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 〈압살롬, 압살롬!〉 - 윌리엄 포크너

죽기전에꼭읽어야할책1001 다읽기 챌린지

by 정앵무

369. 압살롬, 압살롬! (Absalom, Absalom!)

작가명: 윌리엄 포크너 (William Faulkner)
작가 생몰연도: 1897년(미국)–1962년
수상정보: 노벨 문학상(1949년)
초판 발행연도: 1936년
초판 발행처: Random House(뉴욕)


⭐️읽은 도서 정보: <압살롬, 압살롬!> 윌리엄 포크너 지음, 이태동 옮김/출판사 민음사


★ 한줄 감상평 ★
핏줄로 이어져 흐르는 원초적 욕망과 죄의 연대기



후...나는 왜 이렇게 어려운 책을 골랐는가.
강렬한 제목에 이끌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펼쳐 들었건만... 역대급 난이도의 책이었다.
정신력과 체력이 필요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수행자 같은 심정으로 독서에 임한 것은 처음이다. 한 줄 한 줄 정신을 붙잡고 읽어 내려갔고... 그렇게 마지막 장,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따라 내려가니 '해냈다'는 생각이 들 정도. 읽기만 한 것뿐인데 왜 마치 내가 이 소설을 다 쓴 것 마냥 여러 복잡한 감정이 드는 것인지ㅋㅋㅋㅋ포크너가 살아있다면 이 엄청나고 힘겨운 작품을 대체 어떻게 쓸 수 있었는지 묻고 싶다.

I'm 지쳤어요

그래도 중도 하차의 유혹을 이겨내고 끝까지 다 읽은 사람의 입장에서 이 작품은 중반 정도까지만 고통을 참고 견디면!!!!!중후반에 해당하는 6장 정도부터는 갑자기 진짜 마법처럼 미친 흡입력으로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데 나 같은 평범한 독자에게는 거기까지 가는 장벽이 꽤나 높았다. 그러나 어쨌든 그 지점에 이르면 흩어진 퍼즐이 탁탁 맞춰지는 기분과 함께 작품의 참맛을 느끼게 되는 희열이 찾아온다. 견딘 자에게 복이 있나니! 끝까지 매달려서 읽을만한, 분명히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다소 긴 독후감이 될 것 같다. 본격적인 감상에 들어가기에 앞서 왜 이 책이 나에게 어려웠는지 몇 가지 적어보자면,


1. 악몽 같은 길고 긴 만연체의 향연

끝없이 길게 이어지는 문장들의 연속, 연속, 연속이고 한 문장이 대체 얼마나 긴 건지 입구로 들어가긴 했으나 도무지 어디가 출구이고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알 수도 없는 기나긴 미로를 계속해서 걷는 길 잃은 사람처럼 주어와 멀고 먼 서술어 사이를 괴롭게 헤매며 글자 사이를 비집고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뭐 말이 이렇게 기냐고? <압살롬, 압살롬!> 속 상당수의 문장들이 이런 식이다. 감히 흉내 좀 내봤다. 아니 실은 이것보다 더 길다. 그래도 중반을 넘어가면서 이 서술 방식에 익숙해지면서 읽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다.


2. 운문 뺨치는 미친 은유법들

분명히 소설이지만 시를 읽는 것 같은 온갖 은유와 상징들이 가득하다. 그것도 아주 난해한 현대 시. 만연체에 은유들이 뒤섞여 '와 대체 무슨 말이지 이게..뭔 말을 하려는 거야'싶은데 하나하나 따지면서 완전히 이해하고 넘어가려면 못 읽겠다 싶어서 마음속 집착을 비움. 어차피 작가인 포크너의 머릿속에 들어가는 게 아닌 이상 100프로 이해할 수도 없을 것 같고. 그런데 참 신기한 건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은데 읽고 나면 해당 장면이나 인물의 감정, 분위기, 공기들이 마치 그림처럼 머릿속에 사아아ㅏ악 그려진다는 점. 나는 원래도 시는 글로 쓰인 그림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이 소설도 그랬다.

보입니다..보여요....1861년 남북전쟁으로 향하는 남군의 행렬이..온도가...소리가...그림책도 아닌데 눈앞에 보입니다. 저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3. 뒤죽박죽 뒤섞인 시공간과 서술 시점
사건들의 서술이 평탄한 직선형의 시간 흐름에 따르지 않고 오락가락 왔다 갔다 난리다. 애초에 이 작품 자체가 서트펜가(家)와 그의 얽힌 인물들의 이야기를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제3자들이 회상하며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과거의 일들을 누군가에게 전할 때 특정 시점의 일들을 그때그때 떠오르는 대로 말하듯이, 책 속 화자들도 시간의 흐름이 아닌 그들 의식의 흐름대로 조각 난 파편의 형태로 던진다. 그러면 독자는 그 파편들을 주워 모아 스스로 흐름에 맞게 재구성해서 끼워 맞추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책 중반부를 넘어가야 비로소 이 조각들이 그리는 커다란 그림을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현재의 인물들과 과거의 인물들이 한 공간에 뒤섞여 혼재하는 장면도 종종 등장하는데, 옛이야기를 들을 때 마치 그날의 상황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듯한 체험을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포크너의 이런 묘사 방식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질 것이다.


위 3가지 사항은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어려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작품만이 가지는 아주 독특한 힘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특별하다고 할까. 나는 문학도도 아니고 작가도 아닌 그저 '읽는 사람'일뿐이지만... 좀 진지하게 접근하자면 문학이란 언어로 창조된 하나의 예술 세계이므로 좋은 문학 작품은 그것을 풀어내는 작가의, 그만의 고유한 전달 방식이 살아 있어야 하고 그 속에 작가의 시선과 철학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있느냐 없느냐가 그 책을 단지 수많은 소설 중 하나일 뿐인지 아니면 훌륭한 문학인지를 나누는 기준이 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압살롬, 압살롬!>은 이러한 점에서 단순한 소설과 구별되는 손에 꼽히는 문학 작품이다. 솔직히 줄거리는 인터넷 요약본만 봐도 다 알 수 있건만 왜 굳이 이 긴 책으로 다 읽어야 하나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 질문에 대한 완벽한 답이 바로 이 <압살롬, 압살롬!>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서두에 이 책이 읽기에 너무 어려웠다고 주절주절 써댔고 그리고 실제로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 이 작품을 읽고 경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압도적이라는 표현이 적절할까. '19세기 미국 남부의 비극과 인간의 탐욕'같은 단순한 요약으로는 절대로 결단코 알 수 없는 거대함이 책 속에는 있다. 1800년대 중반 미시시피의 그 뜨겁고 메마른 공기와 욕망으로 점철된 서트펜의 텅 비어버린 눈동자, 흐르는 피를 타고 자손에게로 전해지는 타락의 그림자, 검둥이..검둥이..검둥이!라고 외치는 목소리, 불타는 저택의 위층 창문에서 서트펜 가문의 몰락을 그리고 남부의 몰락을 내려다보는 흑인과 백인의 피가 반쯤 섞인 커피색의 얼굴까지.


서사의 핵심 인물인 토머스 서트펜은 1807년 웨스트버지니아에서 가난한 백인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다. 그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나뉘어 있다는 것, 피부색이나 물질적 혜택에 따라 상하의 계급으로 갈라져 돌아가는 세계의 질서를 목격하고 열네 살의 나이로 집을 나와 아이티로 떠난다. 그는 아이티에서 프랑스계 아이티 사탕수수 재배업자의 딸인 율레리아 봉과 결혼하여 아들 찰스 본을 낳지만 율레리아가 흑인의 피가 섞여 있다는 걸 알고 그녀와 이혼한다. 찰스 본은 분명 그의 아들임에도 '서트펜'이라는 그의 성을 부여받지 못한다. 아이티를 떠난 서트펜은 1833년 미시시피 주 요크나파토파 군에 20명의 흑인 노예와 납치한 프랑스인 건축가 한 명을 데리고 나타나 거대한 저택을 짓고 그의 작은 왕국인 서트펜 농원을 만든다. 그리고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성실하고 신실한 콜드필드 가문의 딸 엘런을 아내로 맞아 결혼하여 헨리와 주디스 두 남매를 낳는다.



어느 일요일 이 파우스트는 두 자루의 권총과 조수 스무 명을 거느리고 갑자기 나타나서는, 무식하고 가엾은 인디언을 속여 100평방마일의 땅을 빼앗고, 거기에 지금 네가 보고 있는 엄청나게 큰 저택을 세웠다. ...(중략)... 어쨌든 비버 모자를 쓰고 의젓한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그 속에 뿔과 꼬리를 감춘 악귀인 그는 아내를 골랐다. ...(중략)... 그래서 그가 골라 선택한 아내는, 신으로부터의 그의 도망을 확실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신에게 쫓겨 이제는 더 이상 도망도 숨지도 못하게 될 날에, 늙은 몸의 방패가 되어 자신을 지켜 줄 자손을 낳을 여자가 아니면 안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녀는 사내아이와 계집아이를 하나씩 낳아 그의 방패가 되어야 할 자손들의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 261~262p


책의 전반부에서는 주로 엘런의 여동생인 로자의 시선에서 서술이 되는데 '악귀','악마', '그놈' 등의 단어로 서트펜을 지칭하며 그에 대한 증오와 경멸의 감정을 노골적이고 지속적으로 드러낸다. 초반에 내가 의문이었던 점은 서트펜을 향한 로자의 이러한 극심한 분노가 도무지 잘 납득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서트펜이 저렇게까지 악귀라고 불릴 만한 포인트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그 당시 새로운 기회를 찾아 미국으로 이주해 정착해온 많은 백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땅을 개척하고, 집을 짓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았을 뿐이다. 물론 흑인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아이티에서 결혼한 부인과 자식을 버리고 떠났다는 점이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만하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만.

글쎄...인종평등이나 결혼 윤리 같은 개념들은 현대에 들어와서야 제대로 성립된 것들이고 19세기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아니었는가. 흑인 노예의 존재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세상이었고 새로운 땅을 향한 개척 정신은 백인들의 자랑스러운 미덕이자 의무였다. 그리고 책 속 표현대로 여자는 숙녀와 창부 그리고 노예 세 가지 밖에 없던 그런 시절이다. 서트펜은 악귀라기보다는 그저 그 시대 다른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충실히 해나간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책 후반에 모든 진실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이백 년의 압박과 착취에서 흘린 검은 피가 비료가 되어, 믿기 어려운 모순이지만, 평화스러운 녹지가 생기고, 붉은 꽃이 피고, 어린 나무이지만 사람 키의 세 배나 되는, 물론 다소 부피는 작지만 거의 같은 양의 은 광석과 같은 가치가 있는 사탕수수가 자랄 수 있게까지 된 토지, 그것은 마치 인간이 하지 않아도 자연이 정확히 계산해서 찢긴 손발이나 짓밟힌 심장을 보상해 주고 있는 것 같았어. 헛되이 흘린 피로 물을 공급하고, 저주 받은 배를 놓치지 않고 돛대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도 남김없이 푸른 바다에 가라앉혀서 여자나 어린아이들의 절망적인 마지막 외침을 헛되이 날려 버린 바람과 더불어, 자연과 인간이 그 토지에 심어졌던 거야. 그래, 인간도 심어졌던 거야.
- 361p


크하..표현이 기가 막힌다. 인간이 함께 심어진 토지를 딛고 서트펜 왕국은 번성을 한다. 그의 욕망은 계획대로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듯하다. 성인이 되어 대학에 간 헨리는 그곳에서 서트펜의 아들이자 자신의 이복형인 찰스 본을 만나고 그와 친해진다. 이때 헨리는 본이 자신의 이복 형임을 알지 못했으나 같은 뿌리로부터 기원한 본능적인 애착을 느꼈으리라. 그러나 본은 알고 있었다.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를 버리고, 자신을 아버지 없이 만들어지게 한 그 자를.



그는 자기가 유년 시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유년 시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 그가 다시 기억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다른 애들이 어머니와 아버지에 의해 만들어졌던 것과는 달리 아주 어렸을 때도 그는 이미 어린애가 아니었고, 어린애에서 소년 그리고 소년에서 어른이 되었을 각 단계마다 그는 새롭게 다시 만들어졌는데, 그는 변호사와 한 여인 사이에서 창조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녀가 그를 먹여주고 그의 몸을 씻겨 주고 잠을 재워 주고 특별히 맛있는 것이라든가 장난거리를 마련해 주었던 것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그가 귀여워서 그랬다기보다, 그는 그렇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제 커서 보니 어머니가 아직 몰랐지만 그가 성인이 되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지.
- 436p



본은 그의 어머니와 이 가여운 모자(母子)의 재산을 관리해 주는 변호사에 의해 서트펜을 파괴해 버릴 다이너마이트 같은 존재로 키워진다. 본은 헨리와 함께 서트펜 농원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헨리의 여동생이자 서트펜의 딸, 동시에 자신의 이복동생인 주디스와 결혼을 결심한다. 서트펜은 본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에게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직접 취하지 않는다. 그가 하는 것이라고는 아들 헨리를 불러 본은 헨리의 이복형이며 따라서 이 근친결혼을 반대한다는 말을 전할 뿐이다. 마치 대저택의 주인이 외부로부터 찾아온 방문자를 집 안 창문으로 힐끔 보고는 그의 소유물인 하인을 불러 '저리 꺼져버리라고 해'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지듯.


서트펜은 자신으로부터 발원한 욕망의 씨앗이자 파괴의 불꽃이 그의 피를 타고 흘러내려 딸과 아들들 틈에서 터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똑똑히 목격하지만 그 해결을 단지 아들 헨리에게 전가시킬 뿐이다. 헨리는 혼란에 빠진다.



자네는 꼭 내 누이동생과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되겠어? 정말이야?' 그러니까 본이 대답했겠지. '그가 내게 말을 해 줬더라면 좋았을 거야. 그가 내게 직접 말 해줬으면 좋았을 거란 말이야. 난 그에게 정중했고 예의를 지켰어. 난 기다렸어. 자네도 내가 왜 그의 말을 직접 듣고 싶어 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겠지. 난 그가 직접 내게 말해 주기를 바란 거야. 그래서 나는 온갖 기회를 만들어 주었지. 하지만 그는 말하려 하지 않았어. 만약에 그가 말해 주었더라면 나는 두 번 다시 그녀도 자네도 그도 보지 않을 생각이었어. 하지만 그는 끝내 말을 해 주지 않았어.
-485p


여기서 서트펜의 욕망, 즉 땅을 개척하고 재산을 모으고 흑인의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멋들어진 그의 백인 자손으로 이루어진 번성한 가문을 향한 욕망은 곧 서트펜 개인을 넘어 1800년대 미국 남부의 욕망이기도 하다. 그렇다. 이 비릿하고 씁쓸한 욕망을 밑거름으로 남부는 자라났던 것이다.

그러던 중 1861년, 미국 남북 전쟁이 터지고 서트펜, 헨리, 본은 모두 전쟁에 참가한다. 헨리는 전쟁이 그들 간의 얽힌 이 복잡하고 어지러운 상황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아마 그는 차라리 전장에서 총에 맞아 죽기를 바랐을 것이다. 아버지 서트펜에게서 비롯된 이 죄악을 씻어내기에 아들 헨리는 너무나 섬약하다. 그러나 헨리의 바람과는 다르게 그들 셋 모두 전쟁에서 살아남게 되고 4년의 유예기간(남북전쟁이 일어난 기간)을 끝으로 헨리에게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마침내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도래한다. 결국 헨리는 그의 손으로 본을 직접 죽이고 사라진다.

전쟁이 끝난 후 대령 계급을 달고 집으로 돌아온 서트펜은 딸 주디스로부터 헨리가 본을 죽이고 실종되었음을 듣게 된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자식들의 비극에서 비롯된 눈물이나 후회의 감정 따위는 전혀 어려있지 않다. 단지 눈에 보이는 것은 황폐해진 그의 농원, 그의 왕국을 빠르게 재건해야 한다는 일념뿐이다. 서트펜 왕국의 필수 요소였던 대를 이을 아들이 사라지자 그는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부인 엘런 대신 엘런의 여동생 로자에게 약혼을 제안하고 아들을 낳아줄 것을 요구한다. 분노한 로자는 그를 떠나버린다. 서트펜은 집안 살림을 돌봐주던 부하 워시 존스의 손녀딸 밀리를 임신시키지만 밀리가 아들이 아닌 딸을 낳자 그녀를 수망아지를 낳은 마구간의 말보다도 쓸모없는 존재로 바라본다.
'밀리, 너도 페넬로페 같은 암말이라면 참 좋을 텐데. 그러면 마구간에 깨끗한 칸을 하나 만들어 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책 전반부에 로자가 끊임없이 보여주었던 서트펜을 향한 수수께끼 같은 분노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왜 모두가 그를 악귀라고 부르는지. 로자의 증오는 나에게로 곧 그대로 옮겨왔다. 그에게 타인은 자신의 이상적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한 도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서트펜 이놈은 정말로 악귀가 맞다. 이 빌어먹을 악마 새끼!!!!!!'

sorry 미스 로자.. 처음엔 이 여자 화가 왜 이렇게 많아 했는데 이제는 납득이 갑니다요


아버지의 욕망에서 비롯된 형제 살해의 비극. 서트펜가의 비극은 나에게 곧 1861년 남북 전쟁을 절정으로 한 19세기 미국 남부 전체의 비극으로 읽힌다. 아버지 서트펜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검은 노예들을 한가득 거느리고 태초의 순수했던 인디언들의 땅 위에 선을 긋고 거대한 나라를 건설했던 수많은 아버지들이 있었다. 그들의 열망으로 꽃피운 땅 위에서 마침내 그 후손들에게 전쟁이라는 저주가 내려졌으니 헨리와 본처럼 너무나 많은 형제가 형제의 손에 죽었다. 주디스처럼 아직 결혼조차 하지 않은 너무나 많은 미망인들이 생겨났다. 어디서부터가 죄악이었던 것일까. 허망한 욕망을 그토록 열심히 이룩하고자 했던 그 알량한 순진성? 무엇이 잘못이었는지조차도 알지 못했던 그 소름 끼치는 순진함?

서트펜은 워시 존스의 낫에 찔려 죽고 서트펜 농원은 불에 타 몰락한다. 서트펜의 성을 물려받은 유일한 아들이자, 흑백이 섞이지 않은, 아버지의 눈에는 가장 순수하고 깨끗한 피를 가졌을 그 헨리. 그 또한 타들어가는 서트펜 저택에 누워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남북전쟁에서 남부는 패배하고 노예제는 폐지된다. 그렇게 아버지들의 왕국은 몰락한다. 마지막에 남은 유일한 서트펜의 자손인 짐 본드가 흑인의 피가 더 많이 섞인 자라는 점은 많은 의미를 가지리라.

책의 제목인 '압살롬'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국 다윗 왕의 셋째 아들이다. 압살롬은 자신의 친 여동생인 다말을 강간한 그의 이복형 암논을 죽이고 아버지 다윗에게 반란을 시도하다 죽음을 맞는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죽음을 듣고 통곡하며 말한다.
"오 압살롬, 오 압살롬! 내 아들 압살롬, 내 아들아! 너 대신 내가 죽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압살롬, 오 압살롬, 내 아들아!"

<압살롬의 죽음>, 프란체스코 페셀리노 (Francesco Pesellino) 作, 1452년


최초의 아비에게서 지어져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존재론적 타락처럼. 산꼭대기에서부터 땅 아래로 필연적으로 흘러내려 가는 폭포수처럼 인간의 근본적 본성이자 가장 순수한 죄악들이 아버지에서 아들로, 아들로부터 또 그의 아들에게로 넘쳐흐른다. 혈통, 가문, 재산, 명예, 번영, 승리, 복수 따위의 죄목들이.
이제 책을 덮어도, 아비의 죄를 안고 죽어간 아들들을 소리쳐 부르는 슬픈 절규가 들린다.
압살롬! 압살롬! 오 내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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