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전에꼭읽어야할책1001 다읽기 챌린지
작가명: 표도르 도스토옙스키(Fyodor Dostoevsky)
작가 생몰연도: 1821년(러시아)–1881년
언어: 러시아어
원제: Besy
초판 발행연도: 1872년(러시아)
⭐️읽은 도서 정보: <악령 1~3>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출판사 민음사
★ 한줄 감상평 ★
Kyrie eleison !
누군가 나한테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 묻는다면,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도스토옙스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러시아가 낳은 위대한 대문호!!!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이하 줄여서 도끼)
그런 의미에서 존경해 마지않는 우리 도끼옹의 사진부터 먼저 박고 이 글을 시작한다.
내 블로그의 이름인 Going to Mokroye의 Mokroye도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마을의 지명에서 따온 것으로 소설 속에서 장남 드미트리와 그루셴카가 다시 태어나는 공간이자 진실이 드러나는 장소, 새로운 구원과 갱생을 의미하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대학교와 대학원을 거치며 들었던 모든 강의를 통틀어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강의가 딱 2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학부 1학년 때 교양강의로 들었던 석영중 교수님의 '러시아 문학과 종교'라는 강의다.
이 강의의 텍스트북이 무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었는데 어떻게 안 들을 수가 있쒀??????? 지금도 대학 생활 동안 석교수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음에 참 감사하다.
대학교 1학년 때를 돌아보면 희한하게 각종 학교 행사도, 축제도, 오티도, 엠티도, 동아리도 재미있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어떤 활동을 해도 그냥 심드렁하게 느껴졌고 대학생이 되었으니까 이런 것도 경험을 해봐야지.. 차원에서 퀘스트 깨듯이 했을 뿐. 술게임하는 건 재미없는 걸 넘어서서 그냥 고역에 가까웠고 이런저런 사람들과 모여서 딱히 알고 싶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은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듣고 있으면 너무나 지루하기만 했다. 약간 반사회적인 시기였던 듯?ㅋㅋㅋㅋ그 때 거의 유일하게 열정을 갖고 열심히 했던 게 이 강의를 들었던 거랑 요가, 그리고 도끼책 읽는 정도...?
강의 수강자가 워낙 많아서 대강당에서 진행된 강의였고, 당연히 교수님은 수많은 학생 중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몸을 싣고 저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며 사색에 잠기는 꿈을 꾸게 된 것도,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문장을 가슴속 깊이 품게 된 것도, 모두 이 강의를 듣고 난 후부터였으리라.
요지는 어쨌거나 그래서 나는 도끼옹을 매우 좋아한다는 뜻
근무 때문에 당분간 장편은 읽지 않으려고 했건만 그냥 요즘 들어 그의 작품들이 너무너무 읽고 싶었기에...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러시아 문학을 참 오랜만에 읽는다. 잊고 있었던 길고 복잡한 인명과 지명들부터 19세기 러시아 문학 특유의 분위기와 색채. 반갑다. 너무 좋다.
그리고 도끼만의 어지러움과 혼란, 광기..이 광기!!!!!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너무나 생생하고 때로는 강렬하여 책을 읽고 십수 년이 흘러도 마치 지금도 내 옆에 실제로 살아 숨 쉬는 사람인 듯 선명하기만 하다. 그의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어떻게 라스콜리니코프와 소냐를, 어떻게 알료샤와 이반을 잊을 수 있겠는가.
<죄와 벌>, <백치>, <미성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더불어 도끼의 5대 장편에 해당하는 <악령>은 1869년 러시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네차예프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따라서 그의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정치적 색을 강하게 띄고 있다.
*네차예프 사건: 19세기 말 러시아 무정부주의자 세르게이 네차예프가 자신이 조직한 비밀결사 '인민의 복수'의 동료 이반 이바노프를 탈퇴와 밀고 우려를 이유로 동지들과 살해하여 연못에 유기한 사건
먼저 시대적 배경인 1860~1870년대 러시아의 분위기를 알아야 하는데 한 마디로 표현하면 서서히 무너져 가는 낡은 세계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새로운 세계 사이의 과도기적 혼란으로 가득 찬 시대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서유럽에서는 이미 산업혁명,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 시기를 거치면서 사회 구조가 급변하고 계몽주의에서 사회주의 그리고 무정부주의에 이르는 급진적인 사상의 변화와 더불어 무신론적인 분위기가 확산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상황은 어땠는가?
그래도 서유럽이 시민혁명과 산업화, 중산층 성장의 흐름을 비교적 자연스럽고 점진적으로 거쳐간 것에 반해, 러시아는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강력한 절대왕정 아래 더딘 산업화와 국민 대다수는 교육받은 적이 전무한 농민으로 이루어진 중세적인 사회 구조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서유럽에서 넘어온 급진적 사상의 흐름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결정적으로 1861년 알렉산드르 2세가 농노제를 폐지하면서 표면적으로는 개혁이 시작되었으나 그 이면에는 갑자기 자유인이 되어버린 가난한 농민들, 불만에 가득 찬 지주들, 러시아의 느린 개혁에 분노하는 젊은 지식인들로 뒤섞인 그야말로 대혼돈의 장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 러시아에는 서유럽에서 들어온 여러 가지 급진 사상들이 한꺼번에 뒤섞여 폭발한 상태였다.
서유럽식 개혁을 지향하는 자유주의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는 사회주의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
전통 도덕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허무주의
정교회와 차르 중심의 질서를 옹호하는 보수주의
의회 정치와 시민 사회, 법 제도와 같은 안전장치가 있었던 서유럽에 비해 러시아는 이러한 완충 장치가 거의 없는 상태였다. 즉, 무너져가는 전통 아래 새로운 체제의 부재, 과격한 이념, 조급한 청년들의 환장의 콜라보 그 자체였다고 볼 수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서유럽에서 들어온 이런 급진적 사상들이 러시아의 현실과 만나면 마치 악령처럼 사람들을 홀린다고 생각했으며 이런 상황을 그의 작품 <악령>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는 소설의 첫머리, 제사에 인용된 루가복음서 8장의 구절과도 맞닿아있다. 3권에서 스테판 트로피모비치가 죽기 전 소피야에게 이 구절을 읽어 달라고 부탁하면서 책 속에서 한 번 더 등장하고, 스테판은 이것이 곧 우리 러시아와 같다고 말한다.
마침 그곳 산기슭에는 놓아기르는 돼지 떼가 우글거리고 있었는데 마귀들은 자기들을 그 돼지들 속으로나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허락하시자 마귀들은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는 비탈을 내리 달려 모두가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돼지 치던 사람들이 이 일을 보고 읍내와 촌락으로 도망쳐 가서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고 보러 나왔다가 예수께서 계신 곳에 이르러 마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멀쩡한 정신으로 예수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이 일을 처음부터 지켜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사람이 낫게 된 경위를 알려 주었다.
- 루가복음서 8장 32~36절
<악령>에 등장하는 인물들 하나하나는 곧 당대 러시아에 퍼져있던 각 사상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네차예프를 모델로 창조된 소설 속 핵심 인물인 표트르는 극단적 혁명주의를 의미하며, 니콜라이는 허무주의, 스테판은 구세대의 자유주의, 시갈료프는 사회주의, 샤토프는 러시아 민족주의, 키릴로프는 무신론적 실존주의, 레뱌드킨은 타락한 민중의 모습이다. 표트르는 '우리 편'이라는 5인조 조직을 만들어 마을에 혼란을 일으키고 허무주의와 사회주의 사상을 퍼뜨릴 계획을 실행한다. 그리고 샤토프가 '우리 편'을 밀고 할 것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그를 살해한다.
원래 도끼 작품의 특징 자체가 얽히고 얽힌 인물들과 복잡한 전개, 중간중간 등장하는 철학적 담론 등으로 처음 접하는 사람들한테는 쉬이 읽히지가 않는다. 그런데 <악령>에서는 그 특유의 산만함에 덧붙여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도 훨씬 더 혼란스러운 느낌이 강했는데 읽는 내내 뭔가 불안하고 위태롭고 어지러운데(그러면서 동시에 우스꽝스러운) 그게 정확히 뭔지는 잘 모르겠는 수수께끼 같은 인상이 너무나 강했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모두 어딘가 과장되어 있거나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괴이한 요소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책을 다 읽고 작품의 해설과 19세기 러시아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난 이 시점에서야 비로소 작품 전체에 깔려있던 정돈되지 않은 듯한 혼돈의 기류가 그 당시 러시아의 공기를 아주 정확하게 표현한 것임을 알았다. 솔직히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고 상당한 집중력과 당대 사회의 전반적 이해가 요구된다. 시대적 맥락을 모르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읽으면 대체 이게 무슨 흐름인지 무슨 내용인지 줄거리만 간신히 파악하고 미로를 헤매다가 끝날 수도 있다. 책 전체를 끝까지 읽고 난 지금에야 도끼가 이 작품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했는지 파악이 되었으니.... 3권에서 표트르가 기차를 타고 떠나는 장면을 읽는 순간까지도 나는 계속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마치 19세기 러시아 민중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게 아마 작가가 의도한 것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지 않을 수 없는, 강력한 힘이 그의 작품에는 항상 존재한다. 아무튼 다시 한번 읽어보면 더 잘 읽힐 것 같은데 분량이 1500페이지라ㅋㅋㅋㅋㅋ살면서 언젠가는 다시 읽겠지..
작품 속에서 개인적으로 아주 인상 깊었던 인물이라면 역시 니콜라이 스타브로긴. 그리고 키릴로프를 꼽겠다. 여태껏 내가 접했던 많은 문학작품들 중에 이 <악령> 속 니콜라이 스타브로긴만큼 캐릭터 파악이 어려웠던 인물은 없었던 것 같다. 모든 사상을 무력화시키는 공허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인데 허무주의를 인간의 모습으로 만든다면 니콜라이의 모습일까. 그 어떤 것도, 그 무엇도 믿지 않고 종교도 이념도 없고 죄책감도 열정도 없는 존재. 마치 아무런 형태도 색깔도 냄새도 없는 유령과 같은...그러나 너무나 뚜렷이 존재하는 인물. 내 개인적 감상으로는 이 책의 제목인 <악령>에서 악령의 모습이 니콜라이라고 생각한다. 악령이 존재한다면...그것은 무섭거나 혐오스럽거나 혹은 달콤한 그런 모습이 아닌 오히려 니콜라이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표트르가 니콜라이에게 끈질기게 집착하는 모습은 마치 악령에 홀린 사람을 연상케 한다. 자살로 끝맺음 하는 니콜라이의 마지막은 허무주의자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엔딩이 아닐 수 없다. 무엇도 믿지 않는 자를 기다리는 것은 그저 무(無) 뿐이다.
니콜라이에 이어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인물, 키릴로프는 완전한 자유는 자기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삶은 고통이고 삶은 공포며 인간은 불행합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고통이고 공포입니다. 지금 인간은 고통과 공포를 사랑하기 때문에 삶을 사랑합니다. (중략) 고통과 공포를 극복하는 사람, 그 사람이 신이 될 겁니다."라고 주장한다. 내 뇌리에 키릴로프가 참 인상 깊었던 까닭은....묘하게 그의 사상이 나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인데...내가 실존주의 사상에 꽂혀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자유를 원하는 사람은 모두 자살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키릴로프에게 니콜라이는 삶을 좋아하냐고 묻는다. 키릴로프는 '좋아한다'라고 답한다. 그리고 곧이어 덧붙인다. "왜 함께 엮는거죠? 삶은 삶이고, 그건 또 별개죠. 삶은 존재하는 것이지만 죽음은 전혀 없는 것이니까요." 그에게 삶은 곧 지금 여기, 이곳에 존재하는 것이며 그렇기에 그는 자살을 꿈꾸지만 동시에 삶을 사랑한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39명의 인물 중 13명의 인물이 죽는다. 누군가는 살해당하고 누군가는 자살을 하고 누군가는 병으로 죽는다. 그러나 이 모든 혼란의 중심에 서있던 표트르는 책의 말미에 기차를 타고 홀연히 떠난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페테르부르크로? 파리로? 아니면 아메리카로? 섬뜩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어느 새로운 도시에,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 버젓이 그를 사로잡은 악령과 함께 돌아다니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도끼가 이 책을 쓴 건 19세기였지만 이후 인류는 실제로 목격했다. 20세기에(그리고 21세기에도 현재진행형인) 펼쳐진 사상과 이념, 종교라는 환상 아래 자행되는 무자비한 학살들을. 혼란의 씨앗을 던지며 유유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또 다른 표트르들을.
도스토옙스키는 허무주의와 무신론, 극단적 사상에 휩싸여 파멸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스테판 트로피모비치가 그의 임종을 앞두고 찾아온 신부와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는 부분에서, 작가는 스테판의 입을 통해 이를 대신 전한다.
사랑보다 소중한 게 어디 있습니까? 사랑은 존재보다 높은 것이고 사랑은 존재의 화관이니, 존재가 어찌 사랑 앞에서 무릎 꿇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내가 신을 사랑하기 시작했고 나의 사랑을 기뻐했다면 신이 나와 나의 기쁨을 꺼뜨려 우리를 무(無)로 되돌려 놓을 수 있을까요? 신이 존재한다면 나는 불멸할 것입니다. ... (중략) ... 삶의 매 일 분, 매 순간이 인간에겐 축복이 되어야 하고...... 꼭 그래, 그래야 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의무입니다. ...(중략)... 기필코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행복을 알아야 하며, 매 순간 어딘가엔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위한 완전하고 평온한 행복이 이미 존재함을 믿어야 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율법 자체는 오직, 인간이 언제나 한없이 위대한 존재 앞에서 경배할 수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사람들에게서 한량없이 위대한 존재를 박탈한다면 그들은 살지 못하고 절망 속에서 죽고 말 겁니다. 한없고 무한한 존재는 인간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조그만 행성만큼이나 인간에겐 필수적인 것입니다......위대한 사상 만세! 영원하고도 한없는 사상이여! 인간은 어떤 인간이든 누구나 위대한 사상이 있다는 그 사실 앞에 꼭 경배해야 합니다. 심지어 아주 멍청한 인간에게도 뭐든 위대한 것은 꼭 필요하거든요.
-3권 356~358p
나는 스테판의 이 마지막 고백이 곧 <악령> 전체를 관통하여 도스토옙스키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라고 본다. 미망에 들뜬 인간은 19세기 러시아를 넘어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시대에도 존재한다.
혼란한 세계다. 뉴스에는 매일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폭력, 이념의 대립, 정치적 긴장감, 반복적인 전쟁과 극단주의자가 저지르는 테러 같은 끔찍한 혼란들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된다. 때마다 이름을 바꿔달고 악령은 오늘도 이 사람, 저 사람들을 홀려댄다. 홀린 사람은 벼랑으로 내달리는 돼지떼가 되어 추락한다. 무섭고 섬뜩한 광경이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위한 완전하고 평온한 행복이 존재하도록, 기필코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