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전에꼭읽어야할책1001 다읽기 챌린지
작가명: 사데크 헤다야트 (Sadegh Hedayat)
작가 생몰연도: 1903년(이란)–1951년(프랑스)
원제: Bouf-e Kour
연재정보: 1941년, 일간지 『Iran』
초판 발행연도: 1937년(이란)
⭐️읽은 도서 정보: <눈먼 올빼미> 사데크 헤다야트 지음, 공경희 옮김/출판사 연금술사
★ 한줄 감상평 ★
빛으로는 볼 수 없는, 눈을 감았을 때만 보이는 깊고도 끝없는 암흑
창밖에 쌓이지 않을 눈이 조금씩 내린다. 종이를 태우면 처음엔 까맣게 타다가 마지막에는 하얗게 변해서 흩날리는 흰색의 재가 된다. 마치 그 재들이 날리는 것 같은 하늘이다. 햇빛은 뿌연 유리를 간신히 통과해 들어오는 것처럼 힘이 없다. <눈먼 올빼미> 독후감을 쓰기에 제법 적절한 날씨다. 아니면 이 책을 읽었기에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이렇게 대놓고 극강의 우울함과 어두움으로 가득한 책은 오랜만이다. 지독한 중증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자의 일기장을 들춰본 것 같은 기분이다.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진짜 ㅈㄴ우울하다.
이 책을 펼쳐서 읽다 보면 빛 하나 들지 않는 새까맣고 비좁은 관 안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무슨 느낌인지 전달이 되려나.... 궁금하신 분은 읽어보세요.. 참고로 저자의 고국인 이란에서는 금서로 지정된 책이다. 읽고 나서 실제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삶에는 서서히 고독한 혼을 갉아먹는 궤양 같은 오래된 상처가 있다.
문학 작품에서 첫 문장은 종종 그 작품 전체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 작품도 그렇다. 이 책은 고독한 혼을 갉아먹는 궤양 같은 상처, 그 상처를 앓고 있는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책의 구성이 좀 독특한데, 1부부터 5부까지로 되어 있고 플롯이 3부와 4부를 기점으로 해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작품 속에서는 남자의 어머니인 '부감 다시'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인물의 이름도 등장하지 않는다. 모두 여자, 노인, 매음녀, 유모, 남자 등의 대명사로만 지칭될 뿐이다.
1~3부에서는 필통 뚜껑에 그림을 장식하는 일을 하는 필통 장식사라는 직업을 가진 남자가 등장한다. 이 남자는 어느 날 집의 환기구를 통해 집 밖에 검은 옷을 입은 여자를 보게 되고 그녀에 대한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이 검은 옷의 여인은 남자의 집으로 들어와 갑작스레 죽음을 맞고, 남자는 노인의 안내로 폐허가 된 오래된 옛 도시에 그녀를 묻는다.
4~5부에서는 아픈 남자와 그의 아내, 유모가 등장하는데 남자의 아내는 그와의 잠자리는 거부한 채 마을의 다른 남성들과 부정한 일을 저지른다. 남자는 창밖에 잡동사니를 파는 노인도 그녀와 부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남자는 그의 아내를 죽인다.
특이한 건 이 두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서로 같은 인물인지, 1~3부와 4~5부가 서로 이어지는 줄거리인지 또는 아예 별개의 이야기인지를 판단할 만한 명확한 단서나 뚜렷한 설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두 이야기가 겹쳐지는 듯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책 속에서 동일한 묘사나 표현, 유사한 소재들이 여러 번 반복해서 등장하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마치 데자뷰 체험을 한 것 같은 느낌을 꽤 여러 번 받았다. 처음에는 '어? 이 표현 앞에서도 나왔던 것 같은데? 아닌가?'라는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읽다가 뒤에서도 반복되는 문장들을 다시 만나면서 책의 중간지점을 넘기고서야 '아! 맞네. 작가가 일부러 이렇게 의도해서 쓴 거구나'라고 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1. 목도리를 두른 구부정한 노인, 웃음소리에 대한 묘사
- 사이프러스 나무 아래 웅크리고 앉아 있는 구부정한 노인이 시야에 들어왔다. 넓은 목도리를 목에 두르고 있어서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중략) 노인이 귀에 거슬리는, 공허하고 사악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에 내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49p)
- 문 옆에 웅크리고 앉은 그림자 하나를 보았다. 아니, 목에 둘둘 감은 목도리에 얼굴이 가려진 구부정한 노인이었다. (중략) 그가 귀에 거슬리는 공허한 웃음을 터뜨렸다. 온몸의 털을 곤두서게 하는 소름 끼치는 웃음이었다. (166p)
2. 기하학적인 모양의 집들에 대한 묘사
- 나무들 사이로 피라미드 모양의 집들과 정육면체 모양의 집들, 각기둥 모양의 회색 집들이 보였다. 집들마다 창틀도 없이 검은색 유리만 달린 낮은 창문들이 있었다. (51p)
- 길 양쪽에 서로 다른 기하학적인 형태를 한 이상한 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집집마다 황량한 검은 창이 나 있었다. (59p)
- 길옆에는 정육면체, 각기둥, 원뿔 모양의 이상한 도형의 회색 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집집마다 낮고 어두운 창문이 나 있었다. (101p)
이렇듯 책 곳곳에는 비슷한 소재와 대상들이 조금씩 변주되어서 다른 상황 속에서 반복적으로 묘사된다. 일반적인 소설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이런 기법 덕에 독자로 하여금 '아..? 내가 지금 착각하고 있는 건가? 뭐지?'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로 인해 이 작품이 갖는 현실과 환상 간의 애매한 경계와 독특하고 몽환적인 느낌을 한층 더 배가시킨다.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마치 꿈속에서 일어난 일 같은 느낌이랄까. 이런 식의 유사한 문장들의 반복되는 서술로 초현실적인 느낌을 준 또 다른 책으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 있다. 읽는 내내 약간 환각 상태에 빠져드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두 책은 비슷한 면이 있다.
게다가 지상의 어떤 것이라도 나에게 눈곱만치라도 가치 있었던 것이 있는가? 나는 나의 삶이 나를 비켜 지나가게 했다. 삶이 떠나가는 것을 허락했으며, 심지어 그것을 원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내가 떠난 후에 무슨 일이 생기든 나와 무슨 상관인가?
72p
남자에게 이 세상은 속물들과 모순으로 가득 찬 이상하고 낯선 곳이다. 그는 나아갈 길을 잃어버리고 자신만의 어둡고 좁은 방 안에 갇혀버린다. 환기구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앞에 등장하는 검은 옷의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이 구역질 나는 세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탈출구(=죽음)를 보여준다. 결국 검은 옷의 여자는 남자의 꿈이자 희망인 죽음이다.
지금까지 나는 너무도 많은 모순된 일들을 보았고, 너무도 많은 종류의 말들을 들었다. 내 눈은 다양한 사물의 너무도 많은 닳아빠진 표면을 보았다. 그 얇고 거친 껍질 뒤에 영혼이 숨어 있는. 그렇기 때문에 이제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바로 이 순간, 손에 만져지는 단단한 것들의 존재조차도 나는 의심한다. 분명하고 명확한 진실들도 나는 의심한다.
74p
모순되고 닳아빠진 세상을 목격한 영혼은 서서히 붕괴되어 간다. 그리고 마침내 아무것도 믿지 못하게 된다. 그 자신조차도.
3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마치 화자의 자기고백 같은 서술들이 줄줄 이어진다. 이때부터는 이 책이 소설이 아니라 수필 같다고 느껴졌는데 심각한 우울증 환자의 일기장을 보는 느낌이라고 한 것이 이 때문이다. 작품의 저자인 사데크 헤다야트는 두 번의 자살 시도 끝에 1951년 프랑스 파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 성공한다. 나는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곧 헤다야트의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누구라도 책을 읽어보면 느낄 것이다. 이 문장들은 그저 상상으로 창작해낼 수 없는 부분이라는걸. 위에서는 단순히 우울증이라고 표현했다만, 사실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서 우울증이라고 표현했을 뿐. 삶의 고통에서 너무나 애타게, 치열하게 몸부림쳐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 같달까.
유년기라든가 성년기라든가 인생의 시기들을 구분하는 단어들도 나에게 있어서는 헛된 말에 불과할 뿐이다. 평범한 인간들에게만 그것들은 의미가 있다. 속물에게만. 그렇다, 그것이 내가 찾던 단어이다. 살기에 적합한 온난한 지대에서 영위되는 속물들의 삶에는 일 년이 사계절이 있듯이 정해진 주기와 계절이 있다. 그러나 내 삶에는 언제나 단 한 개의 계절, 한 개의 존재 상태만 있었다. 마치 한대 지방에서, 영원히 계속되는 어둠 속에서 생을 보낸 것만 같다.
75p
마치 한대 지방에서 차갑고 추운 단 한 개의 계절, 영원한 어둠 속에서 생을 보낸 것 같다는 표현은... 작품의 첫머리에서 말한 서서히 고독한 영혼을 갉아먹는 궤양 같은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가는 인간의 상태를 지독하게도 잘 묘사한 표현이다. 이보다 더 잘 와닿는 문장이 있을까.
내게 위로가 된 것은 죽음 이후에는 무로 돌아간다는 기대와 희망이었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무섭고 피곤했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 적응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 판에 다른 세상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 세상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나는 느꼈다. 이 세상은 후안무치하고 탐욕스러운 족속, 허세부리는 막돼먹은 인간들, 양심을 파는 자들, 눈과 심장이 굶주린 자들에게나 어울리는 세계이다.
130~131p
20세기 대표적인 모던 발레 작품 중의 하나인 롤랑 프티의 '젊은이와 죽음'이라는 작품이 있다. 진짜 좋아하는 작품이어서 실제로 한 번 보는 게 소원인데. 어쨌든 이 책과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노란 옷을 입은 여성 무용수로 표현된 '죽음'에 서서히 붕괴되고 잠식되어 가는 젊은이. <눈먼 올빼미> 속 남자처럼, 이상하고 부조리한 세계에서 무너져 가는 한 영혼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https://youtu.be/3sjKiNP5ig4?si=qSJKEQGA7K83DKLy
파리 오페라 발레단 <젊은이와 죽음(Le Jeune homme et la Mort), 2005년 공연>
안무: 롤랑 프티 (Roland Petit)
대본/구성: 장 콕토 (Jean Cocteau)
음악: 요한 세바스찬 바흐 (J.S. Bach) - 파사칼리아와 푸가 C단조 (Passacaglia and Fugue in C minor, BWV 582)
무용수: 마리-아녜스 지요 (Marie-Agnès Gillot), 니콜라 르 리치 Nicolas Le Riche
작품 초연: 1946년
삶은 지속되는 과정에서, 인간 각자가 쓰고 있는 가면 뒤에 있는 것을 냉정하고 공정하게 드러낸다. 누구나 몇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계속해서 하나의 얼굴만 쓰고, 그러면 자연히 더러워지고 주름이 생긴다. 이런 이들은 절약하는 부류이다. 다른 사람들은 자손들에게 물려주려는 소망에서 자신의 가면들을 보살핀다. 또 어떤 이들은 끊임없이 얼굴을 바꾼다. 하지만 그들 모두 늙음에 이르면, 어느 날인가 자신이 쓰고 있는 가면이 마지막 가면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곧 그것이 너덜너덜해지고, 그러면 그 마지막 가면 뒤에서 진짜 얼굴이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34p
창문을 열어보니 아까 낮에는 쌓이지 않을 것처럼 흩날리던 눈이 어두워지니 어느새 바닥에 얕게 깔려있다. 햇빛이 사라지니 얼굴에 닿는 눈의 차가운 감촉이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눈을 감아야만 더 또렷이 느껴지는 감각들이 있다. 너무 밝은 빛은 오히려 눈을 멀어버리게 만든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는 사물을 꿰뚫어 보던 올빼미가 한낮의 태양 아래에서는 그의 시야를 잃어버리듯이.
너무나 캄캄해서 두려운가
그렇지만 누가 알겠는가.
눈을 감아야 비로소 보이는 암흑이 우리를 이 기묘한 생에서 도망칠 수 있도록 해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