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생애> - 작자미상

죽기전에꼭읽어야할책1001 다읽기 챌린지

by 정앵무

10.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생애

작가명: 작자미상
원제: La vida de Lazarillo de Tormes y de sus fortunas y adversidades
초판 발행연도: 1554년
초판 발행처: Alcalá de Henares(스페인)

⭐️읽은 도서 정보: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삶, 그의 행운과 불운> 작자 미상, 최낙원 옮김/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


★ 한줄 감상평 ★
인생은 그저 행운과 불운의 절묘한 교차의 연속 지점 그 어딘가를 맴돌며 걷는 궤적


9월부터 개인적으로 신분의 변화가 생겼다. 놀고먹던 신세 좋은 한량에서 노동자와 피교육자 사이 그 무엇인가가 되었다. 원래도 지식이 깊은 건 아니었으나 1년 반 동안 뇌를 깨끗이 비우고 놀다 보니 그나마 있던 지식도 다 날아간 듯하다. 본업에 집중하고 공부도 해야 해서 당분간 긴 분량의 장편들을 읽는 것은 조금 보류하고 크게 부담이 가지 않는 작품들을 위주로 먼저 읽으려고 한다.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생애, 그의 행운과 불운>은 140페이지 남짓한 짤막한 소설이라 지방에서 집 근처로 올라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다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은 주인공 라사리요(aka 라사로)의 1인칭 독백처럼 서술되는데 서문부터 참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다.


나아가서 복 많은 운명을 타고나 귀하게 태어나신 분들께서는 자신의 힘으로 이룩한 것은 하나도 없고 단지 운명의 여신이 잘 봐주었을 따름이란 것과, 반면에 가혹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힘과 기민함으로 역경을 헤치면서 인생을 편안한 항구로 끌고 온 이들도 얼마든지 훌륭한 일을 이룩해 낼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 서문 中 24p


이 소설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나타낸 문장이기도 하다.

주인공의 이름인 라사리요, 혹은 라사로(lazaro)는 히브리어로 '하느님께서 도와주셨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소설 속 라사로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하느님이 그를 버린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다사다난한 그의 삶 때문에 이 이름의 뜻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그렇지만 재미있는 건, 전반적으로 계속 불운의 연속을 밟는 라사로지만 이 소설이 비극적이라거나 슬프게 느껴지기보다는 종국에는 희극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채플린의 말처럼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 했던가. 라사로의 생 또한 그렇다.


행운과 불운이 뒤섞인 라사로의 생애는 스페인 중부 살라망카의 한 마을에서 시작된다. 그의 아버지는 물레방앗간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는데 곡물을 빻기 위해 방앗간에 온 사람들의 자루에서 곡물을 빼돌린 혐의로 처벌을 받아 추방된다. 당시 무어인(이슬람계 북아프리카인들) 토벌대가 편성되자 추방된 라사로의 아버지는 이 토벌대 어느 기사의 말구종으로 참가하였다가 목숨을 잃는다. 과부가 된 라사로의 어머니는 라사로와 함께 도시로 이주해서 학생들의 밥이나 빨래를 해주거나 식당 겸 여관에서 숙박객들의 시중을 드는 일 같은 온갖 고생을 하면서 그를 키운다. 그러다 라사로가 소년이 되었을 무렵, 한 맹인이 그의 어머니가 일하는 식당에 머무른다. 맹인은 라사로가 그의 길잡이로 적당하다고 생각했는지 어머니에게 라사로를 달라고 청한다. 당시 스페인에서는 맹인들이나, 신부들 또는 수도사들에게 어린아이들을 맡겨 교육시키는 대중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라사로를 맹인에게 맡기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당부한다. 그렇게 맹인은 라사로의 첫 번째 주인이 된다.

이 맹인은 사람들에게 기도를 해주고 돈을 받아 생활했는데 매우 심각한 구두쇠였다. 그는 라사로에게는 최소한의 음식만을 주었고 이 때문에 라사로는 늘 굶주림에 시달렸다. 배가 고픈 라사로는 맹인 몰래 그의 음식이나 포도주를 훔쳐 먹었으나 매번 이를 눈치챈 맹인에게 얻어맞거나 혼나기 일쑤였다. 결국 이 지독한 구타와 굶주림에 불만을 품은 라사로는 맹인을 떠난다. 그러나 라사로는 하느님 다음으로 그에게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가장 효과적으로 가르쳐 주고 그의 갈 길을 비추어 준 사람은 바로 이 맹인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래, 이놈 말이 맞아. 이놈이 하는 말은 눈을 크게 부릅뜨고 제 갈 길은 제가 찾아가라는 말이야. 그래 나는 혼자야. 나 이외에 그 누구도 나를 도울 수는 없어.'
- 33p


첫 번째 주인이었던 맹인을 떠난 라사로는 그 이후 마세다라는 마을에서 그의 두 번째 주인인 욕심 많고 인색한 신부를 만난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재물과 식량들을 자물쇠로 꼭꼭 걸어 잠근 채 라사로에게는 죽지 않을 만큼의 음식만 주는 통에 여기서 라사로는 이전보다 더 심각한 굶주림에 고통받으며 바싹바싹 말라간다ㅠㅠ


소설 속에서 '굶주림'이라는 테마가 계속 등장한다. 생물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 최소한의 삶의 조건이 충족되지 못해 라사로는 고통받고 결국 이것이 그를 더 큰 어려움으로 몰아넣는다


라사로는 꾀를 내어 음식을 조금씩 훔쳐먹지만 결국 탄로나 신부에게 몽둥이로 머리를 맞아 사흘 만에 깨어난 후 15일 동안 누워지낸다. 신부는 회복된 라사로에게 다른 주인을 찾아 떠나가라며 그를 내보낸다. 라사로는 톨레도라는 도시를 떠돌다가 세 번째 주인인 하급 귀족을 만난다. 이 세 번째 주인은 아무 능력도, 가진 것도 없이 명예와 체면치레에만 열중하는 자다. 라사로는 비록 그의 하인이지만 그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는 집세를 내지 못해 라사로를 버리고 몰래 도망가 버리고 할 수 없이 라사로는 다시 다음 주인을 찾아 나선다. 라사로는 찬양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세속적인 일에만 몰두하는 수도사, 뻔뻔스럽게 사람들을 속여 면죄부를 팔며 돈을 버는 면죄부 포교사, 대성당의 전속사제, 포졸 등 다양한 인간 군상 밑에서 일하며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주변 친구들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도시의 포고 담당 공무원이 되고, 산살바도르 교구 수석사제의 소개로 마음씨 좋은 한 여성과 결혼까지 골인한다. 세간에는 이 수석사제와 그의 부인이 부적절한 관계라는 소문이 떠돌지만 라사로는 "내 몸보다도 더 사랑하는 내 아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이 나는 제일 싫어. 하느님께서는 내 아내를 통해 나에게 넘치는 복을 주고 계시다네. 만일 어느 누구든 이상한 말을 하면, 나는 죽도록 그와 싸우겠네."라고 말하며 소문을 모두 부정하고 그의 가정은 평화를 찾는다. '이때가 제가 번영을 누린 제 인생 최고의 해였습니다.'를 마지막 문장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그 이후 라사로의 삶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소설의 제목처럼 라사로의 생애 속에서 행운과 불운은 아주 미묘하게 모습을 왔다 갔다 하며 교차한다. 마치 방향을 한쪽으로 기울이면 새까매져서 아무것도 안 보였다가 다시 또 조금만 방향을 틀면 선명하게 보이는 편광필름처럼 말이다.


편광필름 두 장을 겹쳐 방향을 조금씩 돌리다 보면 투명해졌다가 까매졌다가 한다. 초딩 과학시간 때 가지고 놀던 기억...


삶에서 어디까지가 불운이고 어디까지가 행운일까. 이를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라사로의 아버지가 죽자 그와 그의 어머니는 생계가 어려워졌지만 의붓아버지가 등장해 고기며 빵이며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곧 이 의붓아버지는 물품들을 훔친 죄로 벌을 받고 라사로의 가족과도 더는 만나지 못하게 된다. 라사로의 어머니는 아들을 맹인에게 맡기며 잘 배우고 훌륭한 사람이 되길 기대하지만 사실 이 맹인은 인색하고 난폭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라사로는 그로 인해 세상이 어떻다는 것을 배운다. 라사로는 두 번째 주인에게 몽둥이로 머리를 흠씬 두들겨맞지만 다행히 죽지 않고 사흘 만에 기적적으로 눈을 뜬다. 세 번째 주인인 하급 귀족이 몰래 도망가 버리자 라사로는 그의 하인이었다는 이유로 포졸에게 붙잡히지만 곧 주변 이웃들의 증언으로 풀려난다. 돌아가는 편광필름처럼 라사로의 생애는 새까매졌다가 투명해졌다가 다시 까매지고 투명해지기를 반복한다. 모든 것이 새옹지마, 그 자체다.

1인칭 형식의 라사로의 독백 속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비관하거나 그가 만난 다양한 주인들을 향해 비난을 쏟아내지 않는다. 그는 그저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헤쳐나갈 뿐이다. 그 덕에 굴곡진 그의 생이 독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절망적이거나 비극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어쨌거나 마지막에 그는 마을의 공무원이 되어 그가 맡은 일에서도 인정을 받고 사랑하는 아내도 얻는다. 아내가 부정한 여자라는 소문에 잠시 신경이 쓰이지만, 그는 이 깜깜한 불운을 인정하지 않으며 방향을 돌려 투명한 행운으로 바꾼다.

이 소설에서 또 눈길을 끄는 것은 르네상스 시대에 부패한 종교인들의 단면을 드러내는 적나라한 묘사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종교인들은 대부분 부정적으로 그려지며, 반승려주의(anticlericalismo)를 표방한다. 작가는 탐욕스러운 신부와 세속적인 일에만 관심을 갖는 수도사, 사기를 치며 면죄부를 팔아먹는 포교사, 여인들과 은밀히 부정한 관계를 맺는 사제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고발한다. 이 때문에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생애, 그의 행운과 불운>은 1559년 종교재판의 금서 목록에 올려져 판금 조치를 당하는 불운에 처한다. 이후 1573년에 신성모독적인 일부 문장이 삭제되어 출판된다.

이 소설이 세계 문학사에 끼친 가장 큰 공로를 들라고 한다면 훗날의 소설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 '피카레스크 소설'의 기원이 되었다는 점이다. 책의 해설을 잠깐 인용하자면, 이 '피카레스크 소설'은 스페인 문학을 특징짓는 아주 중요한 장르이기도 한데 주인공의 성격을 지칭하는 '피카로(picaro)'라는 말에서 파생되었다. 이 시기(1500년대)에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의 대부분의 소설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약간 황당무계한 흥미 위주의 기사소설이나 목가소설이 주를 이루었다. 이들 소설이 갖는 비현실성은 삶에 대한 진정한 메시지가 없이 그저 흥미만 제공해 줄 뿐이다. 그러므로 이들 소설은 수명이 짧다. 말하자면 그저 단순한 킬링타임용인 것이다. 이때 하층 계급 출신의 소년이나 소녀가 겪는 여러 가지 삶의 경험들을 통해 당시 사회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피카레스크 소설이 등장했다. 이 소설은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나 도덕, 교훈적 이야기'에 머물러 있던 당시 소설의 범주를 벗어나 삶에 보다 가깝게 접근하여 삶의 진솔한 목소리를 전달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성을 향해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해설, 8p)

라사로의 삶이 특별히 더 기구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비극적이지 않을 생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 또한 한 발자국만 물러서서 보면 또 그렇게 슬프지도 않다. 때론 우습기까지 하다.

운명이라는 돛단배 위에 실려 정처 없이 떠도는 인간의 삶에는 끊임없이 행과 불행이라는 파도가 들이친다. 이 파도를 내 의지로, 내 두 손으로 오롯이 조절할 수 있다는 무지함과 교만함. 그리고 정반대로 그 어떤 것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허무함과 무력감. 이 상이한 두 감정 사이에서 진자처럼 왔다 갔다 하는 인간이란...
진자는 마찰과 공기저항을 받으면 점차 진폭이 줄어들다가 수직선 상에서 정지한다. 몰아치는 생의 행운과 불운을 겪다보면 인간도 그 중간 어디쯤, 고요의 지점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라사로는 이미 그 지점에 도달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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