조상 탓. 잘 안 됐으면 정성이 부족해서.
내 감정을 요동치게 하는 것들은 어떻게든 될 것이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나 일수도 있고 운일 수도 있다. 그러면 내가 취할 행동은 무엇인가.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서 허우적대지 않는 것. 그러기 위해 내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