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전에꼭읽어야할책1001 다읽기 챌린지
작가명: 레오 톨스토이(Leo Tolstoy)
작가 생몰연도: 1828년(러시아)–1910년
언어: 러시아어
원제: Smert Ivana Ilyitsha
초판 발행연도: 1884년(러시아)
⭐️읽은 도서 정보: <이반 일리치의 죽음> 톨스토이 지음, 이강은 옮김/출판사 창비
★ 한줄 감상평 ★
죽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존재하는 삶
사람들은 모두 각자가 삶에서 몰두하는 주제들이 있다. 나는 종종 침대에 가만히 누워 삶의 끝자락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나의 모습을 그려보곤 한다. 죽는 바로 그날의 나의 모습은 어떨까? 나는 백발이 성성하고 나무껍질 같은 여러 겹의 주름들로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을까. 혹은 당황스럽게도 예상보다 더 젊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온전한 의식으로 내 생의 마지막을 인지할 수 있을까. 아니면 현대의학이 창조해 낸 여러 기계와 약물들에 둘러싸여 간신히 숨을 유지한 채 눈도 뜨지 못한 상태일까. 어쩌면 아무 예상도 못한 어느 날, 갑자기 부지불식간에 모든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 그날의 날씨는 해가 쨍쨍한 화창한 하늘일까, 아니면 어둡고 축축한 비가 내릴까. 사인(死因)은 무엇으로 표기되려나. 사망선고를 내리는 의사는 젊은 의사? 혹은 나이가 지긋한 노의? 죽으면 나의 일생은...나의 이 모든 육신과 정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완전한 무(無)의 상태로 돌아가나?
이런 상상을 처음 해본 것은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그 이후 죽음에 대한 상상들은 주기적으로 나에게 찾아오곤 하는데, 솔직히 그럴 때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를 짓누르는 이 엄청난 무력감과 공포감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나는 너무나 두렵다. 죽음이란 분명 모두에게, 단 한 명에게도 예외 없이 공평하게 예정되어 있는 가장 확실한 결말이건만....그 죽음을 똑바로 응시하려고 하면 할수록 밀려드는 공포와 허무함에서 나는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가 없다.
아! 솔로몬의 말처럼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죽음 뒤에 나의 불쌍한 영혼이 신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하면 이 헛됨이 좀 사라지려나. 모르겠다. 그렇지만 여전히 두려운 건 마찬가지다. 의사로 일하면서 많은 타인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도...죽음을 생각하면 따라붙는 이 미칠듯한 허탈감에서 도무지 달아날 수가 없다. 매 순간이 살아가는 동시에 죽어가는 것이건만 나는 왜 이 자연의 섭리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고 떨고 있는 것인지. 앞으로 더 나이를 먹으면...언젠가는 삶을 향한 이 애착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는지... 여하튼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안쓰럽게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읽은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나에게 정말 잊을 수 없는 책으로 남을 것이다. 죽음과 삶을 둘러싼 이 근원적인 괴로움을 너무나 정확히 포착하여 통찰하고 있다. 내 인생책 등극....
소설은 항소법원 판사로 재직해 있던 45세의 이반 일리치의 부고 소식을 그의 동료들이 듣게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출세한 관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이반 일리치는 '집안의 자랑거리'로 성실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법률학교를 졸업하고, 예심판사로 근무하며 모범적이고 밝고 선량하며 품위를 갖춘 인물로 주변에 평판을 얻어 간다. 젊은 시절 몇 차례 염문을 뿌리기도 했으나 그런 것들은 그저 '젊은 한때의 객기' 정도로 봐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는 적당한 재산과 훌륭한 집안, 꽤 괜찮은 여자라고 생각한 쁘라스꼬비야 표도르브나와 결혼한다. 그가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신부가 될 여자를 사랑했다거나 인생관에서 서로 공감하는 바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고위층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혼 후 아이들을 낳고 그는 일에 열중하며 검사로 승진하고 몇 차례의 보직 이동을 거치며 그가 원하는 '품격'있는 삶을 영위해 간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옆구리 통증을 시작으로 원인불명의 질환을 앓게 되며 서서히 건강이 악화되어 간다. 그는 그에게 드리워져 가는 죽음의 손길을 인식하고 절망에 빠진다.
내가 없다는 건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인가? 내가 없어지면 그럼 난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정말 죽음인가? 아니야, 죽고 싶지 않아.'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더듬더듬 초를 찾다가 촛대를 마룻바닥에 넘어뜨리고 말았다. ...(중략)... '죽음, 그래 죽음이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불쌍히 여기지도 않는구나. 그저 즐겁게 놀기나 하는구나. 다 마찬가지다, 저들도 모두 죽을 것이다. 바보들 같으니. 내가 먼저 가고 너희들은 좀 나중일지 몰라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저렇게 즐거울까, 짐승 같은 놈들!' 그는 악에 받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68p
죽어가는 이반 일리치와 그를 둘러싼 세계 사이에는 마치 무대 위 배우들과 객석에 앉아있는 관객들 사이에 놓여있는 보이지 않은 벽처럼, 삶과 죽음 사이 철저히 분리된 듯한 무형의 장막이 존재한다. 그의 가족들과 동료들, 심지어 의사마저도 그에게 해주는 것은 형식적인 위로와 헛된 격려뿐 누구 하나 진심으로 그의 죽음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이는 없다. 이반 일리치를 제외한 세상은 마치 죽음이란 없는 듯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하게 흘러만 간다. 그런 그에게 유일하게 진정한 위안이 되어주는 것은 그의 집에서 부엌일을 돕는 농부 출신의 젊은 게라심 뿐이다. 나날이 쇠약해지고 무력해지는 이반 일리치와 대비되는 게라심의 건장하고 젊은 육체는 삶(게라심)과 죽음(이반 일리치)의 간극을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동시에 게라심의 젊고 튼튼한 육체도 언젠가는 이반 일리치처럼 늙고 병들어가게 되리라는 생각에...모든 것이 그저 짧은 한 시절에 불과함이 씁쓸하기만 하다. 밤새 이반 일리치의 곁에서 그의 다리를 들어 올려주던 게라심은 이렇게 말한다.
"우린 모두 언젠가는 죽습니다요. 그러니 수고를 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거짓말 외에, 아니 그런 거짓말 때문에 사람들이 이반 일리치가 바라는 만큼 그를 위해 마음 아파하고 안타까워하지 않는다는 점이 무엇보다 괴로웠다. 오랜 기간 병마에 시달리던 중 어떤 때에는, 사실대로 고백하기 좀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이반 일리치는 누군가 자신을 아픈 어린아이 대하듯이 그렇게 가엾게 여기며 보살펴주기를 가장 간절히 소원했다. 어린애를 어루만지고 달래듯이 다정하게 쓰다듬어주고 입을 맞추고 자기를 위해 울어주기를 그는 바랐다.
-84p
슬프다...위 대목을 읽으면서는 참 여러모로 슬펐다.
동물들은 죽을 때가 되면 본능적으로 이를 인지하고 구석진 곳에 숨거나 혼자 있으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동물이든 인간이든 죽는다는 것은 결국 오롯이 혼자 감내해야 하는 일이건만...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인간은 그가 죽어가는 순간에 누군가가 그를 위해 진심으로 울어주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아...! 사람의 마음이란!
나도 사람이면서 가끔은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마음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토록 골몰하였으면서...
병세가 악화되어 가면서 통증에 몸부림치던 이반 일리치에게 영혼의 목소리가 묻는다.
'네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이반 일리치는 대답한다.
'무엇이 필요하냐고?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 것, 그리고 사는 것.'
영혼의 목소리가 다시 묻는다.
'사는 거라고? 어떻게 사는 거 말이냐?'
이반 일리치가 답한다.
'전에 살던 것처럼 그렇게 사는 것이지, 기쁘고 즐겁게.'
그래, 결국 이렇게 됐지. 죽는 일만 남은 것이다!
그런데 왜? 왜 이렇게 된 것이지? 그럴 리가 없다. 삶이 이렇게 무의미하고 역겨운 것일 수는 없는 것이다. 삶이 그렇게 무의미하고 역겨운 것이라면 왜 이렇게 죽어야 하고 죽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해야 한단 말이냐? 아니다, 뭔가 그게 아니다.
'어쩌면 내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갑자기 그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찾아들었다.
'난 정해진 대로 그대로 다 했는데 어떻게 잘못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삶과 죽음이라는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질문을 털어내며 그런 일은 전혀 있을 수 없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103p
특정한 시기나 어느 과정의 마지막에 이르면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자문하기 마련이다. 그동안 내가 해왔던 것들이 잘한 것인지, 혹여나 잘못했던 것은 없는지.
인생도 마찬가지다. 다만 언제가 이 생의 마지막 시점일지 알 방법은 없으므로 나는 매 순간 묻고 또 물을 수밖에 없다. 수많은 나의 선택들, 나의 과오들에 대해.
잘못된 삶이나 무의미한 삶이나 기쁘고 즐거운 삶이나 결국 모든 삶에 끝은 있을 터.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아니겠나. 어차피 끝날 것이라면 허무함에 몸부림치며 절규하듯 보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친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다.
'불쌍해, 용서해 줘'
이반 일리치는 이 말을 남기고 고통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기쁨을 외치며 숨을 거둔다.
한 철 잠시 왔다가 가는 가엾고 딱한 모든 존재들..
삶과 죽음의 무게가 깃털처럼 가뿐하게 느껴지는 그날이 나에게도 오기를. 그리하여 나를 무겁게 짓누르는 삶의 공허가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되는 때가 오기를 바라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