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 작자미상

노벨연구소 선정 최고의 책 100

by 정앵무

욥기(Book of Job)

작가명: 작자미상
기록 시기: B.C. 7세기~B.C. 2세기 (성서비평학)
B.C. 1500~800년경(전통적 견해)
분량: 42장

⭐️읽은 도서 정보: <21세기 해설판 성경 中 욥기>/출판사 일과놀이

+관련하여 추가로 읽은 서적
1. <인간의 상과 신의 상> 칼 구스타프 융 지음, 한국융연구원 C.G.융 저작 번역위원회 옮김/출판사 솔

2.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급진적 휴머니스트의 혁명적 구약 읽기> 에리히 프롬 지음, 이종훈 옮김/출판사 휴


★ 한줄 감상평 ★
신의 환상인가, 환상 속의 신인가


노벨연구소 선정 최고의 책 리스트에 구약성경 중 일부인 <욥기>가 포함되어 있는 걸 보고 처음에 의외라고 생각했다. 종교 경전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또 포함되지 못할 이유도 없다.

믿음이나 시대를 떠나 종교의 가르침들은 인간에게 깊은 통찰을 주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 가르침들을 곡해하고 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조작하는 사람들이지 종교 그 자체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기독교의 성경, 불교의 불경, 이슬람교의 쿠란, 힌두교의 슈루티와 스므리티, 유대교의 타나크 등...이들은 모두 인류의 소중한 유산들이다.


'종교 있으세요?'

누군가 나에게 물으면...잠시 고민에 빠진다.

나는 지금 그 어떤 종교 시설에도 다니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어렸을 때는 나름 열심히 교회에 다녔던 적도 있고 성당에 갔던 적도 있다. 어린 시절의 경험들이 주는 영향력은 참으로 크다. 초등학생 때 외운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두려운 일이 있으면 지금도 가끔 속으로 외운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하는데 끝은 항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이다. 나는 이 문장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말하자면 그냥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렇다면 나는 영혼과 내세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가? 그건 잘 모르겠다. 솔직히 지금의 나에겐 천국과 지옥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보다 빅뱅이론과 다윈의 자연선택설 같은 게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천사???악마??그런 게 어디 있니. 다 인간이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거지. 인간은 상상력이 정말 뛰어나다니까. 과학이 이렇게 발전해서 보이저 1호가 벌써 지구에서 249억 km 떨어진 태양계 밖을 날아가는 21세기에 무슨 중세시대에나 할 법한 소리람. 그럼 나는 무신론자인가? 유물론자인가? 아....이건 좀 복잡하다. 예전에 친구랑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가 나에게 "너 무교잖아~"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0.1초 만에 '나 무교 아닌데?'라는 말이 속에서 바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이어서 떠오르는 생각...'내가 그럼 종교인인가? 기독교인..? 정말? 진짜로?'

왜 나는 무교라는 말에 스스로 발끈했는가.

나는 신을 믿는가? 혼란스럽습니다.....

아무튼 내가 유신론자냐 무신론자냐 무엇을 믿느냐 더 나아가 인간은 신앙이 있어야 하는가!!??? 같은 문제는 하루아침에 끝날 고민이 아니다. 여기서 다 적자면 끝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일단 내가 이것에 관해 다소 '혼란스러워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밝힌다. 길 잃은 어린 양이요 어리석은 중생이로다..

이번에 읽은 <욥기>는 구약성경의 일부로, 기독교의 경전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있다. 여기서 약(約)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약속을 뜻한다. 구약은 문자 그대로 하면 '옛날의 약속'으로 구세주를 보내주겠다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민족 간의 구원 약속을 다룬다. 신약은 '새로운 약속',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새로운 계약을 기록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 이전은 구약, 예수님 이후는 신약이다.
구약은 율법서(모세5경), 역사서, 지혜문학, 예언서로 이루어져 있고 <욥기>는 지혜문학 중 하나다. 구약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유대교 경전이기도 하며 이슬람교의 쿠란도 구약을 차용한다.

<욥기>의 주인공 욥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깊은 사람이었다. 어느 날 사탄은 하느님에게 욥이 믿음이 깊은 까닭은 재산이 넘쳐나고 복을 받고 있기 때문이며, 만약 그가 재앙을 당한다면 욥은 믿음을 져버리고 하느님을 저주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하느님은 욥의 모든 소유를 사탄에게 넘겨주고 욥을 시험에 들게 한다. 사탄은 사고와 전염병으로 욥의 모든 재산을 날려버리고 그의 자식들까지 앗아간다. 사탄에 의해 모든 것을 잃고 병에 걸려 드러누운 욥에게 그의 세 친구 데만 사람 엘리바스, 나아마 사람 소발, 수아 사람 빌닷이 찾아온다. 이 친구들은 욥에게 '네가(혹은 욥의 자식들이) 하느님께 죄를 지어서 이렇게 벌을 받는 것'이라며 그에게 인정하고 회개하라며 다그친다.

다 잃고 만신창이가 된 욥에게 위로는 못해줄망정 '다 네가 지은 죄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다'라고 말하는 인성 빻은 친구들....욥아저씨 손절하세요 그냥

욥은 자신은 이렇게까지 벌을 받을 만큼 죄를 지은 적이 없다며 하느님께 자신의 결백함을 호소한다.


아, 제발 누가 내 말을 들어 주었으면! 여기 내 서명이 있다. 이제는 전능하신 분께서 대답하실 차례! 나의 고소인이 쓴 고소장은 어디 있는가? ...... 그분께 내 발걸음을 낱낱이 밝히고 나 제후처럼 그분께 다가가련만.
- 욥기 31장


이윽고 직접 욥의 눈앞에 나타난 하느님은 욥의 고통에 대답하는 대신, 당신의 초월적인 권능을 감히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내가 땅을 세울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 네가 그렇게 잘 알거든 말해 보아라. 누가 그 치수를 정하였느냐? 너는 알지 않느냐? 또 누가 그 위에 줄을 쳤느냐? 그 주춧돌은 어디에 박혔느냐? 또 누가 그 모퉁잇돌을 놓았느냐? ......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 그것이 모태에서 솟구쳐 나올 때. 내가 구름을 그 옷으로, 먹구름을 그 포대기로 삼을 때. 내가 그 위에다 경계를 긋고 빗장과 대문을 세우며 "여기까지는 와도 되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 너의 도도한 파도는 여기에서 멈추어야 한다." 할 때에 말이다.
- 욥기 38장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욥은 하느님의 권능을 모두 그대로 인정하고 순응하며 하느님에게 반항한 자신을 뉘우친다. 결국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은 욥은 하느님께 은총을 받아 이전보다 더 많은 재산과 자식을 얻게 된다.

<욥기>를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무고한 자의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흔히 신의 존재에 회의적인 입장을 갖는 사람들은 "만약 신이 있다면, 왜 아무런 죄 없이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가? 대체 신은 이때 무엇을 하는 것이며 그들의 고통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의문을 품는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고통을 당하는 이유가 그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하느님께 받는 벌이라고 말한다. 친구들의 논리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고통받는 모든 자들은 다 자신 혹은 그들의 부모나 자식이 저지른 죄 때문에 마땅히 벌을 받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 얼마나 부조리한 주장인가. 이것은 선하고 바르게 살지만 힘든 시련을 겪는 모든 이들을 모욕하는 말이다. 불치병에 걸린 어린아이를 두고 '그것은 저 아이가 지은 죄 때문입니다'라고 말할 것인가? 아니면 그의 부모가 저지른 죄 때문에? 무슨 연좌제 형벌도 아니고, 이런 논리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욥의 친구들과 같은 이런 징벌적 종교관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종종 본다. <욥기>에서 하느님은 이런 오류에 빠져있는 어리석은 욥의 세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와 너의 두 친구에게 내 분노가 타오르니, 너희가 나의 종 욥처럼 나에게 올바른 것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나의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간청하면, 내가 그의 기도를 들어주며, 너희의 어리석음대로 너희를 대하지 않겠다. 이 모든 것은 너희가 나의 종 욥처럼 나에게 올바른 것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욥기 42장


욥은 그의 친구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욥의 기도 덕분에 세 친구는 하느님께 용서를 받는다. <욥기>의 해석은 매우 다양한데, 내가 읽고 느낀 점은 1. 신앙은 욥의 세 친구들이 말한 것 같은 그런 인과응보의 논리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2. 인간은 신(혹은 자연)의 섭리를 다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교회에 가야합니다!!!교회에 가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져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드는 생각이 있다. 교회에 안 갔다고, 본인한테 예배 안 드렸다고 지옥에 보내는 신이라니. 짜친다...자기한테 관심 안 가졌다고 앙심을 품는 인간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 이런 신이라니. 어딘가 짠하기까지 하다.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는 묻고 싶다. "만약 신이 정말 그렇다면, 그런 존재라면, 제가 이런 신을 왜 믿어야 합니까? 이런 신을 믿는 게 저에게 대체 어떤 가르침을 줍니까?"

이번에 <욥기>와 함께 읽은 책 중 하나인 에리히 프롬의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에서는 구약 속에서 보이는 이런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의 하느님과 사랑과 자비를 가진 정말 '신'과 같은 모습의 하느님, 그리고 인간의 자유 의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에리히 프롬은 구약을 '하느님 말씀'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구약은 한 명이 쓴 것도 아니고,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쓴 것도 아니며, 그것은 삶과 자유를 위해 여러 세대에 걸쳐 투쟁해온 한 민족의 정신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구약 속 하느님은 단순히 절대적 군주가 아니다. 그는 인간에게 율법을 주고, 인간이 스스로 책임지고 선택하며 살아가길 요구하는 존재다. 기독교나 이슬람교와 달리, 유대교에서는 형식적 예배나 신비적 체험보다 율법 준수, 즉 삶의 방식이 중심이다. 그들에게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은 단순히 기도하는 게 아니라, 정의롭게 살고, 약자를 보호하고, 공동체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창세기의 '선악과 사건'을 프롬은 인간이 자유와 주체성을 획득한 사건으로 해석한다.


인간의 첫 번째 행위는 반항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인간이 반항하자 하느님으로서 지고한 지위를 지키고 싶어서 인간을 벌한다. 하느님은 일종의 강압적 조치, 즉 아담과 이브가 생명나무 열매를 따 먹고 하느님이 되는 두 번째 단계를 밟지 못하도록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함으로써 지고한 위상을 지킨다. 인간은 하느님의 위세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지만 후회하거나 회개하지 않는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뒤 자기 힘으로 생활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첫 번째 불복종 행위가 인류 역사의 기원이다. 인간의 자유는 거기서 비롯했기 때문이다.
- 에리히 프롬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 中 31p



창세기에서 하느님은 인간들의 행동에 화가 나 대홍수로 지상의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유일하게 착한 인간이었던 노아에게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그 증표로 무지개를 보여준다. 성약을 체결함으로써 하느님은 이제 더는 절대적 지배자가 되지 못한다. 하느님과 인간은 어떤 협정의 동반자가 되었다. 하느님은 일종의 '절대' 군주에서 '입헌' 군주로 바뀌고 인간과 마찬가지로 헌법(여기서는 성약) 조항에 얽매인다. 하느님은 제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잃었으며, 인간은 하느님과 한 약속, 즉 성약에 명시된 미명 아래 하느님에게 도전할 자유를 얻었다. 모든 생물의 생존권은 하느님조차 바꿀 수 없는 최초의 율법으로 확립된다. 책을 읽으면서 이와 같은 프롬의 견해가 참 흥미로웠다. 프롬의 관점에서는, 신앙이란 복종이 아니라 자유, 책임, 인간적 성숙을 가능하게 하는 길이다.

<욥기>와 관련한 해석 중 가장 특이한 해석으로 의사 겸 심리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의 <인간의 상과 신의 상>에 포함되어 있는 '욥에의 응답'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여 나는 이 책도 추가로 읽었다. 혹시라도 이 책을 읽으실 분이 있다면....미리 말씀드리는데 책이 매우...어렵습니다. 원래 칼 융의 문장 자체가 상당히 난해하다고는 하지만 너무 어려워서 읽으면서 애를 먹었다.

칼 구스타프 융(1875~1961). 그의 저작들은 내용 자체도 어렵지만, 문체 또한 난잡하기로 악명이 높다. 앞으로 그냥 프로이트만 읽겠습니다...


읽다가 몇 번이나 그만 읽을까 고민했으나 어쨌거나 꾸역꾸역 다 읽었다. 괴롭긴 했지만 그래도 다 읽었으니 간단히 소개를 하자면, 책은 크게 다음의 세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1. 심리학과 종교
2. 미사에서의 변환의 상징
3. 욥에의 응답
<욥기>의 해석은 세 번째 장인 '욥에의 응답'에서 다루고 있다.

융 본인이 원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많은 영향을 받은지라 이 책에서도 그는 종교를 인간의 무의식과 꿈에 연결 지어 상당한 페이지를 할애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읽으면서 뭔가 유사과학 같은... 묘한 인상을 꽤나 받았는데, 인간의 무의식이나 정신세계 같은 주제 자체가 어느 정도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융이 말하는 종교의 핵심은 '교리나 제도'가 아니라 인간이 내적으로 느끼는 경외감, 초월적 체험 같은 '심리적 사실'이다. 융에게 있어 신이 진짜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신의 이미지가 인간 정신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는 인간들의 무의식 속에는 보편적인 종교적 상징이 있다고 말한다. 융은 그의 환자들이 꾼 꿈의 사례들과 전 세계의 온갖 오래된 신화와 문명, 종교 의식들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를 설명한다. 그의 이론의 시시비비를 떠나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깊은 조예에 감탄을 표한다.

<욥기>에 대한 융의 해석, 즉 책의 세 번째 파트인 '욥에의 응답'에 실린 내용을 간단히 적어보자면 융은 <욥기>를 무의식과 자아 사이의 심리적 드라마로 해석한다. 융은 전능하고 선한 신으로만 보이는 하느님 안에도 잔혹함, 불의, 모순이 존재한다고 본다. 욥을 이유 없이 괴롭힌 행동 자체가 신의 어두운 면을 드러낸 것이다. 욥은 신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도 '나는 억울하다'라고 끝까지 주장하는데 융은 이것을 인간 의식이 무의식적인 신적 힘과 대등하게 맞선 순간으로 본다.
심리학적 의미에서
- 하느님=자기(self): 무의식 깊숙한 원형적 힘, 선과 악을 모두 포함한 전체성
- 욥=자아(ego): 의식적 인간, '나는 의롭다'라고 주장하는 의식
라고 해석할 수 있으며 <욥기>는 한마디로 자아(욥)가 무의식(self, 하느님)과 맞서 싸우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이 대결을 통해 무의식의 그림자가 드러나고, 자기(self)가 새로운 단계로 변환한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무조건 신에게 복종하는 존재가 아니라, 무의식적 신적 힘과 맞서야 전체성에 도달할 수 있다.

끝으로 프롬과 융 모두 '종교는 단순한 교리나 예배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성숙을 위한 상징적 언어와 실천이라는 점'에서 통한다.

인간은 자신의 실존을 위협하는 것들을 인식하지만, 방어 수단이 충분하지 않다. 결국 인간은 병들거나 늙어서 죽고 만다. 사랑하는 이들이 그보다 먼저 또는 나중에 죽는다. 둘 중 어느 경우든 위로받지 못한다. 인간은 불확실한 존재이며 가지고 있는 지식도 단편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이 따를 수 있는 확실성을 뒷받침하는 절대 불변의 기준을 찾는다. 인간은 그런 절대 불변의 기준 없이 지낼 수 있을까?
- 에리히 프롬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 中 88p


불확실한 인간은 무엇으로부터 위안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런 맥락에서, 인간에게는 신이 있어야만 한다.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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