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수호전> - 시내암

죽기전에꼭읽어야할책1001 다읽기 챌린지

by 정앵무

5. 수호전

작가명: 시내암(施耐庵), 나관중(羅貫中)
작가 생몰연도 : 1296년경(중국)–1370년경
다른 제목: 호숫가의 무법자들
원제 : 水滸傳(수호전)
초판 발행연도: 1370년​

​⭐️읽은 도서 정보: <원본 수호전 1~6> 시내암 지음, 송도진 옮김/출판사 글항아리


★ 한줄 감상평 ★
중심을 꿈꾸며 끝없이 싸우는 귀퉁이의 사람들. 죽어서야 깨어질 그 허망한 꿈


중국 4대 기서(명나라, 청나라 시절의 소설들 중 특출나게 뛰어난 4개의 걸작 소설을 칭하던 말) 중 삼국지에 이은 두 번째 작품, 수호전이다. 나는 수호전보다는 수호지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데 수호지는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제목이고 원래 수호전이 맞다고 한다.
삼국지는 왕조를 중심으로 다루기 때문에 '지'가 붙지만(사실 중국 본토에서는 삼국지도 아니고 삼국연의로 부른다고 함), 수호전은 인물 중심의 이야기(傳)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출처: 나무위키 '수호전')

현존하는 수호전의 판본은 매우 복잡한데 일반적으로 수호전의 판본은 회수로 구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100회본, 120회본, 70회본(71회본)이 있고 그 외에도 104회본, 110회본, 115회본 등등 종류가 아주 다양하다.
주류는 70회, 100회, 120회본인데 수호전 탄생 이래로 거의 모든 고사가 포함된 것은 120회본이다. (출처: 원본 수호전1 서문)

국내에도 수호전 책은 다양한 버전이 있다. 그 중에서 나는 120회본을 빠짐없이 완역한 글항아리에서 출판된 송도진 역의 원본 수호전을 읽었다. 2024년 6월에 출간된 이제 나온 지 갓 1년 정도 된 따끈따끈한 책이다.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동네 도서관에 없기도 하고 왠지 이건 직접 소장하고 싶어서 내가 샀다. 내돈내산!!!!!!!

사실 그냥 원본을 다 완역한 거라고 하길래 이왕 읽을 거면 제대로 읽어야지 싶어서 책을 직접 보지도 않고 인터넷에서 주문을 한 거였는데.... 읽는 내내 감탄했고 역자인 송도진 선생님께 진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송도진 번역가님이 이 글을 볼 일은 없으시겠져?????제 마음을 전해드릴 수 없어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일단 주석이 미쳤다.......진~~~~짜 상세하다..!!!
이런 고전소설, 특히나 삼국지나 수호전처럼 중국 고전소설들은 각종 관직명부터 시작해서 당시의 지명, 각종 복잡한 한자어와 고사성어, 역사적 인물 등등이 끊임없이 등장하는데 이 책에는 그런 것들에 대한 주석들이 엄청 세세하게 달려있고, 또 각 회의 마지막에는 따로 실제 역사적인 사실이나 추가 설명들이 되어 있어서 나처럼 배경지식이 0에 수렴하는 사람도 정말 내용들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

이걸 읽으니까 나중에 삼국지도 송도진 선생님 번역본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후한서, 사기도 번역 중이시라고 하는데 나오면 꼭 읽어보고 싶다. 수호전을 읽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글항아리에서 출판된 송도진 역의 원본수호전을 강추합니다!!!!!!!!!(참고로 나는 ㄹㅇ글항아리와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임...광고 같은 거 아님)

소설 수호전의 처음은 북송 인종 때 나라에 역병이 돌자 이를 물리치기 위해 태위 홍신이 용호산에 장천사를 찾아갔다가 복마전에 봉인되어 있던 108 마왕, 요괴들이 풀려나게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마 이때 풀려난 108 요괴가 나중에 108명의 양산박 호걸들로 다시 강림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벌써 꿀잼아닌가?????!!! 흥미진진하다.


108이란 숫자가 어쩐지 익숙하다 했더니...108요괴는 만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였던 것이다.


108요괴, 108번뇌, 108배, 108염주....
108이란 숫자에 뭐 무슨 의미가 있나? 하고 찾아보았더니



108은 불교에서 중생의 번뇌를 상징하는 숫자로 여겨진다고 한다. 아아..그렇구나..나무아미타불..
이제 열받으면 에라이 18!!이라고 하지 말고 에라이 108! 이라고 해야겠다. 물론 헛소리다.
갑자기 예전에 템플스테이 갔을 때 108배 했던 게 생각난다. 1배 할 때마다 속세의 번민을 떨쳐내는 것에 집중하면서 해야 하는데 나는 '진짜 설마 108개를 다 하나??' 계속 이 생각만 하느라 집중을 못 했다. 진짜 다 하더라;;;아 왜 또 이런 쓸데없는 소리를?? cut !!!!!

아무튼 108 요괴가 풀려난 후 소설의 배경은 간신들이 득세하는 혼란한 북송 말기 휘종 치세로 옮겨간다. 각자의 이런저런 사연들로 집을 떠나 양산박에 모인 다양한 신분을 가진 108명의 호걸들이 점차 백성들의 민심을 얻고 나중에는 조정에까지 진출하여 요나라 정벌, 도적 전호와 왕경, 방랍까지 토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108명의 호걸들은 조정에서 일하던 신하와 장수부터 장사꾼, 스님, 도사도 있고 그냥 동네 깡패 건달까지 온갖 종류의 다양한 출신의 인물들인데 공통점은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권력과 세상의 중심에서 떨어져 그 주변부에 떠도는 이들이라는 점이다. 이는 소설의 제목인 수호전의 뜻과도 이어진다.
수호전의 수호(水滸)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수변(물가)이라는 의미다. (수호전의 영어 제목도 water margin이다)
청대 학자인 김성탄 金聖歎 (1608~1661)은 “왕토 王土의 끝에 물 水이 있고, 그 물 밖을 호 滸라고 한다”라고 하여 ‘수호’는 ‘왕토 밖의 물’이기에 왕토와는 멀리 떨어진 곳이며, 그러기에 멀리해야 한다고 여겼다. (출처: 원본 수호전1 서문)
즉 수호는 ‘버려진 이들이나 죽어야 하는 이들이 그나마 몸을 보전하며 살 수 있는 곳’이란 의미고, 결국 소설의 중심이 되는 공간적 배경인 양산박은 세상의 주변부에서 떠돌던 이들에게 그들이 모여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되며, 수호전은 세상의 중심이 아닌, 바로 이 가장자리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소설의 전반부, 즉 양산박에 108명이 모두 모이기 전까지는 이 108명이 어떠한 경로로 양산박으로 향하게 되는지가 첫 인물인 사진에서부터 시작하여 노지심->임충->양지->송강->무송 등의 순서로 인물별로 차례차례 등장한다. 나는 108명이 모두 모인 이후에 이들이 조정에 귀순하여 요나라 정벌을 떠나는 소설 후반부보다 사실 인물들의 에피소드가 주가 되는 이 전반부가 더 재미있었다. 특히 노지심이 등장하는 파트는 진짜 웬만한 개그 프로보다 더 웃겨서 계속 낄낄거리면서 읽었다ㅋㅋㅋㅋㅋㅋ아 너무 웃기다 진짜ㅋㅋㅋ

우타가와 구니요시가 그린 노지심. 노지심은 등에 꽃 문신이 있어 화화상이라고도 불린다.


노지심은 수호전에서 내가 애정하는 캐릭터라 잠깐 설명을 해보자면 그는 한마디로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하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감으로 충만한 인물인데 워낙 성격이 더럽고 불같으며 알콜 중독자 수준으로 술을 좋아한다...마을에 못된 짓을 일삼던 백정 정도를 혼내주려다가 때려서 죽여버리는 바람에 현상수배가 걸려 이를 피하고자 얼떨결에 머리를 깎고 중이 된다. 이름도 원래는 노달이었지만 이때 받은 법명이 지심이라 이후에 노지심으로 불린다. 하지만 겉모습만 스님이지 여전히 하는 짓은 그대로라(일명 땡중) 몰래 술 마시고 취해서 절에 올라가 참선하는 스님들의 머리를 북 두드리듯 마구 두드린다던가 하는 기행을 일삼는데 읽는 내내 정말 너무 웃겼다. 이때 임팩트가 굉장히 커서 나중에 큰 활약을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초반부에 강렬한 인상이 무색하게 뒤에서는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많이 서운했다ㅠㅠㅠ지심찡...많이 나와주지...
소설 마지막에는 지진장로의 게언을 이해하고 가부좌를 튼 참선 자세 그대로 죽게 되는데 초반 등장 부분의 개차반(?) 같던 모습과 아주 극적인 대조를 이루면서 수호전의 등장인물 중 처음과 끝이 가장 다른 인상을 주는 캐릭터가 된다.

양산박은 처음 1인자 두령이었던 조개가 죽자, 뒤를 이어 송강이 양산박의 주인이 되어 이들을 이끌게 된다. 소설 속에서 송강은 부패한 탐관오리들의 행패 속에 핍박받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위하는 인물로 명성이 자자하여 어느 곳을 가여도 '송강'이라는 두 글자만 들으면 사람들은 "아니, 자네가 그 산동 운성현 송강 선생이란 말인가??!!", "송강님이신가요??!어이쿠 훌륭하신 분을 제가 몰라뵈었습니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그에게 존경심을 나타낸다. 의리와 덕, 충의를 중시하는 리더로, 삼국지의 유비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비록 양산박 108명의 시작은 재물을 약탈하는 도적떼였으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타의 다른 도적 무리들과 가장 다른 점은 양산박 무리들은 오직 탐욕스러운 관리들과 높은 신분인 자들의 재산만을 노리며 약하고 궁핍한 일반 백성들에게는 오히려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 이런 와중에도 송강은 늘 조정의 부름을 기다리며 그들이 나라를 위해 쓰이기를 바란다.

수호전 후반부는
백성들의 편에 서는 의기로운 양산박 108 두령들 vs 이들과 대척점에 서있는 나쁜 관리들과 다른 도적 무리들의 싸움이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데 나는 책을 읽으면서 양산박 호걸들의 행위에 대해 두 가지 비판적인 생각을 해보았다.

첫 번째, 대의적으로 정의를 위한다는 목적 아래 불법적인 일을 한다면, 이 일이 정당한 것이냐는 점이다. 양산박 무리들이 외치는 핵심 이념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의를 행한다'인데 이들이 이런 행동을 하게 된 계기는 국가의 중심 권력층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민생이 어지럽기 때문이다. 하여, 그들은 국가가 하지 못하는 일(ex. 부패한 관리를 벌하고, 백성을 괴롭히는 자들은 혼내주는 것)을 자처하여 대신하면서 그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살인, 약탈 같은 행위들을 일삼는데 이것이 설상 좋은 목적을 위해 하는 것일지라도 옳은 방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비슷한 맥락에서 홍길동 같은 사람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물을 나누어준다는 측면에서는 선한 행동을 한 것이지만, 그 방법이 부자들의 재물을 약탈하는 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도둑은 도둑인 것이다. 착한 도둑이라고 말해야 하나. 착한 도둑이 존재할 수 있는 개념인가. '선한'것과 사회의 질서를 위한 공통 규범인 법을 어기는 '범법'행위가 공존할 수 있는 것인가.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이 아닌가. 조금 더 나아서 생각해 보자면 아무리 그 목적이 선을 위한 것이라도 방법이 틀려먹었으면 그 목적인 선도 무색해지는 것이 아닐까.

두 번째, 송강은 간신들에 의해 눈이 흐려진 황제로 인해 흔들리는 송나라 조정에서 벗어나 양산박의 두령이 된 인물이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와중에도 항상 황제의 부름을 받고 조정에 다시 귀순하길 꿈꾼다. 결국 그의 뜻대로 황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 세력의 양산박을 불러들여 그들로 하여금 요나라 정벌 등의 국가 일을 맡긴다. 양산박 108명은 황제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며 그들의 목숨을 바쳐 나라를 위해 일하지만, 결과는 결국 그들을 시기한 간신들의 모함에 빠져 독주를 마시거나 자살하는 식으로 씁쓸하게 죽게 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는 비슷한 리더이지만 유비와 대비되는 송강의 한계다. 삼국지에서 유비는 환관들에 의해 어지러워진 한나라를 두고 '충忠'과 '개혁'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말라가는 커다란 고목을 보게 된다. 뿌리가 썩어가고 있는 고목의 끄트머리 가지에서 조그마하게 피어난 새싹을 보면서, 유비는 아무리 새싹이라도 결국 그 뿌리가 썩은 나무에서 자라난 새싹은 마찬가지로 말라죽게 될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한나라에 대한 일말의 충성을 접는다.
만약 송강이 유비처럼 썩어가는 고목에서 피어난 새싹의 운명을 볼 수 있었다면 마지막에 그의 손발과 같은 수많은 양산박 두령들을 잃고 그 자신 또한 독주를 마시고 생을 마감하게 되는 슬픈 일은 피할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수호전 속에서 인물들이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사람의 삶과 죽음은 모두 각자의 정해진 운명. 갈 때가 되었으니 간 것일 뿐.' 송강과 양산박 두령들도 그저 각자의 운명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이라고 긍할 수 밖에.

수호전 속에서는 계속해서 누군가가 빼앗고 빼앗기고 싸운다. 길고 긴 싸움의 이야기다. 그 지리멸렬한 싸움 끝에 결국 무엇이 남는가? 권력도, 세상의 진보도, 부귀영화도, 사랑도 아니다. 그저 가련한 한 인간의 죽음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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