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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망이 Dec 20. 2019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

<파이 이야기>, 얀 마텔

“당신이 내 뒤죽박죽 이야기를 100장으로 구성할 수 있을까? 한 장이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게 딱 100장으로?”

딱 100장. 소설 <파이 이야기>는 100장의 소챕터를 가진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딱 떨어진다. 다분히 의도적이다. 저자는 내용뿐 아니라, 구성을 통해서도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파이 이야기>는 주인공 파이의 이야기인 동시에, 파이(π)와 100개 챕터에 담긴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다. ‘파이’(π)의 이야기이며,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은 '파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소년의 '이야기'다. 사실 소년의 본명은 '피신 몰리토 파텔'이다. 젊은 시절 수영 선수이던 한 아저씨가 지어준 이름으로, '신들도 기쁘게 헤엄칠'(24)만큼 좋은 프랑스의 수영장 이름을 따라 지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피신을 ‘피싱’으로 부르며 놀리곤 하는데, 이는 인도에서 '오줌'을 뜻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싫었던 피신은 이름 앞 글자를 따서 'Pi'로 이름을 바꾼다. 이렇게 해서 ‘파이’라는 이름에는 경계(수영장, 오줌)와 무한(π/혼돈)이 동시에 담긴다. 다시 말해 소설은 신(神/무한)과 인간(유한, 경계)에 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혼란(카오스)을 이야기(코스모스)에 담으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소설은 파이(π)를 100(이야기)에 담으려는 시도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의 가족은,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캐나다로의 이민을 결정한다. 온갖 동물과 파이의 가족을 태우고 캐나다로 향하던 일본의 대형 선박 '침춤호'는 불의의 사고로 바다에 가라앉게 되고, 파이는 천신만고 끝에 구조선에 타게 된다. 구조선에는 파이 이외에도 다른 조난객들이 올라 있었는데, 다리를 다친 얼룩말과 수컷 하이에나, 새끼를 잃은 오랑우탄, 그리고 리차드 파커라는 이름의 뱅골 호랑이가 바로 그들이다. 우여곡절 끝에 뱅골 호랑이 리차드 파커와 파이만 구조선 남게 되고, 어울리지 않는 두 존재는 동거를 시작한다.

소설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1부는 신(神)을 찾는 파이와 동물원이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동물에 관한 재미있는 정보들을 제공해주면서도, 종교에 관한 날카로운 통찰들이 돋보인다. 2부에서는 침춤호에서 살아남은 파이와 뱅골 호랑이 리차드 파커의 생존기를 다룬다. 호랑이에게 죽기보다 혼자 남겨지는 일이 더 두려운 파이는 리차드 파커를 조련하기로 마음 먹는다. 끝으로 3부는 멕시코 해안가에서 발견된 파이와, 선박의 침몰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 나온 조사원들이 만나서 나눈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들의 대화에서 독자들은 소설 전체를 뒤흔드는 반전을 접하게 된다.  

당신은   어느 이야기가  낫습니까(better)?”

조사원들은 파이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구조선 안에서 호랑이와 함께 지낸 이야기도, 표류 중에 다른 조난자를 우연히 만난 이야기도, 바다 위 식인섬 이야기도 그들은 믿지 않는다. 그들은 사실(fact)을 듣고 싶어한다. 그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을 원한다. 사실은 이것이다. 구조선에는 네 사람이 있었다. 파이와 그의 엄마, 다리를 다친 선원, 그리고 프랑스 요리사. 요리사는 선원을 속여 죽였고, 그 시신을 낚시 미끼로 썼으며, 인육을 먹었다. 마치 하이에나처럼. 엄마는 그에게 살해 당했으며, 파이가 그를 죽였다. 파이는 묻는다. “당신은 둘 중 어느 이야기가 더 낫습니까?”

저자는 신과 희망을 말한다. 여전히 생을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그게 뭐든 내가 죽어가는 것을 방해하는”(320)게 무엇인지를 굳이 말해야 한다면, 그것은 신이며 희망이다. 낡고 진부하며 오염됐지만, 아직은 내다 버릴 수 없다. 중국의 문호 루쉰은 이렇게 말한다. “그랬다. 물론 나는 절망을 확신했지만 희망이라는 말이 나오자 이를 말살할 수도 없었다. 희망이란 미래에 속한 것이라, 과거에 내게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거로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아Q정전 서문 중)

내게 신은 광휘에 둘러 쌓여 있거나, 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죽어가려 할 때, “뭔가 집적대며 … 내가 죽어가는 것을 방해하는”(320) 존재다. 영광과 장엄이 아니라, 사실과 절망의 틈에서 신을 찾는다. 우리에게는 잘 요약된 교리가 아니라, 이야기가 필요하다.

소설은 어느 쪽이 진실이라고 결론 짓지 않는다. 다만 두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한쪽은 참혹하고, 다른 한쪽은 신비롭다. 선택은 우리 몫이다.

여전히 '그러니까, 뭐가 사실이라는 거야?'라고 묻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그러니까 다른 이야기를 원하신다? … 사실을?”(374)




서평4. 파이 이야기/얀 마텔/작가정신/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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