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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망이 Dec 20. 2019

누가 불러내었는가

<프랑켄슈타인>, 메리 W. 셸리

'닥터슬럼프'라는 만화를 아시는지. '아리'라는 힘센 로봇소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귀여운 만화다. 단역 중 하나로 프랑켄슈타인이 등장하는데, 그는 주인공 아리를 대적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그 목적과는 다르게 선하기 그지없는 존재다. 자매만화격인, 사실 그보다 훨씬 유명작인 '드래곤볼' 초반부에도 잠깐 등장하는데, 마찬가지로 그는 선한 이미지로 그려진다. 프랑켄슈타인은 언제나 끔찍한 외모와는 상반되는 선한 성품을 지닌 인물로 그려지는 듯 하다. 그 덕분인지 어느정도 정형화 되어버린 프랑켄슈타인의 외모는 이제는 친근함을 불러일으킨다.
 
프랑켄슈타인은 뱀파이어와 함께 끊임없이 소환되는 서구의 원조격 몬스터이다. 그는 1818년 메리 W. 셸리에 의해 태어난다. 메리 W. 셸리는 유령 이야기를 한 편씩 써보자는 바이런의 제안으로 자신의 첫 소설에 도전한다.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찾지 못해 고심하던 셸리는, 어느날 밤 꿈에서 자신의 의해 생명을 얻게 된 끔찍한 피조물이 잠든 자신을 내려다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소름끼치는 공포에 휩싸인 그녀는 그 장면을 첫 소설에 소환한다. 프랑켄슈타인은 셸리의 공상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흉측하고, 공포스러운 괴물로 탄생한다.

소설은 한 생명체의 탄생과 운명을 그린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라는 평범하지만 호기심 많은 과학도는 끈질긴 연구 끝에 생명의 원리를 발견한다. 그는 음침한 실험실에 갇혀 한 육체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한 연구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온갖 사체를 조각내고, 그 조각낸 사체들을 이어붙여 만든 끔찍한 육신에 생명을 부여한다. 그러나 살아있는 피조물의 얼굴과 눈을 마주하게 되자, 창조자는 놀라 달아나고 그를 악마로 매도한다.

피조물은 복수에 나선다. 창조자에게 자신을 만든 책임을 요구하며 그의 주변을 파괴해 나간다. 창조자의 친구와 사랑하는 여인, 결국에는 가족까지 괴물로 인해 죽어간다. 홀로 남게 된 창조자는 피조물을 쫓기 시작한다.

"창조주여. 제가 부탁했습니까, 진흙에서 저를 빚어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끌어내 달라고?" (실낙원 중에서 - 프랑켄슈타인의 서문)

소설은 답답함과 이질감으로 가득하다. 알프스의 장엄함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평화는, 소설 곳곳에서 프랑켄슈타인의 등장으로 인해 깨진다. 음산함과 함께 불쑥 나타나는 흉측한 피조물은 그야말로 이방인이다. 그는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평화로운 세계를 뚫고 나타나는 괴물이며 파괴자이다. 끔찍한 외모를 이유로 악마라고 비난 받는다. 이상하지 않은가. 그를 만든 자, 그를 불러낸 자는 어디있는가.

거기에 부조리가 있다. 창조자는 피조물을 악마로 인식할 뿐, 자신이 창조자임을 깨닫지 못한다. 창조와 윤리(책임) 사이가 비어있다. 바로 이 간극이 묘한 긴장을 만들고, 질문을 불러 일으킨다. 창조자의 윤리는 어디있는가. 누가 그를 어둠에서 빛으로 끌어내었는가. 부조리한 것은 무엇인가. 프랑켄슈타인은 아니다. 창조자다. 인간이다. 부조리한 것은 만든자의 욕망이며 무의식이다. 인간은 부조리를 창조하는 부조리한 피조물이다.  

생명을 창조하는 일, 다시 말해 생명을 낳는 일은 정말 아름다운가. 결혼과 출산이 여전히 사회적 자격인 세상에서, 생명을 창조하는 일의 의미를 우리는 충분히 묻는가. 우리는 아름다움과 신비의 이면을 끄집어 내서 직면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끊임없어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을 한 피조물에게, 약자에게, 이웃에게 그 죄값을 묻게 될 것이다. 약자에게 악의 책임을 묻고, 그에게 선의 부재를 갈구하게 될 것이다. 텅 빈 창조와 윤리 사이에서 프랑켄슈타인은 여전히 묻고 있다.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절 끌어내 달라고?" (실제로 저자 셸리의 남편은 본처를 외면하고 셸리와 동거했으며, 둘 사이에 낳은 아이들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했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 프랑켄슈타인을 만든 빅터는 실제로 남편의 별칭이기도 하다. 훗날 남편은 항해를 떠나지만 실종된다.)

대답해야 하는 이는 신 뿐만 아니다. 여전히 창조와 윤리 사이는 여전히 텅 비어있다. '신비와 아름다움'이라고 수놓은 화려한 도포로 구덩이를 덮어놓았을 뿐이다. 글자에만 현혹되어 멋모르고 뛰어들면 빠진다. 그 구덩이 속에서 프랑켄슈타인이 되거나, 그를 낳게 될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그러나 늘 우리를 따라다니는 부조리의 이름이다.

"타락한 천사는 사악한 악마가 되는 법이니까!"(288)




서평3. 프랑켄슈타인/메리 W. 셸리/열린책들/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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