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겸손한 제안> - 조나단 스위프트

죽기전에꼭읽어야할책1001 다읽기 챌린지

by 정앵무

26. 겸손한 제안

작가명: 조나단 스위프트 (Jonathan Swift)
작가 생몰연도: 1667년(영국)-1745년
작가 필명: Isaac Bickerstaff
초판 발행연도: 1729년
초판 발행처: S. Harding(더블린)

⭐️읽은 도서 정보: <겸손한 제안> 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유광균 옮김/출판사 바른번역(왓북)


★ 한줄 감상평 ★

타인의 고통으로 배를 불리며 살을 찌우는 뒤틀린 사회에 내뱉는 섬뜩한 조롱


캬.... 간만에 아주 짧지만 임팩트 있는 글 하나를 읽었다!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이기도 한 조나단 스위프트의 <겸손한 제안>이다. 번뜩이는 신랄함과 풍자가 흐르는 문체. 내가 매우 좋아하는 류의 글이다. 이 작품은 소설은 아니고 스위프트가 공공 홍보를 목적으로 쓴 일종의 수필인데, 원제는 <아일랜드 빈민층 아이들이 부모와 국가의 짐이 되는 대신 공공의 이익에 공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겸손한 제안>이다. 제목부터 벌써 블랙코미디스러운 냄새를 팍팍 풍긴다. 전체 분량은 10페이지 남짓으로 매우 짧아서 그런지 국내에 종이책으로 이것만 따로 출판된 건 없고 전자책만 나와 있다. 나는 교보문고 ebook으로 1000원 주고 구매해서 읽었다. 영어 원문은 구글에 검색하면 그냥 바로 볼 수 있다.

먼저 스위프트가 이 글을 썼던 18세기 아일랜드의 상황을 간단히 보자. 당시 아일랜드는 영국의 식민지로서 토지의 대부분이 소수의 영국계 지주들의 소유였다. 아일랜드의 경제를 지탱하는 건 농업이었는데 아일랜드 농민들은 영국 지주들에게 비싼 값의 지대(임대료)를 내야 했고, 그들이 생산한 곡물 대부분은 영국으로 수출되었다. 따라서 아일랜드 본토의 경제는 늘 불안정하고 국민의 대부분이 만성적인 빈곤에 시달리던 그런 험난한 시대였다. 식민지 국가의 설움이란...우리나라 일제시대가 떠오르면서 아일랜드도 참 비슷한 힘든 역사를 겪었구나 싶다. 아무튼 세계사 시간에 다들 한 번쯤은 들어봤을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 사건'이 터진 게 1740년이니, 스위프트가 이 글을 쓰고 약 10여 년 후의 벌어진 일이다.

<Gorta>, 릴리안 루시 데이비슨(Lilian Lucy Davidson) 作, 1946. 아일랜드 대기근을 묘사한 작품. Gorta는 아일랜드어로 기근을 의미한다.


종교적으로도 갈등이 존재했는데 아일랜드는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였다. 신교도였던 영국계 지배층들은 가톨릭교도의 의회 참여 불가, 토지 소유 제한, 총기 소유 불가, 말 소유 가격 제한 등의 가톨릭 억압 정책을 펼쳤다. 이 정책은 가톨릭이 대다수였던 아일랜드인들이 경제적으로 계속 하층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작물이 자라는 동안 아일랜드는 굶주립니다" 1849,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일랜드 농민들 곁에서 '곡식은 자라고 있다' '아직 문제없다'는 영국 정부의 태도를 풍자한 만평



스위프트는 영국계 신교도인이었지만 아일랜드 출신으로, 그의 소설인 걸리버 여행기에서 간접적으로 아일랜드의 독립을 주장할 정도로 스스로 아일랜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 글의 첫 시작에서 스위프트는 당시의 이런 암울한 아일랜드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도로와 길가, 판잣집에서 걸레짝 같은 누더기를 걸친 네다섯 명의 아이를 거느리고 행인에게 성가시게 구걸하는 여자들로 붐비는 광경은 이 나라의 거대한 도시를 거닐거나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우울하게 비친다. 이 엄마들은 정직한 생계 수단으로 일을 할 수 없어 힘없는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온종일 거리를 배회하며 구걸한다. 그 아이들은 성인이 되더라도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도둑질을 하고 사랑하는 조국을 떠나 스페인에서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를 위해 싸우거나 아니면 바베이도스(영국령 섬나라)에 노예로 팔려 간다.
-4p



스위프트는 <겸손한 제안>을 통해 당시의 비극적인 아일랜드의 상황과 이러한 상황에서도 아무런 도움이나 정책을 펴지 않는 영국을 자신만의 특유의 방식으로 아주 날카롭게 비꼰다.




매년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12만 명이다. 문제는, 어떻게 이 많은 아이를 기르고 지원할 것인가이다. 내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문제는 현 상황에서 지금까지 제안된 어떤 방법으로도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아이들을 수공업이나 농업에서 일을 시킬 수 없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살 집을 구해 줄 수도 없고 경작할 땅을 줄 수도 없다. 아이들 대부분은 여섯 살이 될 때까지 생계를 유지할 만큼 도둑질도 할 수 없다.
-6p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인간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최소한의 보살핌조차 받기 어려운 12만 명의 가난한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국가나 정책은 이런 아이들에게 지극히 무관심하고 해결할 단 일말의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스위프트는 이 개탄스러운 상황을 날카롭게 꼬집으며 이를 타개할 충격적인 해결책을 아주 겸손하고 이성적인 말투로 제시한다. 그 제안은 다음과 같다.

- 12만 명의 아이 중 남자:여자 비율을 1:4로 하여 번식을 위한 목적으로 2만 명만 남겨둔다
- 나머지 아이 10만 명은 1년간 키운 후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들에게 '고기'용으로 판매한다.
- 아이 고기의 가격은 1명당 10실링. 가난한 아이 1명을 1년간 보살피는 비용은 약 2실링. 결론적으로 아이 엄마는 8실링의 순수익을 얻는다.


덧붙여 스위프트는 이런 무시무시하고 말도 안 되어 보이는 자신의 제안이 가져올 이점을 조목조목 친절하게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1. 국가의 주요 부양자인 가톨릭교도를 엄청나게 줄일 수 있음

2. 가난한 소작인들은 자신의 아이를 판 돈으로 재산을 늘릴 수 있음

3. 아이 양육비 감소, 국가 재정 증가, 새로운 요리 탄생 -> 국민 사이 화폐 순환 효과. 국내 안에서 자체적으로 식량 보급 가능

4. 가임 여성은 8실링을 벌고 아이 부양 책임에서도 벗어날 수 있음

5. '아이 고기 요리' 메뉴 등장으로 선술집에 단골 증가

6. 결혼 장려를 위한 강력한 유인책



어지간히 비유를 이해 못 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스위프트가 이 <겸손한 제안>을 쓴 이유가 정말로 카니발리즘을 선동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글의 전체 부분을 다 인용해 올 수는 없지만, 전문이 짧기 때문에 한 번 다 읽어보기를 권한다. 모든 문장 하나하나에 냉소적인 비웃음과 풍자가 녹아 있다. 동시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제안밖에 내던질 수 없을 만큼 절망적인 현실에 고통받는 아일랜드 서민들을 바라보는 스위프트의 안타까움과 분노의 감정이 짙게 깔려있다. 아무리 고상하게 '굶어 죽어가는 가난한 저 서민들을 보세요! 저들을 도와줍시다!'라고 이야기한들 누구 하나 귀 기울이는 이 없는 뒤틀린 현실에서는 이런 외침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차라리 '저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고기용으로 판매하는 게 어떨까요? 어차피 죽어갈 아이들. 누이 좋고 매부 좋고!'라는 스위프트식의 반어법적인 냉소가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의 제안을 듣고 아마 당시의 부와 명예를 가진 고귀하신 분들은 '세상에나. 어떻게 그런 야만적이고 끔찍한 생각을 할 수 있나요?'라고 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스위프트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당신이 외면하는 현실이 저의 이 겸손한 제안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참혹하답니다^^' 울고 있는 이를 두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돌아서는 행위나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행위나 야만적이기로는 매한가지이니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의 이런 생각에 딱히 놀랄 것도 없다.


스위프트의 제안이 단지 1700년대 아일랜드의 상황에만 국한되는 것일까. 빈곤과 불평등은 오늘날에도 인간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우리는 이미 다른 누군가를 먹어가면서 배를 불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진흙을 반죽해 구워 먹는 아이들이 바짝바짝 말라가고, 한쪽에서는 한 번에 햄버거 20개 먹기 같은 콘텐츠를 소비하며 열광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공존하는 기괴한 지구촌. 어디서부터가 문제일까. 공감이 부족한 탓일까. 연민이 없는 탓일까. 그저 어리석기 때문일까. 오늘도 머릿속에 질문만 더해갈 뿐... 스위프트처럼 그 어떤 겸손한 제안 하나 내놓지 못 하는 나는 그저 스스로가 부끄럽게만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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