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전에꼭읽어야할책1001 다읽기 챌린지
작가명: 얀 마텔 (Yann Martel)
작가 생몰연도: 1963년(스페인)
수상정보: 휴 멕레넌 소설 문학상(2001년), 맨 부커 상(2002년)
초판 발행연도: 2001년
초판 발행처: Knopf Canada(토론토)
⭐️읽은 도서 정보: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출판사 작가정신
★ 한줄 감상평 ★
망망대해 위 표류하는 인간을 이끄는 더 나은 믿음은 무엇일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가 1885년 집필한 그의 단편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의 대답이 나올 터이다. 누군가는 돈으로, 누군가는 사랑으로, 누군가는 가족으로, 누군가는 꿈으로. 사람을 살아가게 만드는 것은 참으로 셀 수 없이 많다.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이유만큼이나 많다.
살아있는 존재들에게 있어 삶은 언제나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순간들의 연속이다. 자연의 세계에서 동물들은 한순간도 그들의 안전한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살아남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일 뿐. 한 번 갈라져버리면 다시는 영영 만날 수 없는 정반대 방향으로 놓인 두 갈래의 길처럼, 찰나마다 촘촘히 놓여있는 갈림길 사이를 요리조리 지나가는 것. 인간이라고 다를까. 무엇 하나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건강한 육체도 하루아침에 병들어버릴 수 있고, 내일 당장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지금 내 손안에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한순간에 모래알 빠져나가듯 스르르 흩어져 버릴 수도 있다. 저 하늘 끝까지 걱정 없이 두둥실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아 보이던 비눗방울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듯이. 살아 움직이는 모든 존재들은 너무나 깨지고 부서지기 쉬워 위태롭기만 하다.
믿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믿고 싶다.
누구도, 그 무엇도 확실히 붙잡을 수 없는 이 흔들리는 세계 속에서 인간은 믿을 구석을 애타게 찾는다. 거센 풍랑 속에 갇혀 이리저리 흔들리는 배에 탑승한 선원이 두려움에 떨며 더듬거리는 손으로 그의 가여운 몸뚱아리를 지탱해 줄 손잡이를 꽉 움켜쥐는 것처럼. 시시각각 모습을 바꿔버리는 삶의 바다에서 사람은 동요하는 그를 붙들어매어줄 수 있는 단단한 무엇이 있다고 간절히 믿고자 한다.
얀 마텔의 소설 <파이 이야기>는 이 '믿음'에 관한 이야기다.
정직하게 말해야겠다.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무신론자가 아니라 불가지론자다. 한때는 의심도 쓸모 있는 법. 우리 모두 겟세마네 동산을 거쳐야 한다. 예수가 의심했다면 우리도 그래야 한다. 예수가 기도하며 분노에 찬 밤을 보냈으니, 십자가 매달려 '주여, 주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울부짖었으니, 우리도 의심해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나아가야 한다. 의심을 인생철학으로 선택하는 것은, 운송수단으로 '정지'를 선택하는 것과 비슷하다.
- 53p
이야기는 1970년대 인도 폰디체리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16살 파이 파텔의 아버지와 가족들은 동물원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 그러던 중 인도는 인디라 간디 총리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맞게 되고 파이의 아버지는 정부의 행동에 분노하며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족들과 캐나다 이민을 결심한다. 파이와 가족들은 고향이자 삶의 터전이었던 인도를 뒤로하고 동물원에 있던 동물들과 함께 일본 화물선 침춤호에 몸을 싣는다. 그러나 불행이 닥친다. 배는 폭풍우를 만나 침몰하고 파이는 가족들을 모두 잃은 채 가까스로 구명보트에 올라 살아남는다. 구명보트에는 폰디체리 동물원에 살던 '오렌지쥬스'라는 이름의 암컷 오랑우탄과 다리를 다친 얼룩말 한 마리, 점박이하이에나 한 마리, 벵골 호랑이인 '리처드 파커', 그리고 파이 이렇게 넷뿐이다.
굶주림에 지친 하이에나는 얼룩말과 오렌지쥬스를 죽여버리고, 리처드 파커는 다시 그 하이에나를 죽인다. 결국 단둘이 남게 된 파이와 리처드 파커는 구명보트에 실려있던 비상 식량과 낚시 도구들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생명의 끈을 겨우 붙잡는다. 그렇게 바다 위를 떠돌며 사경을 헤매던 중 바다는 그들을 미어캣들이 사는 불가사의한 해초섬으로 이끈다. 깨끗한 호수와 물을 머금은 해초, 푸른 나무, 미어캣들 속에서 파이와 리처드 파커는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한다. 그러나 파이는 섬의 커다란 나뭇가지 위, 나뭇잎에 싸인 인간의 치아를 발견하고 경악한다. 생명의 섬이라고 여겼던 그 곳의 정체가 밤마다 산성 물질을 내뿜어 생명을 파멸로 이끄는 해초로 가득한 죽음의 섬임을 알게 되고 둘은 서둘러 다시 구명보트에 올라 섬을 떠난다. 이렇듯 인생에서 우리가 구원이라고 여겼던 그 무엇이 실은 정반대일 수도 있음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 낮에는 생명이 가득하지만, 깊은 밤이 오면 죽음이 가득한 이 섬처럼. 언제까지고 나에게 행복과 평안을 가져다 줄 것만 같던 소중한 어떤 것. 그러나 그것은 나의 간절함과 절박함이 만들어낸 반쪽짜리 환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섬을 떠난 파이와 리처드 파커는 망망대해의 태평양을 장장 227일 동안 표류하다가 멕시코 어느 해변에 닿는다. 리처드 파커는 밀림 속으로 들어가 사라지고 파이는 멕시코 사람들에 의해 구조되어 병원으로 이송된다. 밀림으로 사라지는 리처드 파커의 뒷모습을 보며 파이가 흐느끼는 대목을 읽으면서 나도 눈물이 났다. 리처드 파커가 자신을 공격하지 않을지, 그의 존재로 인해 생존의 위협과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결국 파이는 리처드 파커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사람들마다 다들 자신의 인생에 리처드 파커 같은 존재가 하나씩은 있지 않을까. 그것은 특정 인물일 수도 있고 특정 사건이나 시간일 수도 있다. 나를 너무나 두렵고 괴롭게 만들지만 결국 나를 계속 살아가게 만드는 그런 존재 또는 계기 같은 것.
나는 아이처럼 울었다. 고난을 딛고 살아나서가 아니었다. 물론 고난을 극복하긴 했지만. 형제자매를 만나서도 아니었다. 사람을 본 것이 감동적이긴 했지만. 내가 흐느낀 것은 리처드 파커가 아무 인사도 없이 날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다. 서투른 작별을 하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 인생에서 일을 알맞게 마무리 짓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만 놓아버릴 수 있으니까.
- 410p
침춤호 침몰의 유일한 생존자가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일본 운수성 해양부 소속 오카모토와 치바는 사고 경위를 조사하기 위해 멕시코 병원에 있는 파이를 방문한다. 파이의 이야기를 들은 오카모토와 치바는 벵골 호랑이와 함께 2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바다에서 단둘이 지내며 살아남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파이의 말을 믿지 않는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오만이지요! 거대한 수도가 동물들의 에덴동산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내 작은 마을에 겨우 벵골 호랑이 한 마리가 산다는 것은 부정하는군요!"
"파텔, 제발 진정해요."
"단순한 것도 못 믿는다면, 왜 살아가고 있죠? 사랑이라는 건 믿기 힘들지 않나요?"
"파텔......."
"예바른 태도로 날 물먹이지 말아요! 사랑은 믿기 힘들죠. 어느 연인한테든 물어보세요. 생명은 믿기 힘들어요. 어떤 과학자한테든 물어보라구요. 신은 믿기 힘들어요. 어느 신자한테든 물어봐요. 믿기 힘들다니, 왜 그래요?"
- 427p
'창작'이 들어가지 않은 '직설적인 사실'을 원한다는 오카모토의 말에 파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동물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두 번째 버전의 이야기를 해준다. 이 이야기에서는 오렌지쥬스도, 리처드 파커도, 해초섬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다리가 부러진 중국인 선원, 파이의 어머니, 프랑스인 요리사가 파이와 함께 구명보트에 오른다. 다리가 부러져 썩어가는 중국인 선원을 프랑스인 요리사가 죽이고 그 살점으로 낚시를 하고, 이에 분노한 파이의 어머니가 요리사와 싸우다가 요리사의 칼에 찔려 어머니도 죽는다. 요리사와 파이는 식인을 하고, 파이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요리사에게 분노하며 똑같이 칼로 그를 죽여버린다. 이야기를 마친 파이는 오카모토와 치바에게 묻는다.
"나는 두 분께, 그사이 227일 동안 일어난 일을 두 가지로 이야기해드렸어요."
"그랬지요."
"두 이야기 다 침춤 호의 침몰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어요."
"그렇죠."
"두 분은 어떤 이야기가 사실이고, 어떤 이야기가 아닌지 증명할 수 없어요. 내 말을 믿을 수밖에 없지요."
"그렇죠."
"두 이야기 다 배가 가라앉고, 내 가족 전부가 죽고, 나는 고생하지요."
"맞아요."
"그럼 말해보세요. 어느 이야기가 사실이든 여러분으로선 상관없고, 또 어느 이야기가 사실인지 증명할 수도 없지요. 그래서 묻는데요, 어느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나요? 어느 쪽이 더 나은가요?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요, 동물이 안나오는 이야기요?"
- 455~456p
어느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냐고 묻는 파이의 마지막 물음은 내 머리를 망치로 탕! 하고 내려치는 것만 같았다. 이것은 내 자신에게 묻는 것이었다. '나는 무엇을 믿고 싶은가?'
'진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반복해서 묻는 두 일본인들처럼,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먹어치우고 겨우 한 사람만 살아남은 두 번째 이야기를 듣고 '이것이 사실이군'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그들처럼, 내가 그랬다. 신의 존재라든지, 많은 종교들, 원시적 신화와 낭만적 이상향, 아름다운 공상들, 증명되지 않은 것 같은, 내 눈으로 보지 못한 수많은 믿음들을 그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비웃었다. 나는 그런 의심이, 그런 냉소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런 꿈같은 소리들을 아직도 믿는다고?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군' 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세상은 파이의 두 번째 이야기처럼 잔인하기 그지없고 무덤덤하고, 붙박이장 같고, 메마르고 부풀릴 것 하나 없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의 초반에 나온 파이의 말처럼 모든 것에 '불가지론자'같은 태도를 고수했었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증명할 수 없다. 믿을 수가 없다....믿을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파이 이야기>를 다 읽고 난 지금 드는 생각은 정말 멍청하고 어리석은 건 나였다는 것. 불가지론자와 같은 나의 태도는 마치 흔들리는 배 위에서 '잡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난 고작 저 손잡이 하나가 나를 고정시켜줄 거라는 걸 믿지 않아!'라고 외치며 그냥 빈손으로 서있다가 배의 여기저기에 몸을 부딪히며 상흔을 입는 어리석은 인간과 같은 꼴이라는 걸 알았다. 만약 손잡이가 나를 붙잡아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면...손잡이를 믿고 그것을 힘껏 잡았다면 조금은 덜 다치지 않을까.
파이는 두 가지의 세상을 제시한다. 호랑이와 인간이 배를 나눠타고 어느 해안에 닿아 호랑이는 밀림으로 자유가 되어 떠나고, 인간은 인간의 자리로 돌아가는 첫 번째 세상. 그리고 배 위에서 같은 인간이 서로를 죽이고 잡아먹는 난투극 속에 쓸쓸히 홀로 살아남는 두 번째 세상. 둘 중 나는 어떤 세상을 믿는가. 내가 믿는 그 세상 속에서 나는 살게 될 것이다.
다시 처음의 물음으로 돌아가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전에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 무엇으로도 사는 의미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은 '믿는 것'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믿음 없이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제부터는 세상에 희망이 있다고 믿어야겠다. 조금은 더 밝은 이야기들을 믿으려 한다. 내가 그렇게 믿는다면...그것이 곧 사실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