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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명: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작가 본명: 두란테 델리 알리기에리(Durante degli Alighieri)
작가 생몰연도: 1265년~1321년(이탈리아)
언어: 토스카나어(고대 이탈리아)
초판 발행연도: 1321년
⭐️읽은 도서 정보: <단테의 신곡 (상),(하)>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최민순 옮김/출판사 가톨릭출판사
★ 한줄 감상평 ★
죽은 자가 산 자에게 건네는 위로. 이 땅 위 그 어느 곳, 어느 것으로도 찾지 못할 그 고귀한 위안.
죽음
그것은 살아 숨 쉬는 모든 존재들의 숙명이다.
나는 죽을 것이다. 그리고 너도.
내가 사랑하는 자, 증오하는 자, 내가 상처 입혔던 자,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자, 나를 웃게 하거나 혹은 울게 만들었던 그 모든 이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모조리 다.
삶이란 누군가에게는 눈물의 계곡 같았을 수도 있겠고, 혹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빛나는 축제 같았을 수도 있겠으나 결국에는 각자에게 주어진 이 찰나의 시간들을 뒤로하고 우리 모두는 눈을 감는다.
내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고 지금도 좋아하는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에서 주인공 철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기계 인간의 몸을 얻고자 안드로메다 행성으로 향하는 은하철도 999에 몸을 싣는다.
몇 달 전 오랜만에 이 만화를 다시 봤었는데 참 인상적인 내레이션이 있었다.
'죽어야 할 때 죽지 못하는 인간은 얼마나 비참한가'
일의 특성상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을 자주 볼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마다 저 말을 떠올린다.
죽음을 예찬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자주 스스로 되뇐다. 죽는다는 것이 그리 비극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오히려 죽지 못하는 것이 더한 재앙일 수도 있다고. 이 기나긴 잠이 영원한 끝이 아닐 수도 있다고...
저렇게 되뇌지 않으면 인간의 삶이란 너무나도... 지독히도 슬프다.
단테도 이 땅에서의 삶이 이렇듯 슬프지 않았을까. 그는 피렌체 정계에 진출한 명망 있는 정치가였으나 당파 싸움에 휩쓸려 추방당한 후 죽을 때까지 고향 피렌체로 돌아오지 못했다. 하지만 역시 위대한 시인은 다른가 보다... 단테는 험난한 망명 생활 중에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은 그의 역작인 <신곡>을 남겼다. <신곡> 곳곳에는 현세의 고통 속에서 이것이 끝이 아님을, 이 슬픈 삶의 저 너머에 또 다른 영원이 있음을 간절히 믿는 인간의 희망이 담겨있다.
첫 시작은 35세가 된 단테가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중 표범, 사자, 이리들에 길이 막혀 숲으로 돌아가려 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이 세 동물은 각각 육욕, 교만, 탐욕을 상징한다.
단테는 그를 인도하라는 베아트리체의 부름을 받고 온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지옥, 연옥, 천국으로의 7일간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따라서 <신곡>은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의 세 파트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은 동일하게 33곡씩, 총 99곡의 서사시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국내에 출판되어 있는 <신곡> 중 가장 우수한 번역본으로 평가받는 것이 1957년도에 나온 최민순 신부님의 번역본이다. 원래 을유문화사에서 출판되었다가 현재는 가톨릭출판사에서 현대 맞춤법으로 수정해서 출간 중이고 나도 이 최민순 신부님의 번역본으로 읽었다. 귀스타브 도레의 삽화가 빠진 것이 좀 아쉽지만... 아쉬운 대로 도레의 삽화는 내가 직접 찾아서 보았다.
단테는 유년 시절 산타 크로체 수도원에서 문법, 논리학, 수사학 뿐만 아니라 기하학, 천문학도 공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신곡> 속에는 그의 뛰어난 천문학적 지식들을 엿볼 수 있다. 지옥, 연옥, 천국은 모두 그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물론 기독교 최대의 신학자로 인정받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을 토대로 이를 시화(詩化) 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말이다.) 가상의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공간에 대해 마치 실제로 본 것을 적어내듯 아주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어서 그가 문학적인 예술성 뿐만 아니라 당시의 지리학이나 천문학에 있어서도 조예가 깊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내가 읽어도 진짜로 단테 본인이 직접 본 것을 기술한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 만큼 묘사들이 생생하기 때문에, 과거의 사람들이 이 작품을 읽고 얼마나 경이로워 했을지 충분히 예상이 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단테의 <신곡>에서 묘사된 것을 바탕으로 1588년 그의 강의에서 지옥의 크기와 악마 루시퍼의 크기를 수학적으로 계산하기도 했다.
<신곡> 속 묘사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북반구는 육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예루살렘을 기준으로 지구 중심을 향해 수직으로 내려가면서 점점 좁아지는 형태로 지옥이 존재하고 있고, 지옥의 가장 밑바닥이자 악마 루시퍼가 위치한 지구의 중심을 지나 반대편으로 쭉 나아가면 연옥의 정죄산이 위치하고 있다. 단테가 살던 중세에는 남반구는 사람이 살지 않으며, 모두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단테는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그들 여정의 첫 시작인 지옥의 문 앞에 서는데, 문 앞에는 다음의 무시무시한 글귀가 쓰여있다. 온갖 빛이 침묵하는 그 곳, 지옥에 대해 이보다 완벽한 서술이 있을 수 있을까?
나를 거쳐서 슬픈 고을로 가는 것
나를 거쳐서 끝없는 괴로움으로 가는 것
나를 거쳐서 멸망의 족속 안으로 드는 것
......
나 앞에 창조된 것이란 영원한 것
외에 또 없어 나는 영겁까지 남아 있으리니
여기 들어오는 너희 온갖 희망을 버릴진저
<신곡> 지옥편 제 3곡 1~3, 6~9행.
위 그림은 지옥의 구조를 좀 더 자세히 나타낸 그림이다. 지옥은 총 제 1환부터 9환까지 9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좁아지며 더 무거운 죄를 지은 영혼들이 존재한다. 사공 카론이 죄인들을 배에 싣고 아케론 강 건너로 싣고 오게 된다.
살아있는 동안 인간 세상에서 애욕, 탐욕, 낭비와 인색, 분노, 이교도, 폭력, 사기, 배반의 죄를 저지른 자들이 각각의 죄에 해당하는 환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 아마 이 부분을 읽을 때 모두들 한 번씩은 상상해 보지 않을까 싶다. 과연 나는 어느 지옥에 떨어질 것인가ㅋㅋㅋㅋ잠시 반성의 시간...
단테는 당시의 유명한 권력자, 재력가, 교황, 귀족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지옥 곳곳에 처넣었는데 망명 생활 동안 쌓인 울분을 이런 식으로 해소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일종의 단테식 데스노트..?
제 1환인 림보에는 예수님이 세상에 내려오기 이전에 태어나서 그리스도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살다간 자들이 모여있다. 단테의 길잡이인 시인 베르길리우스도 이곳에 있으며 호메로스, 카이사르,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 고대의 뛰어난 철학자들과 시인, 영웅들이 이 림보에 모여 있다. 단테의 실로 정교한 상상력에 찬탄을 보낸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지옥의 밑바닥에 묻혀 있는 악마 루시퍼의 몸을 타고 올라가 지구의 중력 방향이 바뀌는 지점을 거쳐 남반구에 위치한 연옥에 도달한다. 베르길리우스는 지옥 여행을 하며 단테의 얼굴에 묻은 더러움을 갈대로 깨끗하게 닦아준다. 둘은 연옥의 문지기 카토를 지나 정죄산에 오른다.
지옥에 갈 만큼의 중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바로 천국에 갈 만큼 깨끗하지는 않은 영혼들은 연옥의 정죄산에서 일정 기간 동안 그들의 죄를 씻는다. 이 속죄의 시간이 끝나면 영혼은 천국으로 갈 수 있게 된다. 연옥에서의 형벌도 지옥만큼이나 가혹하지만 이곳에는 지옥에는 없는 '희망'이 존재한다. 단테가 정죄산의 각 층을 오를 때마다 천사가 그의 이마에 새겨진 7개의 P를 하나씩 지워준다. 이 P는 '죄'를 뜻하는 'Peccati'의 머릿 글자로 일곱 가지의 대죄를 뜻한다. 마침내 길잡이 베르길리우스와 정죄산의 꼭대기인 지상 낙원에 도달한 단테는 악(惡)을 모두 잊게 해주는 레테 강물을 마시고 베아트리체와 함께 천국으로 들어선다.
천국은 첫 번째 층인 월천에서부터 가장 높은 층인 아홉 번째 원동천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단테는 천국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사도를 비롯하여 토마스 아퀴나스, 프란치스코, 도미니코, 베네딕토 등의 성인들과 수많은 천사들, 인류의 어버이인 아담과 하와, 다윗과 솔로몬도 만난다. 천국에서 단테가 이들과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 뿌리를 두고 있어 나로서는 읽는 것 자체가 여간 힘든 과정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앞선 지옥, 연옥편에서도 아퀴나스의 기독교 철학이 계속 등장하지만 천국편은 그 모든 내용들의 절정이랄까. <신학대전>은 가톨릭 신학의 정수로 평가받는데, 내가 중세 스콜라 철학에 대한 이론적 배경이 없다 보니 주석을 함께 읽어도.... 매우 어려웠다. 아마 내가 지금 단테처럼 살아서 천국 여행을 갈 수 있는 복을 얻었다고 치자. 그곳에서 만난 천사와 성인들이 나에게 아무리 은혜로운 말들을 해준다고 한들.. 내 미천한 머리로는 그 은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겠다 싶었다. 천국에서 단테는 기도를 통해 성총을 입고, 삼위일체인 하느님의 모습을 본다.
마치 판타지호러 소설을 읽는 듯한 흥미로운 지옥편을 거쳐 연옥, 천국편으로 갈수록 점점 성경책을 읽는 것 같은.... 성스럽고 거룩한 느낌에 휩싸이는데 괴테가 <신곡>을 두고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한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느낀다. 단테는 천재를 넘어서서...진짜 하느님을 만나고 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이 땅에서의 생,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기독교인이었던 단테는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품으로 돌아갔을 것이고, 갠지스강 어귀의 힌두교도는 자신의 카르마에 따라 윤회의 길로, 유물론자는 태초의 작은 물질의 세계로 돌아갈 것이다. 각자의 믿음에 따라 이 모든 가련한 삶들은 안식에 든다.
쓰디쓴 망명 생활을 전전하며 죽을 때까지 고향 피렌체로 돌아오지 못했던 단테가 어떤 마음으로 이 <신곡>을 썼을지 짐작해 본다. 이것은 단테가 제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인 동시에, 태어나고 잠시 살다가 죽음을 향해 곤두박질치며 산란하게 부유하는 모든 이를 위해 전하는 위로다.
밭의 이삭이 채 익기도 전에 이러쿵저러쿵
헤아리는 누구처럼 사람들이여,
너무나 안이하게 판단하지 마라.
겨울날 처음엔 앙상하고 억세기만 하던
가시나무가 어느덧 그 꼭대기에 장미를
지니고 있음을 내 보았음이로다.
그리고 내 일찍이 곧장 쏜살같은 배가 그의 모든
항로를 거쳐 바다를 지치다가 드디어
포구의 입구에서 없어짐을 보았음이로다.
... ...
저이도 일어설 수 있고 이이도 넘어질 수 있음이로다.
<신곡> 천국편 제 13곡 130~138, 142행.
위대한 시인은 그의 고귀한 노래를 통해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는 자에게는 성찰을,
서러워하는 자에게는 위안을 전한다.
겨울날 앙상하기만 했던 나뭇가지에 어느 날 장미가 피어나듯, 눈에 보이는 현재만을 보고 판단하지 말기를.
저 너머에 또 다른 영원이 있을 수 있음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