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전에꼭읽어야할책1001 다읽기 챌린지
작가명: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
작가 생몰연도: 1883년 (체코슬로바키아)–1924년 (오스트리아)
원제: Der Prozeß
초판 발행연도: 1925년
초판 발행처: Die Schmiede(베를린)
⭐️읽은 도서 정보: <소송>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혁준 옮김/출판사 문학동네
★ 한줄 감상평 ★
우연한 세계 속 실존하는 인간, 그 앞에 놓인 필연적 불안을 향한 고발극
최근 1~2년 사이 나에게 생긴 갑작스러운 변화가 하나 있는데, 바로 잘 때마다 거의 매번 꿈을 꾼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꿈을 거의 꾸지 않는 편이었다. 정확한 시점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아무튼 1년은 넘은 것 같다. 어젯밤에도 역시 꿈을 꿨다. 나도 원인은 통 모르겠는데 처음엔 내 뇌나 수면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졌지만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다. 꿈을 꾼다고 특별히 뭐 피로감이 더 증가했다거나 몸 상태가 달라진 건 없기 때문에...
아무튼 매일의 꿈들은 그 내용도 가지각색이고 참 제각각인데 대게는 눈을 뜨자마자는 선명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꿈은 뜬금없고, 개연성도, 논리성도 없어서 도무지 인과관계에 따라서 설명할 수가 없는 괴상한 경우들이 많다. 예를 들어 어딘지 모르는 어느 허름한 학교의 운동장에서 비를 맞으면서 공을 차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장면이 등장했다가 뒤이어 오래된 옛날 가옥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낯선 여자의 얼굴이 나오고 나는 서서 그 모습을 한참 쳐다보다가 다시 거리로 나오던 중 사자에게 쫓기고 뭐 이런 식이라고나 할까...무의미한 사건들의 연속. 마치 온갖 다양한 종류의 필름 조각 더미 속에서 아무거나 랜덤으로 골라서 영사기에 넣고 스토리의 타당성 따위는 1도 고려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합쳐 재생하는 것 같은 느낌?
왜 이런 꿈 이야기를 주절주절하느냐 하면...
카프카의 <소송>을 다 읽고 난 후 '하..대체 이 느낌을 뭘로 표현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머릿속에 탁 떠오른 표현이 바로 '꿈같다!'였기 때문이다.
아 물론 20세기 실존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카프카의 걸작이 황당하고 허무맹랑한 나의 개꿈과 같다는 의미는 절대 절대 아니다. 내가 꿈같다고 느낀 지점은...그러니까 말하자면, 당최 타당한 인과성이나 그럴듯한 개연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 어찌 보면 황당한 사건들의 연속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꿈같음'이 <소송>의 핵심이자 주제라고 생각한다.
소설은 다음의 의미심장한 문장들로 시작한다.
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모략한 것이 틀림없다. 그가 무슨 특별한 나쁜 짓을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 9p
큰 은행의 자금 담당 부장으로 재직 중인 요제프 K는 서른 번째 생일날 아침 갑작스레 그를 체포하러 온 감시인 빌렘과 프란츠로부터 그의 소송 절차가 시작되었다는 말을 듣는다. 이 작품은 마지막 장에 요제프 K가 소송을 당한 지 1년 뒤인 그의 서른한 번째 생일 전날 저녁, 모르는 남자 두 명에게 이끌려 칼에 찔리며 "개 같군!"이라고 외치며 사형 판결을 받아 죽는 것으로 끝난다. 소설의 마지막까지도 요제프 K가 대체 왜 소송을 당했고 그의 죄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일말의 언급도 없기 때문에 이는 독자에게 영원히 알 수 없는 물음표만을 남긴다.
<소송>은 카프카의 미완성 작품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카프카가 소설의 첫 부분(첫 장 '체포')과 끝 부분(마지막 장 '종말')을 미리 써둔 뒤에 중간 장들을 써나갔기 때문에 미완성작이라는 인상은 크지 않다. 다만 그저 '이것 참 이상하군...이상해..'라는 느낌이 계속 들 뿐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수수께끼 같은 의문과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고 이상한 '부조리함'의 연속이다.
예컨대 요제프 K의 재판이 이루어지는 법정은 교외의 낡은 주택 단지들이 모여있는 건물의 꼭대기층 다락방에 위치해 있는데, 이것부터가 아주 이상하다. 대체 어느 법정이 저런 장소에 있단 말인가. 그리고 피고인의 직업조차 모르는 예심판사의 무관심한 태도("도장공인가요?")나 본인이 왜 소송에 당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별다른 저항 없이 소송 과정에 임하는 요제프 K, 그리고 자신의 개입이 판결에 영향을 줄 수도 있고, 주지 않을 수도 있다고 앞뒤가 도통 맞지 않는 말들만 계속 늘어놓는 이상한 변호사 훌트, 훌트를 주인처럼 떠받들지만 동시에 다섯 명의 다른 변호사에게도 변호를 의뢰한 이상한 피고인 블로크, 요제프 K 주변의 그를 돕겠다는 이상한 여자들과의 관계, 모두들 법정과 연결되어 있다는 이상한 화가 티토렐리, 대성당에서 만난 교도소 신부까지. 요제프 K를 비롯해 그를 둘러싸고 있는 인물과 사건들은 한결같이 마치 내 꿈속 장면들처럼 괴이하고 이해하기가 어렵고 이치에 맞는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낮 동안에 어떻게든 이 모순된 세상을 논리적으로 처리해 보려고 애쓰던 대뇌가 너무나 지친 나머지 밤이 되면 '에라 난 이제 다 놓아버릴 거다!'라고 외치며 부조리한 세계의 단면들을 그저 있는 그대로 '꿈'의 형태로 흘려보내는 것처럼. 카프카는 그의 작품 속에서 본질적으로 너무나 터무니없는 인간의 삶을, 어떠한 의미도 없는 우리의 일상을 그대로 펼쳐내보이는 것만 같다.
요제프 K는 도대체 왜 소송을 당한 것일까? 그는 왜 사형선고를 받아야만 했던 것일까? 그가 소송을 당하고 죽기 전까지의 1년의 시간 동안 자신의 판결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얻고자 만났던 많은 사람들, 그의 행동들. 이것이 정말 그에게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그 이상한 법정과 이상한 사람들 모두.
이 작품은 나로 하여금 이런 질문들을 삶 전체로 확장시켜서 하게끔 만든다.
요제프 K가 느닷없는 그의 재판을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하듯이,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갖가지 일에 휘말려 이런저런 것들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왜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어쩌다 그 일을, 아니 왜 이런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대체 무엇에 휘말렸기에?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본질적으로 우리는 이 삶을 왜 살아야만 하는가.
따지고 보면 요제프 K의 소송만이 이상한 것이 아니다.
왜? 대체 왜?
살아야 한다는 것부터 이상하지 않은가.
삶에 가져다 붙이는 그럴듯한 이유들로 세상은 늘 떠들썩하다. 언제나 그래왔다.
그런데 다시 한번. 왜?
자신이 왜 소송 당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만족할 만한 판결을 얻기 위해 법정에 출두하는 K처럼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는 모르지만 각자의 그럴듯한 무언가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아니, 사실 처음부터 이유 따위 없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끝이 있는 건 아니다. 요제프 K가 사형선고를 받아 죽듯이 우리도 다 죽게 되니까. 그러니까 삶 자체가 출발부터 하나의 거대한 부조리이고 이상함 그 자체다.
"그러나 좋지 않은 결말로 끝나게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저들은 당신이 죄가 있다고 여기고 있어요. 당신의 소송은 아마 하급 법원을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적어도 현재 상황에서는 당신의 죄가 입증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죄가 없습니다." K가 말했다. "뭔가 잘못된 겁니다. 도대체 인간이라는 사실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이 땅에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인간입니다."
"그건 맞는 말입니다." 신부가 말했다. "하지만 죄 있는 사람들이 늘 그런식으로 말하지요."
- 263~264p
재판 스트레스 속에서 업무를 지속해나가던 요제프 K는 은행의 중요한 고객인 어떤 이탈리아인의 도시 관광을 도와주라는 행장의 지시를 받고 대성당에서 그를 기다린다. 그러나 기다리던 이탈리아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고, 성당을 나가려던 요제프 K는 등 뒤에서 그의 이름을 외치는 한 신부의 목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춘다. 자신을 교도소 신부라고 소개한 이 정체불명의 신부는 작품 속 다른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요제프 K의 소송건을 이미 알고 있다. 그는 요제프 K에게 법 앞 문지기와 시골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종의 비유담인 이 이야기는 카프카가 1915년 <법 앞에서>라는 제목으로 따로 출간하기도 했다.
이 짧고 기묘한 이야기 속에는 한 시골 남자가 등장하는데 그는 법 앞을 지키고 선 문지기를 찾아간다. 남자는 열려있는 문을 통해 법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만 문지기는 지금은 들어갈 수 없다며 그를 막는다. 시골 남자는 문 앞에 걸상을 가져다 놓고 수많은 세월을 그곳에서 보내며 문지기에게 뇌물을 주거나 설득을 하는 등 법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지만 문지기는 그를 절대 들여보내주지 않는다. 결국 시간이 흘러 죽음을 눈앞에 둔 시골 남자가 문지기에게 묻는다.
"모든 사람이 법에 이르고자 애를 쓰고 있는데......" 남자가 말했다. "그 긴 세월 동안 나 말고는 아무도 입장을 요구하는 사람이 없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문지기는 남자의 임종이 가까웠음을 깨닫고는 꺼져가는 그의 청력으로도 알아들을 수 있게 그를 향해 큰 소리로 외친다. "여기는 자네 말고는 아무에게도 입장이 허락되지 않아. 왜냐하면 이 입구는 단지 자네만을 위한 것이었거든. 이제는 가서 그 입구를 닫아야겠네."
- 269p
여기서 시골 남자는 단순하고 무지한 사람으로 일반적으로 법을 잘 알지 못하고 지키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요제프 K와 신부는 이 이야기의 해설을 두고 설왕설래한다. 책에 나오는 이들의 해설은 차치하고, 내 주관적인 느낀 바를 덧붙이자면 나는 이 이야기에서 '법'이라는 것이 우리가 삶에서 지키려고 하는 어떤 절대 선(善), 내지는 질서나 신념이라는 넓은 범위로 읽혔는데, 개인(시골 남자로 비유되는)은 평생을 이 선에 이르기 위해 노력한다. 법의 문이 닫히지 않고 활짝 열려 있던 것처럼 이 질서는 언제나 존재하지만 문지기가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서듯 무질서의 자연 상태로 태어난 인간은 처음부터 이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마지막에 문지기가 임종을 앞둔 남자에게 '이 문은 처음부터 자네 말고는 아무도 입장이 허락되지 않았으며 오직 자네만을 위한 것이었다'라는 말을 남기는데, 이는 삶에서 한 인간이 이루고자 혹은 지키고자 하는 신념들은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는 것. 즉, 개개인마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 선(善)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닌 자신의 의지다. 왜냐하면 시골 남자는 누구의 강요도 아닌 자신의 자발적인 의지로 이 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지기를 찾아왔으며, 스스로 이 문 앞에서 긴 세월을 머물렀다. 누구도 남자에게 이 문 안으로 들어가라고 지시하지 않았으며, 마음만 먹으면 그는 다른 곳으로 길을 떠날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남자의 선택이었다. 인간이 그의 삶에서 평생에 걸쳐 도달하고자 하는 어떤 지점(또는 이상향)은 온전히 그의 선택이며 이 지점이 아닌 다른 방향을 향해 떠날 자유도 얼마든지 그에게는 있다.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사람이 매여 있는 사람보다는 우월하니까요. 그런데 자유로운 사람은 사실 시골 남자입니다. 그는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지 갈 수 있으며, 다만 법 안으로 들어가는 것만 금지당하고 있을 뿐인데, 그것도 단 한 사람, 즉 문지기에 의해서만 금지당하는 것이지요. 시골 남자가 문 옆에 놓인 걸상에 앉아 평생을 거기 머물러 있다고 할 때, 이는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지 강요에 의한 것이라는 얘기는 없습니다.
- 274p
다시 말해, 이 부조리한 삶에서 결국 인간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각자의 도달점을 찾아서 떠날 자유가 있다. 이 도달점은 오직 시골 남자 단 한 명에게만을 위해 존재했던 그 문처럼 자기 자신, 즉 한 사람만을 위한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모두를 위해 존재하는, 즉 모두가 도달해야 하는 보편적 가치란 본래 없다.
다시 요제프 K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이 작품이 끝난 뒤 마지막까지 독자에게 풀리지 않는 찝찝함을 남기는 물음.
'그는 도대체 어떤 죄를 지었길래 소송을 당하고 사형 선고를 받았나'
아니, 어쩌면...처음부터 그의 죄목 따위가 무엇인지는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요제프 K도 시골 남자처럼 오직 그의 의지로 선택한 그 자신만의 법 안으로 들어가려 애썼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법을 어긴 개인은 그의 비밀스러운 죄의식 속에서 발현된 내면의 재판에서 가차 없이 유죄 판결을 받는다. 지극히 사적인 이 소송에서 원고와 피고, 판사와 배심원은 전부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그가 어긴 그 '법'이 대체 무엇이냐고?
그것이 무엇인지는 전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애초에 우리 모두가 지극히도 이상하고 무의미한 이 삶에서, 마찬가지로 지독히도 무의미한 각자만의 '법'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골몰한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지 못한 인간은 끊임없이 스스로 피고석에 앉기를 자처한다. 다만,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재판 과정의 피고인과의 차이점이라면 이 내면의 재판에서는 피고인에게 끝까지 자유가 부여된다는 점.
마지막 '종결'장에서 요제프 K의 사형 집행을 위해 그를 찾아온 집행인 두 명은 양쪽에서 하나씩 K의 팔짱을 낀다. 그렇게 세 사람은 '거의 한 덩어리'가 되어 '만일 누군가 그들 중 한 사람을 내리친다면 세 사람 모두가 무너져내릴 것 같은 형상'으로 사형장으로 향한다. 사형장은 정해져 있지 않다. 사형수인 요제프 K의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집행인들은 그저 아무 말 없이 그의 보폭에 맞추어 함께 걸어갈 뿐, 그 어떤 지시도 없다. 이 대목에서 요제프 K와 집행인들 간의 구분은 더 이상 무의미해지고 요제프 K 그 자신이 곧 사형 집행인이 된다.
그는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리저리 거리를 내닫다가 마침내 스스로 교외 채석장에서 멈춰 선다. 그리고 그가 스스로 멈춰 선택한 그곳이 자신의 사형장이 된다. 채석장이 사형 집행 장소가 된 것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곳이 아닌 다른 장소, 예를 들어 흐르는 냇물 앞이나 오래된 나무가 서있는 들판 한가운데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더라도 아무렴 상관이 없다. 그의 사형 장소가 채석장이 된 것은 단지 그가 그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그 장소를 선택했기 때문일 뿐이다. 자신이 선택한 사형장에서 스스로에게 형을 집행하는 인간. 그는 끝까지 자유롭다.
원고도 피고도 판사도 사형집행인도 모두 자기 자신인 무의미한 소송. 아이러니하게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인정을 한 뒤에야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절대적인 진리 따위 없는 텅 빈 세상에서 스스로를 고발하는 무의미한 행위.
불안하고도 절박한 이 행위만이 인간이 갖는 유일한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