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전에꼭읽어야할책1001 다읽기 챌린지
6. 황금 당나귀
작가명: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Lucius Apuleius)
작가 생몰연도 : 123년경(마다우로스; 현재의 알제리)-170년
원제 : Metamorphoses(변신)
초판 발행연도: 1469년
초판 발행처: C. Sweynheim & A. Pannartz
⭐️읽은 도서 정보: <황금 당나귀>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지음, 송병선 옮김/출판사 현대지성
★ 한줄 감상평 ★
당나귀가 바라본다. 제 어리석음 하나 보지 못하는 눈 뜬 장님같은 인간들을.
이번엔 서기 2세기 무렵의 그리스로 떠날 시간이다. 오늘날까지 전 세계에서 라틴어 원본이 완전하게 보전되어 남아 있는 유일한 라틴어 소설,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의 <황금 당나귀>다.
우리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통해 익숙하게 알고 있는 프시케와 에로스의 이야기를 최초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황금 당나귀는 A.D.2세기에 쓰였는데 이미 기원전 4세기 헬레니즘 시대 때 에로스와 프시케의 모습을 조각한 유물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아풀레이우스가 황금 당나귀에 저술하기 이전부터 원전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를 아풀레이우스가 그대로 혹은 약간의 각색을 거쳐 본인의 소설 속에 삽입한 것으로 보인다.
<황금 당나귀> 속 주인공의 이름은 루키우스로 작가 본인의 이름과도 동명이다. 소설 속에서 젊은 루키우스는 사업차 히파타라는 도시로 떠나 그곳에서 밀로라는 구두쇠의 집에 머문다. 밀로의 아내 팜필레는 위험한 마법을 부리는 여인이었는데, 마법에 흥미가 많았던 루키우스는 그녀의 마법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은 호기심에 사로잡힌다. 루키우스는 팜필레의 하녀인 포티스를 유혹하고, 그녀에게 부탁해 팜필레가 마법을 이용해 부엉이로 변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목격하게 된다. 이를 보고 매료된 루키우스는 자신도 똑같이 부엉이로 변신하는 마법을 경험해 보고 싶다고 포티스에게 애원한다. 포티스는 팜필레의 마법 연고가 든 상자를 가져와 루키우스에게 바르게 하는데 실수로 부엉이가 아닌 당나귀로 변하는 연고를 주게 되고 이때부터 당나귀로 변한 루키우스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혹독하고 가여운 여정이 시작된다.....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의 장난 때문인지 당나귀가 된 루키우스는 하필 그날 밤 밀로의 집을 약탈하러 온 도둑들에 의해 함께 끌려간다. 이후 루키우스는 도둑떼, 카리테, 목동, 타락한 사제 무리, 채소 재배업자, 군인 등 여러 인간들의 손을 거쳐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갖은 노동과 몽둥이질을 겪으며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다.
그리고 마침내 부잣집 주인의 주방에서 일하는 형제의 손에 넘겨진다. 그곳에서 인간들의 맛있는 음식만 골라 먹는 루키우스의 모습을 본 주인은 신기한 당나귀라며 그에게 사람처럼 행동하고 표현하는 법을 가르치며 좋은 대접을 해준다. 마을의 유명 인사가 된 당나귀 루키우스를 두고 주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공개 행사에서 죄수 여인과 루키우스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온 도시 사람들에게 보여주려 계획한다. 이를 알게 된 루키우스는 이 치욕스러운 상황을 피하고자 행사 당일 멀리 도망친다. 도망친 곳에서 루키우스는 이시스 여신에게 자신을 원래의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이를 들은 이시스 여신은 그를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려주게 된다. 이에 깊이 감사한 루키우스는 사제가 되어 신을 섬기는 삶을 사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소설은 루키우스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고 당나귀로 변한 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인간들의 악하고 추한 여러 가지 모습들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호메로스는 오디세우스를 소개하면서 그를 최고의 지혜를 지닌 사람으로 예를 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수많은 도시와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보면서" 가장 고귀한 지혜의 미덕을 습득했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지극히 옳다. 이제 나는 당나귀로 지냈던 시절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당나귀 신세로 겪은 수많은 모험이 내게 지혜를 가르쳐 주지는 않았지만, 풍부한 경험을 쌓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당장 닥쳐올 내일의 불행조차 알지 못한 채 끝없는 탐욕과 애욕에 허우적대는 어리석은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당나귀 루키우스의 눈을 통해 바라보게 한다. 아풀레이우스는 이를 통해 지나친 호기심과 욕망에 대해 경고하고 신에게 귀의하는 경건한 삶을 살라고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2세기 경에 지어진 작품이라는 게 아주 놀라울 만큼, 소설은 흥미롭고 잘 짜인 구성을 갖추고 있다. 황금 당나귀에는 천일야화처럼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등장하는 액자식 구성도 자주 보인다. 에로스와 프시케의 이야기도 루키우스를 끌고 간 도적 무리가 납치한 카리테가 울자 그녀를 달래기 위해 노파가 해주는 작중 이야기 중 하나다.
남녀 간의 사랑이나 감정에 대해서도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그 당시의 그리스와 로마가 얼마나 자유롭게 개방적인 문화였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인간의 운명과 모든 길흉화복이 '신'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이 세상은 신비로움으로 가득 찬 곳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저 깊은 지옥의 심연을 흐르는 스틱스 강의 존재를 믿었으며, 풍요로운 대지를 관장하는 자비로운 케레스(데메테르) 여신에게 온 마음을 바쳐 감사를 표했다. 이는 과학적 사고와 물질문명이 지배적인 현대인의 관점에서 비합리적이고 말도 안 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황금 당나귀>처럼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그들의 꿈처럼 아름다운 이야기, 찬란히 빛나는 신화와 전설, 서사시들을 통해 결코 옛사람들의 지성이 오늘날의 현대인들보다 뒤처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의 그들이 지금 우리보다 더 많은 진리를 알고 있던 것은 아닐까.
당나귀 루키우스를 만난다면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루키우스여, 당신이 바라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지금도 인간은 단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시기하며 어리석게 웃고, 울고, 기뻐하고 화를 냅니다.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욕망의 항아리에 끊임없이 헛되이 물을 들이붓느라 일생을 허비합니다. 어쩌면 당나귀보다 인간의 처지가 더 불쌍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의 지독한 장난에서 우리는 언제 벗어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