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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망이 Oct 05. 2023

커피의 쓸모

   비염 치료를 위한 한약 때문에 당분간 커피를 끊은 일이 있었다. 하루에 두세 잔씩 습관처럼 마시던 커피를 멈췄으니, 얼마나 어려웠을까. 솔직히 하나도 안 힘들었다. 물 마시듯 삼키던, 혹은 커피 중독이라도 걸린 듯 마셔대던 커피는, 물을 대신하지도 않았고 중독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커피 안 마셔도 삶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쓸모로 따지자면, 없어도 그만이랄까. 

   그런데도 하루 노동 중 쉼이 주어질 때, 고소한 아메리카노나 달짝지근한 바닐라라떼를 텀블러에 담아 테이블에 올려놓고 앉으면, 뭔가 좋다. 잠깐의 쉼을 조금은 더 풍요롭게 해준달까? 일하는 식당 근처에 줄줄이 늘어선 카페를 차례로 들러 커피를 산 다음, 어느 집 커피는 이래서 맛있고, 저래서 맛없다며 같잖은 커피 논평을 해보기도 한다. 그러니까 없어도 그만인 커피는, 내게 하루를 보내는 중에 꼭 지나가는 통로인 셈이다. 그렇담 커피는 내 하루에 쓸모가 있는 게 아닐까?

   지금은 대통령인 된 분이 후보이던 때, ‘여성가족부 폐지’를 정책이랍시고 본인 SNS계정에 대문짝만하게 올려놓은 일이 있다. 모르긴 몰라도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젊은 남성들의 표심을 얻으려는 생각에서 한 행동일 것이다. 그 일이 표로 얼마나 연결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페미니즘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지닌 뭇 남성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던 듯하다. 그 일을 보며 몇 년 전 한 교회 청년이 군대와 여성가족부를 비교하며, 쓸모를 운운하던 기억이 떠올라 쓴웃음이 났다. 군대는 쓸모를 넘어 필수적인 한편, 여성가족부는 세금을 축내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럴지도 모르지.

   쓸모로만, 혹은 자본주의적인 생산성으로만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를 평가해도 될까. 무언가를 경제적으로 생산하지 않으면, 그것은 무가치할까. 흥미롭게도 이런 생각은 인간에게까지 연결된다. 혹자들이 하는 주장처럼, 결혼이나 섹스는 아이를 낳기 위한 것이고, 그런 방식으로 생식에 참여하지 않은 존재들은 무가치한가. 

   생산하고 만들어내서 중요한 역할들이 있지만, 비용을 들여서라도 지키거나 바꿔야 할 가치가 있다. 경제적인 가치를 생산하기는커녕 도리어 소모적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한때 들려오던 ‘바닷물을 다 퍼내서라도 세월호를 끌어 올려라’라는 목소리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덕지덕지 달라붙은 돈 때문에 가라앉은 생명을, 또다시 비용 운운하며 바다에 묻지 말라는 목청이었으니 말이다.

   

어마 무시한 커피 덕후들에 비하면 하찮은 커피 소비자에 불과하지만, 그것과 함께하는 여러 모양의 쉼이 나는 좋다. 쓸모없음의 쓸모가 주는 풍요로움이랄까. 혹은 아름다움이랄까. 끝으로 한때 애정해 마지않던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를 인용하며 글을 맺는다.     


   “난 이리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봄, 꽃, 달 이런 것들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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