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4)

마지막화. 너 때문이야

by 심익명

일은 방심하는 사이 터졌다. 며칠이 그렇게 조용하게 지나갔다. 수빈의 등엔 큰 멍이 번지기 시작했고, 팔꿈치 언저리에는 작은 멍이 피어났지만, 내복만 입혀 놓으면 겉으로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밤마다 끙끙거리던 수빈의 앓는 소리도 점점 줄어들었다. 멍은 검붉은 색으로 시작해 점점 누르스름하게 옅어지고 있었고, 진숙은 그제야 조금 안심하고 있던 참이었다.


기철이 쉬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어디서 배웠는지 기철의 앞에서 재롱을 부리기 시작했다. 손뼉을 치고, 수혁은 노래를 부르고, 수빈은 이상한 춤을 췄다. 기철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걸렸다. 지루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지만, 자신을 위한 몸부림에 가까운 재롱이 기분 나쁘지만은 않은 듯했다.

수빈이 팔을 번쩍 들어 올렸을 때였다. 윗옷이 살짝 말려 올라갔다. 기철의 눈이 수빈의 맨살에 머물렀다.


“이리 와봐”


수빈은 윗옷 자락을 아래로 쭉 잡아당겨 잡은 채 머뭇거렸다. 기철이 손을 뻗어 수빈의 팔을 낚아챘다. 옷을 걷어 올렸다. 옅어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선명한 멍이 드러났다. 기철의 손이 수빈의 등 쪽으로 옷을 더 밀어올렸다. 등 전체를 뒤덮고 있는 얼룩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뭐야”


기철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진숙이 주방에서 나왔다.


“아이들끼리 장난치다가 수빈이가 발을 헛디뎌 넘어졌어요. 별일 아니에요”

“이게 별일이 아니야?”


기철이 고개를 돌려 진숙을 바라보았다.


“금방 나아요. 벌써 많이 괜찮아졌어요”

“그럼 전에는, 더 심했다는 거야? 뼈에 금이라도 갔으면 어쩔 뻔했어. 병원이라도 가면 그 돈은 누가 버냐?”


기철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내가 하루 종일 뭐 하러 일하는데, 너는 집에서 애 하나 제대로 못봐서 안써도 되는 돈을 펑펑 쓰기나 하고”


진숙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기철이 수빈에게 고개를 돌렸다. 수빈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조심 안하고 뛰어다니다가 그런 거지? 몇 번을 말해. 뛰지 말라고. 조심하라고!”


“잘못했어요”


“저번에도 무릎 다 까져와서는 조심한다고 약속 했어 안했어. 아빠가 밖에 나가서 고생해서 돈 벌어오는데 너네는 어떻게 하나같이 내가 쉴 틈을 안주냐”


기철이 곁에 쪼그려 앉아 있는 수빈을 쳐다보며 말했다. 진절머리가 난다는 눈빛이었다.

수빈이 울기 시작했다. 훌쩍거리는 숨 사이로 말이 끊어지며 흘러나왔다.


“오빠가.. 오빠 따라갔어요. 오빠랑 놀다가…”


기철의 눈이 수혁에게로 향했다. 수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수빈은 겁에 질려 생각나는 대로 말한 것이었다. 게다가 틀린 말도 아니었다.


“뭔소리야!!”


기철은 어딘가 속은 기분이 들었다. 이 작은 것들과 놀기만 하는 여편네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자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저, 저는…”


수혁이 심하게 더듬거리며 말했다. 로켓 미끄럼틀. 형들이랑. 수빈이 떨어졌어요. 말이 심하게 끊겼다.


“뭐? 미끄럼틀에서 떨어졌다고? 그 높은데서?”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눈가가 젖어 있었다.


“그걸 단체로 며칠 동안이나 숨기고 있었어?”


기철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것들이 날 뭘로보고. 나한테 거짓말을 해?”


높아지는 기철의 음성에 수혁은 고개가 살짝 젖혀지고, 두 손이 저도 모르게 앞으로 모아졌다. 잘못을 비는 모양새였다. 기철을 수혁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수혁의 뺨을 내리쳤다. 퍽, 하는 소리가 거실에 울렸다. 수혁의 고개가 옆으로 꺾였다.


“이 새끼가”


기철은 엉거주춤 일어선 자세로 다리를 넓게 벌렸다. 아이의 키에 맞추려다 보니 허리도 살짝 구부려야했다. 그 자세로 다시 한 번 수혁의 뺨을 내리쳤다. 그리고 등을, 머리를 쥐어박았다.


“동생을 데리고 나가서 이 꼴을 만들어 놔? 오빠가 되어서는?”


수혁은 숨과 울음이 뒤섞여 제대로 된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컥컥거리는 숨 사이로 끊어진 울음이 삐져나왔다.


수빈이 옆에서 시끄럽게 울기 시작했다. 두 손을 비비며 잘못했어요-잘못했어요- 용서를 빌었다. 오빠를 억지로 자기가 따라간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겁에 질린 입에서는 울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여보, 그만해요. 애가..애가”


진숙이 기철의 팔을 잡았다. 기철이 팔을 뿌리쳤다. 진숙이 비틀거렸다.


“애도 잘못한거 충분히 알아요… 제발”


진숙이 다시 기철에게 매달렸다. 이번엔 기철의 손이 멈췄다. 기철이 숨을 내쉬었다. 천천히 길게.

수혁의 흐느낌, 수빈의 울음이 거실에 소리들이 뒤엉켰다.


“너, 동생을 왜 못 챙겨 응? 오빠가. 동생을 데려갔으면 네가 책임져야지. 응?”


수혁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네-하고 대답했다.

기철은 말을 멈추고 수혁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잠시후 안방으로 들어간 기철은 깔끔하게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현관에 구두를 신으며 말했다.


“저녁 먹고 들어 올 테니까 알아서 챙겨 먹어”


진숙은 그 자리에 서서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수혁은 아직도 거실 바닥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진숙이 다가가 수혁을 끌어 안았다. 엄마 품에 안기자 으엉-하는 소리가 수혁의 목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울다가 숨이 막혀 캑캑거렸고, 숨을 쉬면 또 울음이 터졌다. 진숙의 옷자락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얼굴을 파 묻은 채 엉엉 울었다.


수빈은 어색하게 옆에 쪼그려 앉았다. 눈이 벌겋게 부어있었다. 수혁의 엉엉 울음소리에 수빈도 다시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수빈은 오빠와 엄마를 힐끔거리며 바라보았다. 수빈이 손을 뻗어 수혁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오빠”


수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수빈이 소매를 잡고 천천히 흔들었지만 수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 조급해진 수빈이 오빠의 팔을 잡아당겼다. 수혁은 진숙의 품으로 더 깊이 고개를 파묻으며 천천히, 수빈의 손을 떼어냈다.


수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입술이 삐죽거렸고, 눈에 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금방이라도 크게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진숙이 수빈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진숙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입술에 힘이 들어갔다. 이마를 치켜 올리고 입모양으로 조심스레 무언가 말하는 것 같았다.


수빈은 그 표정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울고 싶은데 울면 안될 것 같았다.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삼켰다. 목구멍이 아팠다.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차가웠다.


엄마와 오빠는 바로 옆에 있는데, 아주 먼 곳에 혼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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