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3)

3화 아무일도 없었어

by 심익명

딩동-


현관 벨소리가 울렸다. 진숙의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벌써 기철의 퇴근 시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껏 긴장한 진숙이 조급하게 움직였다. 현관문을 여는 손이 잠깐 멈칫했다. 숨을 한 번 고르고, 최대한 평소처럼 문을 열었다.


수혁이 어느새 일어나 진숙의 다리 옆에 서 있었다. 아버지의 퇴근을 마중 하는 아들의 모습이었지만, 어딘가 쭈뼛거리는 느낌이었다.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바지춤을 만지작거렸다. 기철은 아들의 이런 모습을 늘 못마땅해 했다.

기철이 들어섰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기철의 눈이 가늘어졌다.


“벨 누르자마자 문을 여네”


다급하게 진숙이 입을 열려하자 기철이 먼저 말을 이었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누군지 확인도 안하고 문을 열어? 겁대가리 없이”

“저기 창녕 아재네 얘기 듣지도 못했나 이사람이- “


진숙은 멋쩍은 웃음을 지은 채, 갈 곳 잃은 손으로 머리를 긁적거리기만 했다. 대답하면 더 길어진다는 걸 진숙은 알고 있었다. 기철의 시선이 거실을 훑었다.


“수빈이는?”

“아빠가 하루 종일 일하고 왔는데, 마중도 안 나와?”

목소리가 낮아졌다. 진숙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입 밖으로 나오는 모든 소리가 실언이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늘 낮에 많이 뛰어 놀아서 좀 피곤한가 봐요. 지금 자고 있어요”

“당신은 집에서 세상 걱정 없이 있으니 확인도 안하고 문이나 열고 애들은 아빠가 밖에서 일하는데 논다고 퇴근하고 올 시간까지 잠이나 자고 집안 꼴 잘 돌아간다?”


한껏 비아냥 거리는 기철의 언성에 진숙은 수빈을 억지로라도 깨워야 하나 잠시 고민에 빠졌다. 본격적인 잔소리가 시작되려는 순간 수빈이 방에서 비척비척 걸어 나왔다. 눈이 반 쯤 감겨 있었고, 걸음이 휘청거렸다. 수빈은 기철에게 곧장 걸어가 두 팔을 벌렸다.


“아빠-”


기운 없는 목소리였다.


“아빠 보고 싶었어”


기철에게 안긴 수빈의 볼이 기철의 얼굴에 닿았다. 기철은 수혁을 대할 때와는 달리 수빈에겐 다정했다. 수빈을 낳고서야 진숙도 처음 보는 기철의 모습이었다. 평소 같으면 깔깔거리며 매달렸을 아이가, 오늘은 그냥 축 늘어진 채 안겨있었다. 기철이 눈치라도 챌까 진숙은 손에 땀이 났다.

다행이도 기철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기철의 손이 수빈의 등어리를 장난치듯 툭툭 쓰다듬었다. 기철을 손이 닿을 때마다 수빈의 얼굴이 소리 없이 일그러졌다.


“밥 차려”


아직도 그녀에겐 화가 풀리지 않은 듯한 기철의 고압적인 말투에도 진숙은 오히려 안도했다. 곧장 주방으로 들어가 불을 켜고, 냉장고를 열고, 손에 익은 것들을 꺼냈다. 밥을 푸고, 국을 데우고, 반찬을 덜어 담았다. 손은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자꾸 눈가가 뜨거워졌다. 참으려 해도 눈물이 삐져나왔다. 국자를 든 손이 멈췄다. 싱크대에 기대어 고개를 숙였다. 어깨가 떨리지 않게 이를 악물었다.


아이가 다친 것도, 그걸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도 버거웠다.


거실에서 기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까지 기운 없이 늘어져 있는 수빈의 웃음소리도 작게 들려왔다. 수혁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철이 피식 웃는 소리도 났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하루였다.


진숙은 흐르는 물에 손등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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