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그리고 창백한 푸른 점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대서사시
코스모스(Cosmos)
작가명: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작가 생몰연도: 1934년(미국)–1996년
언어: 영어
초판 발행연도: 1980년
⭐️읽은 도서 정보: <코스모스>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출판사 사이언스북스
★ 한줄 감상평 ★
아득한 별의 바다 속 들리지 않는 그러나 결코 끊이지 않을 우리의 아름답고 슬픈 노래
다시 이 빛나는 점을 보라. 그것은 바로 여기, 우리 집, 우리 자신인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아는 사람, 소문으로 들었던 사람, 그 모든 사람은 그 위에 있거나 또는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기쁨과 슬픔, 숭상되는 수천의 종교, 이데올로기, 경제 이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겁쟁이,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민, 서로 사랑하는 남녀, 어머니와 아버지, 앞날이 촉망되는 아이들, 발명가와 개척자, 윤리 도덕의 교사들, 부패한 정치가들, '슈퍼스타', '초인적 지도자', 성자와 죄인 등 인류의 역사에서 그 모든 것의 총합이 여기에, 이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와 같은 작은 천체에 살았던 것이다.
- 창백한 푸른 점에서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다. 이 책은 '죽기전에꼭읽어야할책1001' 목록에는 없지만(1001 목록은 전부 문학작품만 있어서 비문학 책은 없음) 예전부터 내가 꼭 완독해야겠다고 결심한 책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번에 드디어 다 읽게 되었다!
코스모스(cosmos)는 그리스어 κόσμος에서 유래한 단어로 '질서', '우주'를 의미한다. 반대되는 개념이 카오스(chaos, 혼돈)다.
어릴 때, 그러니까 10살 이전으로 기억하는데 우리 집에는 내가 아주 좋아하던 CD가 하나 있었다. 태양계 아홉 행성들(현재는 명왕성이 퇴출되었지만 그때는 퇴출되기 전)에 대한 설명과 행성 내부의 가상의 풍경 영상들이 수록된 CD였다. 이사를 다니면서 잃어버린 건지 어디 갔는지 지금은 찾을 수 없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교육용이나 일반인을 위한 과학교양(?) 목적의 CD였던 것 같다. 이 CD를 컴퓨터에 넣으면 지구를 포함한 9개의 태양계 행성 사진이 주르륵 나열된 첫 화면이 뜨고, 사진을 클릭하면 해당 행성에 대한 영상이 재생되면서 설명해 주는 내레이션이 함께 나왔다. 20년도 더 된 오래전 기억이라 그때 내가 그 영상들에서 봤던 대부분의 것은 다 잊어버렸지만 아직도 내 머릿속에 아주 뚜렷하게 남아 있는 영상 속 한 장면이 있다. 뿌연 하늘을 배경으로 붉은색 모래가 흩날리는 화성의 풍경이다. 그때 느꼈던 그 신비로움이란...저 머나먼 검은 하늘 속에 떠다닌다는 또 다른 세계들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너무나 흥미롭고 신기했다.
지금 다시 보면 또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 당시의 내 눈으로 보기에는 영상들이 너무 생생해서 마치 내가 직접 우주선을 타고 그 행성에 착륙한 듯한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자주 그 CD를 틀어놓고 우주비행사 놀이를 하는데 빠져있곤 했다. 잠시 동안 내 꿈이 천문학자였던 시절이었다. 이것이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을 인식한 내 첫 번째 기억이다. 그리고 여름날 초등학교에서 간 단체 수련회에서 천문대 망원경으로 밤하늘의 별들을 보고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진짜 천문학자가 되어볼까??라고 나름대로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하지만 천문학자는 그저 밤하늘 보는 걸 좋아한다고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학을 기똥차게 잘해야 한다는 걸 어디선가 주워듣고 난 후 과감히 포기하고 나의 또 다른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던 고생물학 쪽이 좀 더 좋겠다고 판단했다. 결론적으로 지금 나는 고생물학자도 아니고 천문학자는 더더욱 아니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제는 어렸을 때처럼 밤하늘의 별들을 자세히 보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잘 안 보인다. 컴퓨터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 시력이 나빠졌기 때문이다....흑흑ㅠㅠㅠㅠ
그리고 별들을 보면서 우주를 상상하기에 이제 도심의 빛은 너무나 밝고, 공기는 탁하다.
비록 이제 천문학자나 고생물학자 같은 건 어린이의 꿈속으로 멀어져 갔지만 나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세상에서 가장 궁금하다. 나와 나를 둘러싼 이 세계의 기원에 대한 물음. 나보다 더 애타게 이에 대해 고민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 위에 살다 갔다. 인류의 모든 신화와 역사, 과학과 종교와 예술이 저 근원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결국 우리 자신에 대한 물음이다.
별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아기의 웃음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류는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반복하면서 살아왔다.
-코스모스 331p 中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자연의 응답들을 천문학자의 시각에서 아주 과학적으로, 동시에 문학적이고 시적인 언어들로 우아하게 풀어낸다. 그래서 이 책은 서점의 장서 분류 상 '자연과학 교양서'에 속하지만 그 어떤 신화적인 서사시들보다 아름다우며 사실적이다.
인류 최초로 지구의 둘레를 측정한 고대 그리스의 에라토스테네스부터 데모크리토스, 히파티아 등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모여 진리를 탐구하던 이오니아의 과학자들과 중세 1000년의 어둠을 깨고 자연의 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인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갈릴레이, 케플러, 뉴턴과 현대의 고더드와 아인슈타인까지 이어지는 인류 역사의 기라성 같은 지성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그들과 같은 호모 사피엔스 종에 속한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쓰여있던 한 줄의 문장과 서너 개의 문자로 이루어진 지극히 간단해 보이는 하나의 공식을 완성하기까지는 한 인간의 전 생애와 인류의 수 세기가 필요하다. 중학교에서 뉴턴 역학 제1법칙인 관성의 법칙을 배우는 데는 1교시, 즉 45분 남짓한 시간이면 끝난다. 케플러의 법칙은 그보다 조금 더 복잡하니까 1시간은 좀 더 걸렸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과학과 수학 법칙들이 인류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위대한 의미를 갖는지 고등학교 물리 시간 때 나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그때 이 지식들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를 누군가 구구절절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고 한들 나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그냥 시험에 나온다니까 열심히 듣고 외웠다. 대학 신경해부학 시간에 Y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일단 그냥 외워라. 머리에 넣어라. 그러면 언젠가 나중에 이해가 되는 날이 온다." 과거에 내가 학교에서 배우고 그저 무자비하게 머리에 넣었던 수많은 지식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대단한 것들이었는지 이제는 안다. 시간이 흐르고 이렇게 <코스모스>를 읽으면서 그것들의 진정한 의미가 이해 되었으니 말이다. 교수님의 말씀이 옳았다.
100억 년 혹은 200억 년 전 일어난 미지의 '대폭발'이 일어난 이후 우주는 어둠을 부유하던 작은 수소 원자에서 시작되어 핵융합 반응을 통해 점점 더 무거운 원소들이 생성되어 갔다. 그 원소들이 모여 자가 복제를 할 수 있는 유기물질이 되었고 기나긴 시간의 장막 속에서 더 복잡한 구조의 미생물로 아주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변화를 거듭했다. 이들은 그들의 고향이었던 바다를 떠나 뭍으로 올라와 걸음을 시작하고 나무와 숲속을 뛰어다니다가 마침내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세상의 기원에 물음을 던지며 그 별들을 향한 탐사선을 쏘아 올리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며 '우리'의 이야기다. 우리를 이루고 있는 원소들은 모두 저 억겁의 시간을 거쳐온 우주의 별들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우주이며 별인 셈이다.
자신이 살던 작은 마을을 벗어난 인간은 그 옆 마을로, 옆 나라로, 그리고 새로운 바다와 대륙들을 발견하는 긴 항해를 거듭해왔다. 저 머나먼 수평선 너머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은 인간의 세포에 깊이 새겨진 본능인 듯하다. 이제 지구의 거대한(혹은 우주적 관점에서는 극히 미미한) 지도를 완성한 인간은 눈을 돌려 하늘 그 너머의 세계를 향한 항해를 막 시작했다.
17, 18세기에는 네덜란드에서 중국까지 가는 데 1년 내지 2년의 세월이 필요했지만, 오늘날 보이저는 이 시간에 지구에서 목성까지 갈 수 있다 ...... 수정란이 나팔관을 지나 자궁에 착상할 시간이면 지구를 떠난 아폴로 11호는 달에까지 갈 수 있다. 수정란이 자궁에서 성장하여 아기로 태어날 즈음 바이킹 우주선은 화성에 도착한다. 인간의 평균 수명은 보이저 우주선이 명왕성 궤도를 벗어나 위험을 무릅쓰고 태양계 바깥으로 나설 때까지 걸릴 시간보다 길다.
- 코스모스 280p 中
그리고 이제 인류는 모든 세상의 중심이 '나'라고 생각하던 유아기적 사고에서 벗어나 우리 존재가 아득히 광활한 우주의 구석탱이 그 어딘가에 티끌 같은 창백한 푸른 점, 지구라는 행성에 아주 찰나의 순간만을 머물다 가는 존재임을 깨달았다. 나는 이 사실을 생각하면 형용하기 어려운 무력감에 압도되는 동시에 그 어떤 말보다도 강력하고 엄청난 위로를 받는다. 무언가를 다 망쳐버린 것만 같을 때나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 것 같은 소름 끼치게 싫은 순간들이 올 때마다 나는 어릴 때 CD 속 영상에서 본 붉은 화성의 모래를 생각하고 새까만 밤하늘을 생각하고 우주를 정처 없이 떠도는 작은 먼지를 생각한다. 그러면 일시적으로 마법을 건 것처럼 마음이 다소 진정된다.
"ㅅㅂ그래 다 먼지들이야. 해가 뜨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새벽이슬 같은. 존재했었는지조차도 헷갈리는 아무것도 아닐 우주의 잿가루들!"
우리가 우주 그 자체인 동시에 그 무엇도 아니라는 말보다 더 훌륭한 가르침이 어디 있는가? 나는 우주과학이 분명 인간의 정신건강에도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와 2호에 실린 레코드판에 관한 부분을 읽다가 나는 울었다. 1977년에 발사되어 드넓은 우주 속으로 영원한 항해를 떠난 두 척의 보이저 탐사선에는 구리에 금박을 입힌 레코드판이 한 장씩 실려 있다. 레코드판뿐만 아니라 레코드 바늘과 카트리지, 겉표지에는 사용법이 적혀 있다. 만약 성간을 항해 중인 또 다른 외계 문명인이 있다면 그들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린다는 뜻에서 레코드판에는 인간의 유전자, 사람의 두뇌, 우리의 도서관에 대한 정보와 예순 종류의 언어로 된 사람의 인사말, 세계 각지에 사람들이 서로 보살피고 예술품을 만들고 각종 도전에 응하는 모습의 사진들과 지구상 여러 문화권에서 즐기는 음악을 1시간 30분 분량으로 편집하여 수록했다. 이 레코드판에는 광대하고 적막한 우주 한복판에서 지구인이 느끼는 우주적 고독감과 이 고독에서 간절히 벗어나고자 하는 소망, 우리만큼이나 쓸쓸히 이 심연을 항해 중인 외계 문명이 어딘가 존재할 것이며 그들과 닿기를 바라는 인류의 갈망이 담겨 있어 가슴 시리게 애처롭다. 마치 저 푸른 바다 위,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무인도에 홀로 떨어진 조난자가 외로움에 몸부림치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열심히 바다 너머로 희망의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것처럼 느껴져 눈물이 난다. 우주로 향하는 인간의 절절한 종이비행기에는 보이저 탐사선의 레코드판뿐만 아니라 1974년 푸에르토리코의 아레시보 전파 망원경을 통해 날려 보낸 무선 메시지도 있다.
학교에 다닐 때는 내가 이렇게나 뒷 시대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인간이 축적해온 그 많은 지식들을 다 배우느라 적잖이 고생하는구나라고 생각했었다. 만약 내가 360만 년 전 탄자니아의 원인(原人)으로 태어났다면 나는 전자의 오비탈 배치나 포도당이 ATP로 변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달달 외울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도플러 효과와 광전 효과를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싸맬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내가 지난 350만 년에 걸쳐 인류가 걸어온 이 경이로운 여정을 바라볼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난 것을 너무나 감사한다. 우리는 지구의 나이가 45억 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나는 360만 년 전 우리의 조상이 탄자니아에 남긴 발자국 사진과 1969년 달의 고요의 바다에 찍힌 인간의 발자국 사진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적 같은 일인가. 그런 의미에서 한편으로는 인간의 유한함이 안타깝다. 나는 절대로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30세기의 지구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고 인류가 파멸의 끝으로 치닫게 될지 새로운 상생의 길로 들어서게 될지 알 길이 없다. 이 우주의 저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아레시보 성간 메시지에 언젠가는 답할 외계 문명과의 조우도 볼 수 없을 것이다. 나에게 허락된 제한된 이 우주의 신비가 눈부시게 아름답고 또 애달플 뿐이다.
인류는 우주 한구석에 박힌 미물(微物)이었으나 이제 스스로를 인식할 줄 아는 존재로 이만큼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기원을 더듬을 줄도 알게 됐다. 별에서 만들어진 물질이 별에 대해 숙고할 줄 알게 됐다. 10억의 10억 배의 또 10억 배의 그리고 또 거기에 10배나 되는 수의 원자들이 결합한 하나의 유기체가 원자 자체의 진화를 꿰뚫어 생각할 줄 알게 됐다. 우주의 한구석에서 의식의 탄생이 있기까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갈 줄도 알게 됐다. 우리는 종으로서의 인류를 사랑해야 하며, 지구에게 충성해야 한다. 아니면, 그 누가 우리의 지구를 대변해 줄 수 있겠는가? 우리의 생존은 우리 자신만이 이룩한 업적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인류를 여기에 있게 한 코스모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 코스모스 682p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