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라 셀레스티나> - 페르난도 데 로하스

죽기전에꼭읽어야할책1001 다읽기 챌린지

by 정앵무

8. 라 셀레스티나
작가명: 페르난도 데 로하스(Fernando de Rojas)
작가 생몰연도 : 1465년경(스페인)-1541년
언어: 스페인어
초판 발행연도 ; 1499년
초판 발행처: Fadrique de Basilea(부르고스)

⭐️읽은 도서 정보: <라 셀레스티나> 페르난도 데 로하스 지음, 안영옥 옮김/출판사 을유문화사


★ 한줄 감상평 ★
욕망과 사랑 사이, 그 미묘하고 잔인한 틈 사이로 추락하는 인간을 위한 애도


스페인 중세 문학의 걸작으로 사실주의 문학의 효시로 꼽히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없었다면 대신 그 영광을 누렸을 작품'으로 평가받는 페르난도 데 로하스의 <라 셀레스티나>다. 세르반테스는 이 소설을 두고 "너무나 인간적인 작품이라 이 인간적인 것의 일부만 제한다면 불후의 명작이 되었을 것"이라 했다.


이 책을 읽기 전 인터넷에 <라 셀레스티나>를 검색했다가 누군가 인터넷 100자 평에 '처녀막, 정절, 처녀성 상실 등등 이 작품은 지금 읽기엔 너무 너무 너무 낡았다'라고 쓴 것을 보았다. 하지만 오늘날 현재에도 산부인과에는 '처녀막 재생 수술(hymen reconstruction surgery)'이라는 명칭의 수술이 엄연히 존재한다. 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목적인지 모를, 이름부터 기괴한 이 수술이 존재한다는 건 오늘날에도 수요자가 있다는 뜻이다. 소설 속에서 여성들을 남성들에게 소개해 주고 중간에서 돈을 받는 뚜쟁이 노파 셀레스티나는 자신이 수많은 여성들의 처녀막 복구 시술(여성의 질 안에 피를 넣은 물고기 부레를 넣거나 꿰매는 방법으로 처녀인 채 하도록 하는)을 해주어 처녀로 팔았다고 자랑하듯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당시의 혼란스러운 시대적 변화 속에서 이중적 모순에 휩싸인 사람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은 1400년대 후반의 스페인, 즉 기독교 세계관이 지배적이었던 중세가 막을 내리고, 근대의 여명이 막 밝아올 시기에 쓰인 작품이다. 인간의 육체적 욕망이 금기시되고, 여성의 정절이 매우 강요되었던 중세의 끝자락에서 뚜쟁이 노파 셀레스티나의 존재는 암암리에 육체의 쾌락을 거래하는 남녀들, 방탕한 짓을 저지르지만 고귀하고 깨끗한 여인을 아내로 맞길 바라는 남자들, 다시 순결한 처녀로 거듭나 거짓을 연기하는 여인들의 이중성을 한층 견고하게 해주는 매개체다. 신(神) 중심의 사회에서 표면적으로는 하느님께 경건한 삶을 위해 기도하고 정절을 맹세하며 고해성사를 하지만 이미 사람들 속에는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이 꿈틀대며 깨어나와 단단했던 교회의 벽에 균열을 내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순결과 욕망, 쾌락과 금욕, 물질과 정신 사이 그 어딘가에서 어지럽게 방황하는 인간은 라 셀레스티나 속 칼리스토와 멜리베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들도 여전히 이 반복되는 이중성과 모순의 굴레에서 길을 헤맨다. 그렇기에 나는 이 작품이 너무나 낡았다는 의견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의 보편성이 있음을 느꼈다. 1490년 유럽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 대장장이로 일하던 청년이나, 2025년에 수많은 고층 빌딩이 즐비한 대도시에서 차를 몰고 출근하는 청년이나 사랑의 열병으로 괴로워하고 소중한 이를 잃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세상만사가, 물론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로 살펴보면 태어나서 백발이 되는 그 순간까지 이 유명한 금언 아래 흘러가고 있다. 바로 전투다. 아이들은 자신의 장난감과, 학생들은 공부와, 청년들은 쾌락과, 늙은이들은 수천 가지 병마들과 싸우고 씨름한다.

라 셀레스티나 26p, 서언


작품의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귀족 청년 칼리스토는 어느 날 사냥을 하던 중, 우연히 아름다운 처녀 멜리베아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멜리베아는 완강히 거부하고 이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던 칼리스토는 자신의 하인인 셈프로니오에게 이를 털어놓는다. 셈프로니오는 간사한 뚜쟁이 노파 셀레스티나에게 이 둘 사이를 중매해 주기를 청하고 이에 대한 댓가를 나눠갖기로 약속한다.

칼리스토에게 멜리베아를 연결해 주고 보상금을 받을 생각에 뚜쟁이 할멈 셀레스티나는 신이 난다 신이 나~~~


칼리스토의 또 다른 충직한 하인인 파르메노가 칼리스토에게 셀레스티나를 조심하라고 조언하지만 사랑의 욕망에 눈이 먼 칼리스토는 이런 파르메노를 오히려 꾸짖는다. 셀레스티나는 파르메노에게 자신이 거느리는 창녀 아레우사를 대 주며 그 또한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 셀레스티나의 설득으로 결국 멜리베아는 칼리스토를 사랑하게 되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칼리스토는 셀레스티나에게 금목걸이를 준다. 셈프로니오와 파르메노는 셀레스티나에게 자신들에게도 보상금을 나누어줄 것을 요구하지만 욕심 많은 셀레스티나는 거부한다. 결국 셈프로니오와 파르메노는 분노에 휩싸여 셀레스티나를 죽여버리고, 이 둘도 살인죄로 경찰에게 잡혀 참수형에 처해진다. 그 후 칼리스토는 멜리베아를 만나러 갔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죽게 되고 이에 대한 절망으로 멜리베아도 탑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결과적으로 그놈의 사랑(혹은 육체적 욕망) 때문에 5명의 사람이 죽게 되는 비극적인 결말이다.


마지막에 멜리베아는 자신의 아버지 플레베리오에게 모든 걸 고백하고 그가 보는 가운데 탑에서 떨어져 자살하는데, 사랑하는 외동딸의 죽음을 직접 목격한 아버지 플레베리오의 기나긴 슬픔의 탄식이 아주 인상적이다. 많은 문학 작품에서 '사랑'은 인간 구원의 수단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플레베리오는 이 '사랑'에 대해 정반대의 물음을 던진다.



너에게 걸맞지 않은 이름 '사랑'을 누가 너에게 지어 주었느냐? 진정 네가 사랑이라면, 너를 섬기는 자들을 사랑해야 하는 게 아니냐? 그리고 사랑한다면, 고통은 주지 말아야지 ...... 너를 모시는 것들과 이 모시는 자들을 대신하는 것들의 종착역은 어디란 말인가? 거짓부렁이 뚜쟁이 셀레스티나는 독살스러운 너를 섬기려다 결코 얻지 못했던, 자기보다 더 충실한 하인들 손에 죽었고 하인들은 목이 잘려 죽었다. 칼리스토는 낙사했고 내 불쌍한 딸은 그의 뒤를 따르려고 같은 길을 택했다. 이 모든 죽음의 이유가 바로 너다. 감미로운 이름을 네게 주었지만 너는 쓰라린 일만 저지르는구나 ...... 네 이름은 기쁨을 주지만 너를 다루다 보면 모두를 슬프게 해. 너를 몰랐거나, 너를 조심한 사람들은 복되도다. 네 불길은 어디에 닿을지 결코 가르쳐 주지 않는 불타는 번개의 불길이다. 네 불길이 태우는 땔감은 인간의 영혼과 목숨이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또 다른 사랑 때문에 죽어버린 이 비극 앞에서 플레베리오의 마지막 말들은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라 셀레스티나를 읽고 나니 떠오르는 시가 있다.
프랑스 시인 루이 아라공(Louis Aragon)의 Il n'y a pas d'amour heureux(행복한 사랑은 없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아무튼 오래전에 우연히 읽고 참 인상 깊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금 문득 생각이 난다.


https://youtu.be/Xo7e0UkT4XA?si=hXq-HjXBbw-BTyq9

루이 아라공의 이 시를 가사로 해서 프랑스 샹송 가수 Georges Brassens(조르주 브라상)이 부른 버전


Il n'y a pas d'amour heureux
행복한 사랑은 없다

Rien n'est jamais acquis à l'homme.
Ni sa force ni sa faiblesse ni son cœur.
Et quand il croit ouvrir ses bras
Son ombre est celle d'une croix
Et quand il croit serrer son bonheur, il le broie
Sa vie est un étrange et douloureux divorce
Il n'y a pas d'amour heureux
인간에겐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의 힘도, 그의 약함도, 그 자신의 마음도
그리고 그가 자신의 팔을 벌리고 있다고 믿고 있을 때,
그의 그림자는 십자가의 그림자이다.
그가 자신의 행복을 꼭 붙잡고 싶어 할 때, 그는 그것을 부숴버린다.
그의 삶은 이상하고도 고통스러운 불일치이다.
행복한 사랑은 없다.

Sa vie elle ressemble à ces soldats sans armes
Qu'on avait habillés pour un autre destin
A quoi peut leur servir de ce lever matin
Eux qu'on retrouve au soir désarmés incertains
Dites ces mots ma vie et retenez vos larmes
Il n'y a pas d'amour heureux
인생, 그것은 또 다른 운명을 위해 옷을 입힌
무기 없는 병사들과 닮아 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그들에게 무슨 소용이 될 수 있겠는가
저녁이 되면 다시 무력해지고 불안해지는 그들
이렇게 말하라, 나의 인생이여 그리고 눈물을 거두어라.
행복한 사랑은 없다고

Mon bel amour mon cher amour ma déchirure
Je te porte dans moi comme un oiseau blessé
Et ceux-là sans savoir nous regardent passer
Répétant après moi les mots que j'ai tressés
Et qui pour tes grands yeux tout aussitôt moururent
Il n'y a pas d'amour heureux
나의 아름다운 사랑, 나의 소중한 사랑, 나의 찢긴 상처여
나는 상처 입은 새처럼 내 안에 너를 품고 있다.
그리고 저 사람들은 멋모르고 우리가 지나가는 것을 지켜본다.
내가 엮어 놓았던, 그리고 너의 커다란 눈에서
곧 죽어 버렸던 그 말들을 따라 하면서,
행복한 사랑은 없다.

Le temps d'apprendre à vivre il est déjà trop tard
Que pleurent dans la nuit nos cœurs à l'unisson
Ce qu'il faut de malheur pour la moindre chanson
Ce qu'il faut de regrets pour payer un frisson
Ce qu'il faut de sanglots pour un air de guitare
Il n'y a pas d'amour heureux
사는 법을 알았을 땐 이미 때가 너무 늦었다.
우리들의 마음은 하나 되어 밤새 눈물을 흘린다.
가장 하찮은 노래에도 불행이 필요하며
전율의 대가로 후회라는 값을 치러야 하고,
기타 선율 하나에도 울음이 필요한 것을.
행복한 사랑은 없다.

Il n'y a pas d'amour qui ne soit à douleur
Il n'y a pas d'amour dont on ne soit meurtri
Il n'y a pas d'amour dont on ne soit flétri
Et pas plus que de toi l'amour de la patrie
Il n'y a pas d'amour qui ne vive de pleurs

Il n'y a pas d'amour heureux
Mais c'est notre amour à tous deux
고통이 없을 사랑은 없다.
상처받지 않을 사랑도 없다.
시들지 않을 사랑도 없다.
그리고 조국애, 너도 마찬가지다.
눈물로 살지 않을 사랑은 없다.

행복한 사랑은 없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두 사람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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