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 에드거 앨런 포

죽기전에꼭읽어야할책1001 다읽기 챌린지

by 정앵무

96.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작가명: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작가 생몰연도: 1809년(미국)–1849년
언어: 영어
단편 중 1001 리스트 작품: 어셔가의 몰락, 구덩이와 추(갱과 추)

⭐️읽은 도서 정보: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전승희 옮김/출판사 민음사


★ 한줄 감상평 ★
인간 뒤편에 길게 드리워진 어둡고 광기 어린 응달 속으로. 미끄러지듯 스르륵-


한 해가 밤을 향해 저물어가고 있다. 1년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달, 12월이다. 연도나 날짜나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일 뿐, 실상 세월은 우리의 인식처럼 직선형이 아닌 순환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12월이 되면 왠지 '하나의 챕터가 끝났다!'라는 생각에 괜스레 안도하게 된다. 조금은 힘을 빼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이렇게 기분 좋은 12월을 앞두고 신나는 이 연말과 어울리는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들을 읽고 싶었다. 뭔 개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대체 앨런 포의 글 어디가 '신난다 기분 좋다'는 감정과 어울린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지만 그로테스크함, 히스테릭한 인간 심리 묘사를 아주 좋아하는 나에게는 말 그대로 내 취향 저격인 그의 작품들을 읽는 건 겁나 신나는 일이다!!!꺄하하핡하앍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이 내 뇌리에 강하게 박히게 된 계기가 있는데 대략 11~12살? 무렵 우리 집에는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어린이 세계명작 시리즈가 있었다. 그 시리즈 중에 <세계 우수 단편 모음>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모파상의 목걸이,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 같은 유명한 작품들이 실려 있던 걸로 기억한다.

바로 이 책이다. 2002년에 출판되었다. 다시 보니 표지가 참 예뻤구나.


이 책에 실린 단편 중 마지막 작품이 바로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었는데 앞에 실린 감동적인 여타 작품들과는 매우 다른 분위기와 충격적인 내용 때문에 초딩이었던 나는 한동안 벽면만 바라보면 저 속에 여자 시체가 들어있지 않을까 하는 기괴한 상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특히 마지막 장에 실려있던 삽화가 그런 내 상상을 더욱 자극했는데 바로 아래 이 그림이다. 찾고 싶어서 인터넷에 검색했는데 보자마자 옛 기억이 떠오르며 '그래!!!!이 그림이야!!'를 외쳤다.

지금 보면 그다지 무섭지 않지만 초딩이었던 당시에는 책에 이런 삽화가 실려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충격이었다. 특히 저 핏자국 묘사가...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그렇게 쑈킹한 에드거 앨런 포와의 첫 만남을 뒤로하고, 시간은 흘러 흘러 중1이 된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책장을 훑어보다가 그와의 두 번째 만남을 시도한다.

바로 이 책이었는데 반들반들한 검은색 표지에 눈을 사로잡는 강렬한 다섯 글자..우울과 몽상. 800페이지가 넘는 벽돌만한 두꺼운 책이었는데 제목을 보자마자 바로 '아니??!!졸라 간지나는데????' 싶어서 바로 책장에서 꺼냈던 기억이 난다. 대출하려고 데스크에 가져갔더니 대출 바코드를 찍으면서 나와 이 책을 계속 번갈아가며 바라보던 도서관 사서분의 의미심장한 얼굴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결국 저 책은 끝까지 다 못 읽고 대출기한이 다 되어버려서 다시 반납했던 것 같다.

약간 이런 느낌으로 나를 바라보던 도서관 사서분...왜요..뭐요....중2병 빡쎄게 걸린 애 같아 보이셨나요


아무튼 그래서 나에게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은 초딩때 검은 고양이를 읽고 사로잡혔던 그 공포스런 환상을 제일 먼저 떠올리게 하고 그 다음은 짙은 검은색의 우울과 몽상 책을 책장에서 꺼내던 14살의 나, 그 당시 중학교 도서관의 구조를 회상하게 하고 마지막으로 그 책과 나를 바라보던 도서관 사서분의 눈빛을 생각나게 한다.

포와 나의 인연(사실은 나만의 일방적인 인연)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포의 단편집은 출판사마다 종류가 다양하고 구성 작품도 조금씩 다르다. 내가 읽은 건 민음사 버전으로 병 속에서 발견된 원고, 리지아, 어셔가의 몰락, 윌리엄 윌슨, 군중 속의 사람, 소용돌이 속으로의 추락, 타원형 초상화, 붉은 죽음의 가면극, 구덩이와 추, 배반의 심장, 검은 고양이, 도둑맞은 편지, 아몬티야도 술통, 깡충 개구리 혹은 사슬에 묶인 여덟 마리의 오랑우탄을 포함해서 총 14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책을 다 읽고 이 포스팅을 쓰면서 다시 한번 천천히 수록된 작품들의 제목을 눈으로 훑어 내려간다. 모든 작품이 포 특유의 광적인 색채로 덕지덕지 가득 칠해져 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다. 순위 매기는 행위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 기준 best 3를 꼽아보자면 윌리엄 윌슨, 구덩이와 추, 배반의 심장....아니..붉은 죽음의 가면극도 좋았는데..검은 고양이도...아니 깡충 개구리도 너무 좋고..소용돌이 속으로의 추락도 좋은데....아아아아악!!!!!!!! 아무래도 best 3 선정은 불가능하다.

인간 내면의 저 깊숙한 곳, 심연의 어딘가에는 누구나 존재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불안과 공포, 그리고 포가 표현한 '도착적인(perverse) 심리'가 깔려있다. 빛이 들지 않는 어둡고 축축한 정신의 밑바닥에 잠겨 있는 이 기괴한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에드거 앨런 포는 이 소리들을 지하로부터 끌어올려 너무나 환상적이고 그로테스크하게 완성해낸다. 이것이 내가 그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다. 세간에 떠도는 마약중독자라든가 정신이상자 같은 포를 둘러싼 괴소문들 또한 그가 그의 작품 세계에서 보여준 인간 심리의 어두운 측면에 관한 너무나 세밀하면서도 탁월한 묘사가 한몫했으리라 본다. 그러나 20여 년 가량의 활동 기간 동안 그는 수많은 시, 단편, 평론과 글들을 발표한 성실하고 열심히 일한 작가였으며 시인, 소설가, 평론가, 언론인, 편집자, 사회평론가로 다방면에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물론 아내 버지니아가 1847년 결핵으로 사망한 뒤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알코올중독 증세를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2년 뒤인 1849년에 알코올중독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재기를 꿈꾸며 리치먼드로 돌아온다. 그가 알코올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속설은 사실이 아니며, 당시 유행하던 콜레라일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작품들 속에는 어딘가 반쯤 미쳐있거나 무언가에 대한 극심한 공포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러한 공포와 광기는 또 다른 상징물에 투영되어 자주 표현된다. 예를 들어 <붉은 죽음의 가면극>에서는 역병이 창궐하는 한 나라를 배경으로 병에 걸려 죽어가는 백성들은 외면한 채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그들만의 무도회를 즐기는 왕과 귀족들이 등장한다. 무도회장의 사람들 사이로 피에 젖은 듯한 붉은 옷과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을 연상케하는 가면을 쓴 미지의 남자가 돌아다닌다. 이 남자는 왕과 귀족들이 그토록 떨쳐내고자 했으나 떨쳐낼 수 없었던 역병으로 인한 죽음의 공포를 상징한다.

무도회장 내부의 기괴하고 독특한 공간에 대한 시각적인 묘사 또한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배반의 심장>에서는 한 노인에게 분노를 품고 그를 살인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노인이 죽기 전 내지른 단말마의 비명을 들은 옆집 주민의 신고로 경찰은 집 수색을 하러 찾아오지만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한다. 완벽한 범죄를 해냈다는 기쁨에 주인공은 노인의 시체를 묻은 자리 바로 위로 경찰을 안내하고 그곳에서 잡담을 나눈다. 그러나 경찰과의 대화 중 노인의 심장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오고 주인공은 이 소리로 인해 경찰에게 자신의 범죄가 발각될까 불안에 떨기 시작하지만 경찰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눈치다. 심장소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주인공은 극도의 두려움을 느끼면서 경찰이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자신을 속이며 조롱하고 있는 것이라 여기고 결국 스스로 범행을 자백한다. 쉬이 이해하기 어려운 노인을 향한 원인불명의 분노와 그로부터 이어지는 살인 행위, 히스테리적인 불안과 자기 파멸. 미쳐가는 한 인간의 심리가 죽은 노인의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에 투영되어 나타난다.

비슷하게, <검은 고양이>에서도 주인공의 병적인 신경 증세는 그가 키우던 고양이 플루토의 이미지를 통해 더욱더 증폭되며, 주인공이 플루토를 목매달아 죽인 행위는 결국 광란에 휩싸인 자가 스스로를 파괴한 행위로 느껴진다. <윌리엄 윌슨> 속에는 주인공 윌리엄 윌슨과 도플갱어처럼 꼭 닮은, 마치 그의 메아리처럼 그의 주위를 늘 맴도는 또 다른 윌리엄 윌슨이 등장한다. 주인공 윌리엄이 비합리적이고 범법적인 일을 저지를 때마다 이 또 다른 윌리엄은 늘 그의 앞에 나타난다. 결국 이 또 다른 윌리엄의 존재에 엄청난 혐오와 분노를 느끼던 주인공 윌리엄은 또 다른 윌리엄을 칼로 찌르게 되는데, 여기서 또 다른 윌리엄은 주인공 윌리엄의 내면적인 자아, 혹은 양심을 의미하는 듯하다. 어떤 행동을 함에 있어 끊임없이 내면에서 갈등하는 선과 악처럼 주인공 윌리엄과 또 다른 윌리엄은 갈등을 거듭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윌리엄이 또 다른 윌리엄을 칼로 찌르지만 거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칼로 찔러 버린 모습을 보게 됨으로써 완전히 무너져 내린 자아와 마주한다. 참 소름 끼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구덩이와 추>는 이 단편선에 실린 작품 중 인간이 느끼는 극도의 공포와 불안을 묘사한 걸작 중에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종교재판 후 감옥에 갇힌 죄수가 일종의 고문 과정에서 겪는 심리를 아주 세밀하고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읽는 내내 마치 내가 캄캄한 감옥의 벽을 짚고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듯한 느낌, 내 가슴 위로 그 거대하고 날카로운 추가 흔들거리는 듯한 오싹한 느낌에 감탄을 했다. 극한의 상황에서 겪는 인간의 왜곡된 인지 지각력을 정확히 포착한 부분도 또 다른 감탄 요소....후..에드거 앨런 포 당신은 대체..혹시 몰래 어디 감옥에 갇혀보기라도 하셨던 건지 어떻게 이런 묘사가 가능한 건지..?

14개 작품 모두 다 쓰고 싶은 감상이 많지만, 그러면 포스팅이 너무나 길어질 것 같기 때문에 이쯤에서 마무리하려 한다.

인간의 정신이란 그 얼마나 한없이 나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이란 말인가.
누가 미친 자이고 누가 미치지 않은 자일까?
종종 세상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정신 병동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옥은 어쩌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마음의 심연 저 아래, 끝없는 층계로 깊숙이 내려가다 보면 저마다 어딘가 일그러지고 부서지고 괴기스러운 공포로 얼룩진 지옥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지도.
포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그로테스크하고 광기 어린 인물들.
책을 다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픽션이 아니다.

리얼리티다.

그로테스크 연구 (Studies of Grotesque),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作, 15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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