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겐지 이야기> - 무라사키 시키부

죽기전에꼭읽어야할책1001 다읽기 챌린지

by 정앵무

3. 겐지 이야기

작가명: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
작가 생몰연도 : 973년경(일본)-1014년경
언어: 일본어
원제 : 原氏物語(겐지 이야기)
초판 발행연도: 11세기

⭐️읽은 도서 정보: <겐지 이야기 1~10> 무라사키 시키부 지음, 세토우치 자쿠초 현대일본어로 옮김, 김난주 한국어로 옮김, 김유천 감수/출판사 한길사


★ 한줄 감상평 ★
사계절이 쓸쓸함을 안고 함께 흐르는 풍경. 그 안에서 겐지와 그녀들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사랑을 한다.


다 읽었다!!!!!!! 다 읽었어!!!!!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불후의 명작, 일본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겐지 이야기!!! 저도 드디어 다 읽었습니다 흑흑ㅠㅠㅠ

고전 명작들의 특징인가요... 역시나 방대한 분량이다.

작중 등장 인물의 수만 430여 명에 이르며, 주인공인 겐지와 겐지의 2~3대 자손들에 이르는 약 70년에 걸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굳이 내용으로 장르를 따지자면 로맨스/연애 소설인데 이런 류는 개인적으로 내 취향과는 거리가 아주 멀어서 읽다가 고비가 있었으나...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었다. 휴우..

주로 일본 문학계를 중심으로 세계 최초의 산문 소설이라고 여겨진다는데, 이와 관련해서 요즘 핫한 ChatGPT 선생에게 한 번 물어보았다.

※챗지피티는 정확하지 않은 헛소리를 진짜인 것 마냥 대답하는 경우도 왕왕 있으므로 레퍼런스 체크 필수. 적당히 참고용으로만 볼 것

뭐.. 그렇다고 합니다?

세계 최초인지 아닌지 사실 정확히 어떻게 알겠는가.

아직 발굴되지 않은 더 오래된 소설이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 묻혀있을지도.... 아무튼 세계 최초이든 아니든 문학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으니.


일단 작품을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내 눈을 사로잡았던 책 표지.... 표지가 아름답다...!! 한길사에서 이 포스팅을 볼 일은 없겠지만 본다면 관계자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책 디자인이 아름답고 내용이랑도 아주 잘 어울립니다!!!따봉드려요ㅋㅋㅋㅋ

sticker sticker

은은한 은빛 펄감이 기본으로 들어간 바탕에 전체 10권의 책마다 각기 다른 색으로 제목과 작가 부분이 칠해져 있고 일본 전통 그림(?정확히 이름을 모르겠음..)이 그려져 있다. 전권을 주르륵 모아놓고 보면 마치 화첩을 보는 것 같다! 고풍스러운 느낌이 든다. 그리고 책을 펼치면 초반에 4~5장씩

이렇게 그림들이 실려 있다. 책을 뒤져봐도 이 그림들의 출처는 나와있지 않지만 어쨌든 일본의 옛날 시대 때 풍경이나 사람들의 모습들을 볼 수 있어서 겐지 이야기랑 잘 어울린다!

또 사설이 너무 길어버림...... 이쯤에서 스톱하고..

소설은 작가가 창조해 내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이니만큼,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해당 작품을 쓴 작가가 살았던 시대나 환경적인 배경을 아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이 겐지 이야기는 일본의 헤이안 시대(A.D. 794~1192년) 중기에 활약했던 여성작가 무라사키 시키부의 작품으로 작중의 배경 역시 작가가 살았던 헤이안 시대를 무대로 하고 있다. 무라사키 시키부는 이치조 천황의 중궁인 쇼시를 모시던 궁녀이기도 했는데, 이 당시 일본에서의 궁녀 개념은 우리나라에서의 그것과는 약간 다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궁녀라고 하면 왕에게 간택되지 않는 이상 결혼도 평생 못하고 궁에서 살다가 죽는 낮은 신분의 노비 또는 하인 정도를 떠올리는데, 헤이안 시대 궁녀는 이것보다는 여성 개인 비서라고 할까? 황족을 가까이 모시는 역할로서, 명문가의 자제 또는 친인척 중에 선별하였으며 노비보다는 직업의 일종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수 있다. (유럽에서도 귀족 여성들이 궁정에서 왕비나 공주의 시종을 들었던 것처럼) 무라사키 시키부도 대대로 문인 집안으로 인정받았던 명문가의 딸이었고 결혼해서 자녀도 있었다. 당시 무라사키 시키부가 쓴 이야기들은 이미 사람들에게 꽤나 인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중궁 쇼시는 문학적 취미가 고상했던 이치조 천황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소설을 집필하는 조건으로 무라사키 시키부를 입궁하게 했다고 한다. 무라사키 시키부에게는 집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특별한 개인실이 주어졌고 고급 종이와 필묵, 필요한 참고서도 넉넉하게 지급되었다. 이러한 든든한 후원 속에 그녀는 겐지 이야기 집필에 몰두한다.
참고로, 무라사키 시키부의 본명은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나라도 그랬지만 일본에서도 당시 여자는 황후나 황녀, 최고 귀족의 자녀가 아니면 이름이 남아 있지 않다. 궁에서 생활하면 아버지나 남편, 오빠의 관직에 따라 불렸고 공문서를 심사하는 직에 있었던 그녀의 아버지의 관명에 따라 무라사키 시키부로 불린 것으로 추측된다. (출처: 겐지 이야기 1, 292~297p)

작가 본인이 시녀로 궁에서 생활했던 경험이 있는 만큼, 겐지 이야기 속에는 다양한 궁정의 생활상과 당시의 풍습 등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소설은 총 54첩으로 이루어져 있는 방대한 양인데 작가가 무라사키 시키부 한 사람이 아니라 복수일 수도 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겐지 이야기를 현대 일본어로 옮긴 세토우치 자쿠초는 이는 여자 한 사람이 이처럼 장대하고 화려한 걸작을 썼을 리 없다고 하는 남성 연구자들의 상상과 가설일 뿐, 근거는 없다고 못 박는다. 현재는 무라사키 시키부 한 사람이 썼다는 설이 거의 자리를 잡고 있다.

겐지 이야기의 내용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솔직히 겐지가 죽게 되는 7권까지 읽은 시점에서는
'여미새 겐지와 그에게 당한 여인들'
이라고 생각했다... 쩝;;
이 대단한 주인공 겐지가 누구냐면...기리쓰보 천황과 갱의(천황의 부인으로 황후, 중궁, 여어 다음가는 지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데 '빛나는 겐지'라는 뜻의 히카루 겐지라고 불리며 절세의 미모와 문무 양면에 뛰어난 재능, 총명함을 지녀서 뭐 블라블라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내가 보기엔 그냥 여자에 조낸 미친 새끼

새엄마, 어린 꼬마 여자애, 유부녀, 과부, 시종, 옆집 여자, 아는 여자, 모르는 여자 가리지 않고 다 사랑에 빠지는 정력왕 겐지짱...

겐지가 찝쩍거린 여자가 몇 명이냐.. 세어보려다가 그냥 귀찮아서 안 셀란다. 아무튼 7권에 <구름 저 너머로> 첩을 끝으로 겐지가 죽고 그 이후부터는 겐지의 아들, 손자 격인 가오루와 니오노미야의 이야기로 내용이 전환되는데 이때도 역시 이들 사이의 사랑에 얽힌 고뇌와 갈등이 중심이 되어 전개되긴 하지만, 소설 전반부에 겐지가 살아있을 때와는 사뭇 그 분위기가 달라진다. 특히 책의 8~10권에 해당하는 <하시히메><메밀잣밤나무><갈래머리><햇고사리><겨우살이><정자><떠나니는 배><하루살이><습자><헛된 꿈의 배다리>의 우지10첩(이야기 속에서 '우지'라는 산골지역이 중요한 배경이라 이렇게 부름)은 나는 겐지 이야기를 통틀어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 전반부의 겐지가 살아있을 당시의 이야기는 뭔가.... 뭐랄까... 겐지와 염문을 뿌리는 많은 여자들과 그 틈에서 겐지의 가장 사랑받는 부인으로 남게 되는 무라사키 부인과의 에피소드들이 등장하는데, 나는 내용이 다소 산만하고 겐지의 여성 편력이 그저 계속해서 반복되는 느낌이라 약간 피곤하다고 느꼈다...ㅠ

그렇지만 우지10첩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에 이르는 구조가 딱 갖춰지면서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되어 간다는 느낌이었다. 좀 더 현대적인 소설에 가까운 것 같달까. 세토우치 자쿠초의 해설에 따르면, 아마 무라사키 시키부가 집필할 당시 겐지가 죽게 되는 <구름 저 너머로> 첩과 그 뒤에 겐지의 자손들의 이야기인 우지10첩 사이에는 시간적인 텀이 꽤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애초에 겐지가 죽는 때까지를 소설의 끝으로 구상했다가 나중에 추가적으로 집필하였을 것이라고. 그래서 약간 스타일이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소설 속 시대적 배경이 헤이안 시대이니, 그때 당시의 다양한 풍속들이 책 내용 곳곳에 녹아 있다. 1000년 전 세상의 풍속을 2025년에 사는 나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있는 게 당연할 테지만 진짜.... 뭐 이딴 게 다 있냐 쑈킹이다...라고 느낀 게 몇 가지 있었는데 적어보자면,

충격 1. 당시의 결혼 풍습 중 하나로, 남자가 마음에 드는 여자의 침소에 몰래 들어가 관계를 맺는다. 그 후 사흘간 꼬박 여자를 찾으며(그렇지 않으면 여자는 잠자리는 같이 했으나 남자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이라 여기고 굴욕+마음의 상처를 입음) 사흘째 되는 날 밤에는 축하하며 '사흘 밤의 떡'을 먹고 결혼이 성립된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가택무단침입죄, 강간죄 2단 콤보로 감옥 철컹철컹 각인데 이때는 그랬단다..... 소설 속에서도 겐지를 비롯해 남자들이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자고 있는 방에 몰래 들어가서 여자가 망연자실하고 침통해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마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뭐 몽골에는 약탈혼도 있고.....

사르마티인 여성이 본인의 신랑감을 납치하고 있다. 이것도 헤이안 시대 때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쑈킹한 결혼 풍습이다.

과거에 희한한 결혼 풍습들이 많이 존재했다지만 솔직히 나는 21세기 여성이니까 그냥 받아들일 수가 없고요??? 조또 개 같은 풍습이다^^^읽으면서 저 시대 때 여자로 안 태어난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충격 2. 겐지는 본인에게는 새엄마에 해당하는 후지쓰보 여어에게도 연심을 품고... 결국... 관계를 맺고 둘 사이에 아이까지 갖게 된다. 그 와중에 북산에서 후지쓰보의 조카인 10살 남짓의 어린 무라사키를 발견하고 사랑에 빠져 본인 집으로 데려온다. (당시 겐지는 18살) 자기 입맛대로 곱게 잘 키우고 교육시켜서 나중에 결국 결혼을 한다. 후우...유괴범,아동성애자,가스라이팅의 트리플 범죄의 빛나는 겐지. 물론 당시 여성 결혼 연령이 평균 15~16세였고 남자는 더 어려서 13~14세에도 결혼했다고 하니... 그렇지만 소설 속에서 어린 무라사키한테 연심 품는 겐지에 대한 묘사를 읽는데 솔직히 몰입이 1도 안되고 그냥 징그러웠다..;

이렇게 쓰고 보니 아무리 그래도 무려 소설 제목이 '겐지 이야기'인데 너무 주인공에 대한 욕만 쓴 듯하다. 나 겐지 싫어하냐...?.. 이제 겐지 욕은 그만하기로 하자. 이 소설이 아니었다면 내가 또 어떻게 헤이안 시대 때의 생활상을 알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아마 지금으로부터 1000년이 지난 3025년에 사는 사람이 21세기를 배경으로 쓰인 소설을 읽는다면 미개하다고 느껴지는 풍습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다. 물론 그전에 인류 멸망한다에 내 지갑 속 현금 17000원 전액을 건다.

각설하고, 겐지 이야기에는 인물들의 심리나 풍경, 계절의 변화 등이 아주 세밀하고, 동시에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작중 인물들은 노래나 편지를 통해서 마음을 자주 나타내는데

저녁 해 비치는 봉우리에
흐르는 실구름이여
내 슬픈 상복을 닮아
그런 잿빛인가
함께 그분의 죽음을 애통해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자연의 풍광 속에 본인의 심리를 녹여 표현하는 구절들이 많다. 또 사계절의 변화를 아주 아름답게 묘사하는 문장들도 눈에 띄는데

철철이 다른 사계절 가운데에서도 사람의 마음을 유혹하는 벚꽃이 피고 단풍이 드는 계절보다 눈에 반사되는 투명한 달빛으로 보는 겨울 밤하늘의 정경, 신비로운 무채색의 세계가 마음에 저미어 내세의 일까지 생각하게 되니 그 정취가 한이 없구나. 겨울의 달밤을 무미건조한 정경의 예로 남긴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천박했는가 보다.

경과 염불을 하는 숭고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섞여 있으나 사람의 기척은 거의 없습니다. 세찬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사슴이 울타리 바로 옆에 서 있다가 새를 쫓으려 논밭에 걸어놓은 딸랑이 소리에도 놀라지 않고 짙은 황금색 물결 속으로 들어가 우니, 마치 암사슴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구슬픈 소리입니다.


읽고 있으면 머릿속에 교교한 동양의 산수화 한 폭이 떠오를 만큼 운치 있는 묘사들이 많다. 여성작가라서 더 그런 것인지 몰라도 표현 하나하나가 부드럽고 곱다고 느껴진다. 번역가 김난주 선생님의 노력이 더해져 이렇게 우리말로도 아름다움이 잘 느껴지는 걸 수도.

불교가 융성했던 시대라 불교적인 세계관 또한 자주 등장한다. 소설 속에서 겐지나 또는 겐지의 아들, 손자들과 관계를 맺은 상당수의 여성 인물들은 이 번뇌와 시름으로 가득 찬 속세에서 벗어나 공통적으로 출가를 꿈꾼다. 그리고 겐지가 가장 사랑한 무라사키 부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출가의 꿈을 이룬다. 세토우치 자쿠초가 <겐지 이야기>를 '출가 이야기'라고 바꿔 부르고 싶다고 한 것을 보고 웃음이 나면서 공감이 되기도 했다. 남성 중심의 당시 시대에서 사랑 앞에 그 무엇도 스스로 할 수 없어 수동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던 여성들에게 이 출가는 그들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에는 후반부의 여성 히로인인 우키후네가 니오노미야와 가오루라는 두 남성 사이에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치정의 중심에 휩쓸려 고단한 운명에 놓이게 된 후, 출가하여 가오루의 편지에 대한 답조차 거부하는 장면을 끝으로 이 기나긴 소설은 갑작스럽게 막을 내린다. 늘 출가를 원한다고 하지만, 막상 속세의 연을 끊어내지 못하고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이야기 속 모든 남성들을 향해 비웃으며 전하는 답변 같기도 하여 나는 이 마지막 장면이 꽤 마음에 든다.


10권의 마지막 장을 덮으니 7권까지 읽고 느꼈던 '여미새 겐지와 그에게 당한 여인들'의 이야기가 아닌 듯하다.

주인공 겐지나 니오노미야, 가오루 같은 남성들은 어느덧 내 뇌리에서 흐릿해지고, 대신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온 몸과 마음으로 겪어낸 수많은 여성 등장인물들이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겐지 이야기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나에게 이 소설은 과거에도 존재했고 현재에도, 미래에도 존재할 '사랑을 하는 모든 여인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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