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 윌리엄 셰익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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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앵무

햄릿(Hamlet)

작가명: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작가 생몰연도: 1564년~1616년(영국)
언어: 영어
초판 발행연도: 1603년


⭐️읽은 도서 정보: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출판사 아침이슬


★ 한줄 감상평 ★
사는 것과 죽는 것. 어느 쪽이든 비극이긴 마찬가지군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대사다. 영문학 뿐만 아니라 세계문학 가운데서도 손에 꼽히는 문장이 아닐까 싶다. 매우 간결하지만 곱씹을수록 참으로 심오한 물음. 하....정말 문제다. 문제가 맞다. 삶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온갖 경멸스러움과 괴로움들을 그저 바라보며 참고 견디며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저항하고 끝장낼 것인지 이것은 정말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다.
이 문장은 작품 속에서 3막 1장에 클로디어스 왕과 거트루드 왕비가 미쳐버린 듯한 햄릿을 두고 그의 정신착란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몰래 오필리아와의 만남을 지켜보는 장면에서 햄릿이 등장하며 읊는 대사다. 뒷 문장을 좀 더 함께 보자면 이렇다.



살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마음에 더 숭고한 태도는, 고통으로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견디는 것인가,
아니면 무기를 쳐들어 난관의 바다에 맞서는,
그리고, 거부하며 그것을 끝장내는 것인가 ......
죽는다, 잠든다.
잠든다, 어쩌면 꿈꾼다. 아하, 그게 골치로다,
그 죽음의 잠 속에 어떤 꿈이 올지
우리가 이 필멸의 육신을 벗어 버린 다음에 말야,
망설일밖에. 그런 고로
그토록 오랜 삶이라는 재앙이 생겨나는 거야,
왜냐면 누가 견디겠는가, 시간의 채찍과 경멸을,
압제자의 횡포를, 오만한 자의 방자함을,
응답 없는 사랑의 격통을, 법의 지지부진을,
관료의 시건방을, 그리고 모욕
근사한 자가 비천한 자한테 감내하는 모욕을,
견디겠는가, 단도 한 자루면
생애를 끝장낼 수 있는데? 누가 이 짐을 지려 하겠는가,
지겨운 삶 아래 툴툴거리고 땀 흘리는 짐을,
죽음 이후 그 무엇에 대한 공포,
왜냐면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그 영토의 경계로부터
돌아온 여행자는 누구도 없으므로, 그 공포가 의지를 당혹케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미지의 저승으로 날아가 버리느니
차라리 그런 해악을 견디는 게 낫다는 생각을 강요치 않는다면?
그렇게 의식과 양심이 우리 모두를 겁쟁이로 만드는 거야.
- 3막1장, 89~90p


ㅁㅊ...여윽시 셰익스피어 형님ㅠㅠㅠ필력 미쳐따...어떻게 이런 대사를 쓰나여!!!!!!!!


영어 원문은 직설적인 dead or alive가 아닌 to be or not to be로, 언어의 마술사 셰익스피어답게 문학적이고 시적인 표현이다. 앞뒤 문맥상 계속 이러한 고통을 감내하고 버티며 살아나갈 것인지, 아니면 거부하고 죽을 것인지를 고뇌하는 상황이므로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로 번역하는 것도 맞지만 사실 저 문장은 삶과 죽음뿐만 아니라 이렇게 그냥 이대로 있을 것인지 있지 않을 것인지 혹은 (바라는 이상향이나 그 무엇으로) 될 것인지 되지 않을 것인지 등등 읽는 이에 따라, 지금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독자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러므로 햄릿의 물음은 곧 모든 인간의 물음으로 확장된다.

저 대사 외에도 <햄릿> 속에는 정말 주옥같은 문장들이 많다. 시대를 뛰어넘는 문학의 힘이란!! 희곡이지만 대사 하나하나가 마치 시 같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김정환 시인의 번역본이 좋다고 하여 일부러 이걸로 골라서 읽은 건데 원문을 훌륭하고 멋진 언어로 번역해 주신 김정환 시인께 감사를. 다 적을 수는 없고..일부만 발췌해서 남겨본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결심을 깨게 된다오.
의도는 기억의 노예일 뿐이라,
태어날 때는 격하나 지구력은 빈약해서,
풋과일처럼 나무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가
무르익으면 흔들지 않아도 떨어지는 법.
사노라면 정말 불가피하오, 우리가
스스로 한 다짐에 소홀해지는 게 말이오.
우리가 열정으로 우리 자신에게 한 제안은,
열정이 식으면 목적을 잃는 법.
- 3막2장, 103p



이 세상은 영속을 위해 있지 않소, 이상할 것도 없지,
우리들의 사랑조차 운명에 따라 변한다고 한들,
사랑이 운명을 이끄는지 아니면 운명이 사랑을 이끄는지는 아직 증명되지 못했소.
위인이 추락하면 그의 총신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보게 되지, 가난한 자가 출세하면 친구를 적으로 돌리고 말이오. 그리고 여기까지는 사랑이 정말 운명에 의존한다 하겠지, 왜냐면 필요 없는 자에게는 꼭 친구가 있게 마련,
그리고 없는 처지에 골 빈 친구를 찾다 보면
곧장 자신의 적으로 굳히게 마련.
하지만 시작한 말을 질서 있게 끝맺자면,
의지와 운명은 워낙 정반대로 가는지라
우리의 계획은 늘 망가진단 말이오,
생각은 우리 것이나, 그 결과는 전혀 우리 것이 아니오.
- 3막2장, 104p



작품의 처음으로 가보자면, 덴마크 왕자인 햄릿은 그의 부친이자 선왕인 햄릿왕의 유령과 마주친다. 유령은 자신이 동생 클로디어스의 계략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며 아들인 햄릿 왕자에게 복수를 해줄 것을 부탁하고 사라진다. 이를 들은 햄릿은 아버지를 죽이고 왕좌를 차지한 삼촌 클로디어스 왕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클로디어스와 재혼한 어머니 거트루다 왕비에 대한 분노에 휩싸인다. 그러나 햄릿은 즉각적인 복수 대신, 좀 더 확실한 증거를 찾을 계획을 세운다. 그는 주변인들 앞에서 미친 척 행동하며, 아버지의 죽음과 유사한 방식으로 독살당하는 왕이 등장하는 연극 무대를 꾸며 클로디어스 왕과 거트루다 왕비의 반응을 살핀다. 연극을 관람하던 클로디어스 왕의 안색이 변하자 햄릿은 그가 아버지를 죽였음을 확신한다.

클로디어스가 햄릿왕을 정말 죽인 것인지, 아니면 이것이 단지 미쳐버린 햄릿의 망상인지에 관해서는 논쟁이 많다. 나는 개인적으로, 극 중간중간 내비치는 클로디어스의 불안감과 죄의식의 감정, 3막 3장에서 그의 기도 장면('오, 내가 이런 지독한 짓을. 악취가 하늘까지 풍기는구나. 최초의, 가장 오래된 저주가 씌었도다, 형제 살해. 기도를 할 수가 없다.')등을 종합해 보았을 때 클로디어스가 진짜 햄릿왕을 죽였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물론 이런 것조차 전부 다 미친 햄릿의 상상이었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렇다면 정말로 할 말이 별로 없어진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죽음으로 깊이 상심한,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삼촌에 대한 분노로 미쳐버린 한 사람의 망상에서 비롯된 비극이라고 밖에는. 마치 잘 짜여진 훌륭한 극의 가장 마지막에 반전이랍시고 '짜잔! 이 모든 것은 주인공의 상상이었답니다!'로 결말을 맺는 그런 맥 빠지는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랄까. 그렇기에 나는 햄릿은 미치지 않았다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기도하는 클로디어스 왕의 모습을 보면서 그를 향한 복수의 칼을 잠시 거두는 햄릿의 모습을 두고 우유부단한 인간의 전형이라는 뜻으로 '햄릿형 인간'이라는 표현도 있는데(반대되는 단어로는 '돈키호테형 인간'이 있음) 이에 대해서는 나는 절반 정도만 동의한다. 물론 극의 흐름 내내 햄릿은 그의 아버지가 독살당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음에도 한 번도 적극적인 복수를 실행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는 '뭐야 햄릿 이 새끼..등장 내내 분노만 하고 고뇌만 하다가 정작 행동은 뭐 하나 제대로 하지도 않았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지막에 클로디어스에게 휘두른 칼도 따지고 보면 햄릿의 계획이었다기보다는 햄릿을 헤치기 위해 클로디어스가 마련해놓은 결투장에서 의도치 않게 왕비가 햄릿 대신 독이 든 포도주를 마시고 죽게 되는 바람에 모든 것이 폭로되면서 '그래! 다 파국이다!!'라는 심정으로 죽어가던 햄릿이 마지막으로 휘두른 것이니.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향한 최후의 복수?라기에는 쪼까 거시기하다.


결국 햄릿이 클로디어스 왕을 죽이긴 한다.하지만 이는 본인의 죽음을 앞두고 휘두른 칼이고, 클로디어스가 죽고 곧 햄릿 자신도 죽는다. 모두가 죽는다.이런 복수가 무슨 의미가 있나?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햄릿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다. 기도하는 클로디어스를 바라보며 만약 기도 중인 그를 지금 죽인다면 그가 천국에 가버릴지도 모르니까 죽이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햄릿의 행동을 단지 그의 우유부단함에서 비롯된 행동으로만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


클로디어스 왕이 기도하는 순간, 햄릿은 그를 죽일 찬스를 갖고 있었지만 죽이지 않는다.


갑작스레 독살당한 햄릿의 아버지는 신께 자신의 죄를 회개할 틈도 없이 죽어버렸다. 그렇기에 햄릿은 클로디어스에게도 죄를 뉘우칠 준비를 하지 못하도록, 아버지처럼 갑작스레 죽음을 맞게 하리라 다짐한다. 혹자에게는 이것이 그저 원수를 대담하게 끝장내버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자의 핑계로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나는 이것이 햄릿의 진심일 수 있다고 느껴졌다. 엄청난 분노의 대상에게는 한순간의 죽음조차 너무 가볍다는 생각이 드는 법이니까. 그가 기도하며 천국에 갈 수도 있는 그 작은 기회조차 뺏어버리고 싶은, 더 고통스럽고 더 잔인하게 파멸시키고 싶은 그런 엄청난 분노 속에 오히려 햄릿은 쉽사리 그를 죽여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햄릿은 망설이는 유약한 인간이 아니라 무섭도록 차분하고 냉정한 인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작품 속에서 햄릿과 유사하게 복수심에 불타는 또 다른 인물이 있는데 폴로니어스의 아들이자 오필리아의 오빠인 레어티스다. 그의 아버지 폴로니어스는 그를 클로디어스로 착각한 햄릿의 칼에 맞아 죽음을 맞는다. 폴로니어스의 딸 오필리아는 사랑하는 연인이었던 햄릿의 광기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미쳐버리게 되고 결국 물에 빠져 자살한다. 햄릿 때문에 아버지와 동생을 모두 잃게 된 레어티스는 그를 향한 복수심과 분노에 사로잡히지만 결국 그는 햄릿의 칼끝에, 햄릿은 그의 칼끝에서 생을 떠난다.
증오는 증오를 낳고....
그 끝엔 결국 죽음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오필리아>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作, 1851-1852. 나는 햄릿 하면 이 그림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가여운 오필리아..


묘지에서 발견한 광대 요릭의 해골을 바라보며 햄릿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삶이란 것이, 인간의 웃음과 눈물과 분노와 괴로움이 그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햄릿이 해골을 내동댕이치며 외친다.
"우린 정말 비루하고 쓸모없는 상태로 돌아가는구나!"



아아, 불쌍한 요릭. 그를 알지, 호레이쇼 - 무궁무진한 재담에, 착상이 매우 기발하고 탁월한 친구였지. 나를 천 번이나 업어 주었는데. 그런데 지금, 내 생각은 얼마나 소름끼치는가! 욕지기가 나도다! 여기 달렸을 입술에 얼마나 숱하게 입을 맞추었는지 몰라. 이제 어디 있는가, 그대의 조롱은, 껑충거리며 희롱대던 동작은, 그대의 노래는, 좌중을 뒤집어지게 만들던 그대 유쾌함의 섬광들은. 이제는 그대 자신의 싱긋웃음을 비웃을 처지도 못되는가! 턱이 떨어져 축 처진 꼴이야? ...... 부탁인데, 호레이쇼, 한 가지 말해 주게 ...... 자네 알렉산더 대왕도 땅속에서 이런 모습일 거라고 보나?
- 5막1장, 175~176p


<묘지에 있는 햄릿과 호레이쇼>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作, 1839.


형수인 왕비 거트루다를 향한 욕망으로 형을 죽인 클로디어스
클로디어스와 재혼하며 아들과 사이가 멀어진 왕비 거트루다
아버지를 살해한 삼촌과 재혼한 어머니를 향한 증오에 사로잡힌 왕자 햄릿
햄릿의 착각으로 대신 살해당한 폴로니어스
사랑하던 연인 햄릿의 광기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정신이 나간 오필리아
햄릿으로 인해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고 분노하는 레어트스

인간의 욕망과 고통을 땔감 삼아 타오르는 불길은 무대 위 모든 이들을 남김없이 삼켜버린다. 다 타버리고 잿더미만 남은 잔해 속에서 먼지는 바람에 흩어지고, 또 다른 무대가 준비된다. 새로운 불길이 다시금 일렁일 준비를 한다. 인간이 이 비극적인 극에 오르는 한, 타오를 연료는 언제나 충분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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