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피스와 팀 셋업
글로벌 시작하면서, 특히 제품이 커뮤니티 서비스이기 때문에라도, 현장의 반응을 그대로 제품 조직에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센싱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현지에 상주하면서 그들의 일상을 관찰해야만 했고...
미국은 초기 1년 정도는 출장 베이스로 1~2개월 미국, 2주 한국, 다시 1~2월 미국. 이런 식으로 왔다 갔다 했는데, 어차피 1년에 6개월 이상 체류가 어렵기에 동시에 L1 주재원 비자를 준비했었다. 법인과 오피스 셋업도 같이 진행했는데, CA에 법인을 세우고, 위치는 Palo Alto로 정하였다. 위쪽 San Francisco는 City라 부르고 아래쪽 San Jose 지역은 South bay라고 부르는데, Palo Alto가 오피스로 적합한 이유는 City와 South bay의 가운데에 위치해서 우수 인력을 채용하고 출근시키기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젊은 미혼자들은 보통 City에, 기혼자들은 넉넉한 삶을 위해 South 지역에 거주하는데, City와 South bay를 연결하는 Cal train만 타면 1시간 안에 Palo Alto로 출퇴근하기 매우 편리하였다.
Palo Alto downtown의 오피스로 입주하는 건 만만하지 않았다. Realtor 소개로 3곳 정도를 돌아다녔는데, 우리가 입주할 적합한 사이즈이면서 식당 접근성과 주차 편리성까지 모두 갖춘 곳 자체가 없고, 입지 조건이 좋으면 rent fee가 어마무시했고 (최종 입주한 곳은 2,000sqft였고 월에 몇만 불 수준. Triple Net이라 CAM, Insurance, TAX는 별도), landlord는 tenant가 지불역량을 갖추었는지 꼼꼼히 따졌기에 한국 본사의 잔고증명서 등을 보내주었다. 계약 마치고 인테리어 하고, 사무집기/정수기/냉장고 등등... 한국 출장자들이 와서 직접 셋업 해주어 살림살이가 정리되었다.
오피스 셋업이 되고, 초기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Agency를 통해 washing 한 메시지와 앱 내 경험을 현지화한 후, 마케팅을 크게 진행할 계획을 세웠고, 그렇게 진행하면 미국에 뭔가 뿌리를 내리게 되는 줄 알았다. 나중에 공유를 하겠지만, 결국 모든 계획을 접고, 미국은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쌓아가기로 했다. 대만과 인도는 mass 마케팅을 하면서 공격적으로 끌어올리기로 했고, 미국은 제품의 미국화(Localization), 입소문에 의한 마케팅, sweet spot 타겟 이용자 층 발굴 중심으로 그야말로 lean 하게 approach 했다.
Tight 한 budget이기에 정규직 1명에 인턴 8~9 명으로만 구성된 팀을 꾸렸다. 가설&검증의 과정을 거치기에 그 정도면 충분하였다. Bay area는 이민자가 다른 지역보다 더 많았는지, 의도하지 않았지만 인도계 2명, 중국계 2명, 베트남계 1명, 필리핀계 1명, 히스패닉 1, 백인 1명에 남/녀의 비율도 거의 반반. 극강의 diversity를 보여주었다. 직원들은 모두 미국 이민자들이지만, 부모의 국가 문화를 잘 이해했기에, 그래서 미국에서 먹히면, 그 파급력이 전 세계로 퍼져서 먹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인턴은 실리콘 밸리 주변 지역의 대학 졸업 예정자(SJSU, Santa Clara Univ.)들로 구성되었고, 시간당 최저급여에도 지원자가 많았다. 그들은 학생 신분이지만, 열심히 토론에 참여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마케팅 컨텐트를 만들어주었다. 다만, 서비스에 대한 깊은 관심과 끝까지 해보려는 열정. 그런 것까지 기대하기란 무리였다. 1명의 정직원도 마찬가지.
낮에는 미국 직원들과 마케팅 컨텐트를 개발하고 이용자 인터뷰를 하면서, 저녁 퇴근 후에는 한국 직원들과 일하면서 미국 상황을 업데이트해 주고 제품 쪽 progress를 전달받았다. 다음 날 출근해서는 한국 업데이트를 미국 직원들과 공유하면서 쉴 틈 없는 ball 주고받기가 계속되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미국인 정규직 1명, 그리고 다수의 다국적 인종의 인턴 직원. 나는 한국의 일감을 미국 직원에게 나누어주고, 미국 직원들의 결과물을 한국에 전달하는 '메신저'이자, 오피스 스낵을 때마다 채워 넣고 2주마다 1번씩 인턴 월급 paycheck 발행하는 등의 '오퍼레이터'였다. 시간으로 따지면 메신저 50%, 오퍼레이터 50%. 일이 돌아가게 만드는 일이 모두 나의 역할이었고, 그런 새로운 역할에 조금씩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