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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Jun 29. 2020

17년간 겪어본 회식문화 변천사

아주 주관적인 내 이야기



(오늘 내가 쓰는 글은 아주 주관적인 이야기임을 먼저 밝혀둔다.)


회식 :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음식을 먹는 것, 주로 회사에서 식사하는 것을 일컫는 말


누구는 회식 때문에 회사를 관두고, 또 누구는 회식 덕분에 회사 다닐 맛이 난다고 한다.


17년간의 회사 생활 동안 수많은 회식이 있었다. 여기서 내가 언급하는 회식은 두 명이든 열명이든 백 명이든 회사 사람들이 모여서 밥과 술이 오가는 자리를 말한다.

나는 보통 일주일에 한 번 회식을 했다. 요즘같이 코로나로 회식이 중단되기 전엔 말이다.


나는 회식을 좋아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싫어한다. 3~4명을 선호하고 두 테이블을 넘겨 이야기가 분산되는 것은 선호하지 않는다. 나이를 먹고 참석자에서 주도자로 변하다 보니 내가 선호하는 회식을 내가 만들어서 하는 편이다. 물론 아닌 경우도 많다.



2019년 <한경>에서 게시한 2030 직장인들의 회식 선호도를 보면 회사에서 입사해 10년 차 이전의 직장인들은 회식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의견이 71%에 달한다.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19111484391

생각을 해보았다.


나 역시 신입사원 때와 연차가 적을 때 회식은 매우 부담스러운 업무의 연장이었다. 회식은 윗분들의 스트레스를 푸는 행사처럼 보였고, 술을 좋아하지만 술을 마시면 감정 조절을 못하는 동료들 때문에 뒤끝이 좋지 못한 경우도 많이 겪었다. 또한, 술을 권하고 뒤치다꺼리도 많고, 흐트러진 사람들을 챙기는 것도 하급자들의 몫이었기에 회식을 하는 날이면 회사에 갑작스러운 일로 늦게까지 근무하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회식은 좋다. 요즘 회식 문화는 그야말로 많이 변했다. 이제 10명 이상이 모이는 회식은 일 년에 한두 번도 많은 편이다. 한 테이블(4명) 아니면 두 테이블(8명)이 적정선이며, 회삿돈(법인카드)을 사용하지 않고 개인들이 각출하여 즐기는 문화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부담스러운 술자리는 줄었고, 회사 경비는 점심 도시락이나 그 외 건강식품, 회사에 필요한 개인물품(최근엔 마스크)을 함께 구매해서 나눠주는 것으로 변했다.

(물론 우리 부서만 그럴 수도 있다.)


암튼 아주 주관적인 내 회식 경험의 변천사를 풀어보겠다.




1. 조직력 강화 행사

보통 분기별로 1번 진행을 하는데, 회사 경기가 좋을 때는 온종일 행사를 했었던 적도 있다. 요즘은 보통 오전 근무를 하고 오후에 부서원들이 모여 간단한 스포츠 행사나 영화 관람을 하고 저녁을 먹고 헤어지는 것으로 바뀌었다.


처음 입사했던 그해 우리 회사는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내고 있었다. 그래서 이 행사도 아주 성대하게 치러졌다.

버스를 대절하여 강 하류의 넓은 벌판으로 수백 명이 이동해서 체육대회를 진행했었다. 벌판에 그늘막을 치고, 각 팀별 조직별로 부스를 만들어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행사요원들의 진행에 맞춰 선수들을 내보내면 그들은 팀 대항 체육활동을 했다. 축구 / 발야구 / 농구 /... 많은 경기와 응원이 진행되었고, 팀별 장기자랑을 준비하기도 했다. 장기자랑은 항상 신입사원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무대에서 보기 좋게 망가졌고, 항상 “~~ 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와 같은 문구로 마무리했었다.


배 터지게 먹고 마셨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실컷 자고 나면 회사에 도착했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끼리끼리 2차 회식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미 몸이 피곤한 상태라 대부분 집으로 돌아간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나는 단체 체육행사를 통해 조직력이 강화되는지? 궁금했었다. 하지만 수년간 지속했었다. 연차가 쌓이면서 등산 / 해병대 훈련 입소 같은 약간의 과한 행사들에 참여하기도했다. “꼭 이렇게 체력적으로 극한 상황으로 몰아가면서 동기애와 조직력을 고취시켜야 하는가?”에 커다란 의구심이 생겼다. 그냥 해오던 대로, 선배들에게 배운 대로 계속 이어나가는 것 아닌가? 생각했었다.


2020년. 지금 이런 행사는 모두 없어졌다. 아니 조직력 강화 행사는 있다. 하지만 단체로 회사 주변을 한 시간 정도 걷는 것으로 변했다. 그리고 회사 운동장에 팀원들이 둘러앉아 음식을 먹으며 초대한 공연을 보고 시상식을 즐기는 정도다. 참석도 자율이나 많은 분들이 참석한다. 그곳에서는 무엇을 강요하는 것도 없고, 다들 자차로 퇴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술도 마시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규모 축제 같은 형식으로 변했다고 할까?




2. 송년회

신입 때 내가 가장 싫었던 것이 송년회다. 커다란 대연회장을 빌려 백여 명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행사를 진행했다.

사회자가 있었고, 팀별로 장기자랑을 준비해서 임원과 간부들을 모셔두고 공연을 했다. 불량 박멸, 수율 100%, 무사고 안전과 같은 구호를 필두로 팀별 장기자랑이 펼쳐졌다. 장기자랑에 뽑힌 멤버들은 송년회 며칠 전부터 업무에서 열외되어 준비를 했었다. 이건 내 조직의 리더 성향에 아주 많이 영향을 받는데, 당시 우리 조직의 리더는 장기자랑을 좋아했었다.


정말 할 것 없는 팀은 합창을 했고, 어느 팀은 연극을 준비하고, 춤이나 노래 같은 개인기가 좋은 멤버를 보유한 조직은 그들을 앞세웠다.

이것도 3~4년 보다 보니 그 나물의 그 밥이었다. 연말에 진행되는 행사라 송년회 1등을 한 조직에게는 부상으로 100만 원 회식비 이런 것들이 지원되었다. 소고기 먹자며 목숨 걸었던 부서가 많았다. 다행히 우리 팀장님은 회식비에 목숨 걸지 말자고 하셔서 좋았던 것 같다.


지나고 보면 모두 아름다워 보인다고 했다. 지금 기억 속의 그날들은 어수선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분명 내가 참가한 무엇이 있었을 텐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뭐였더라?




3. 진급자 회식

매년 3월에 진급 발표가 났다. 3월은 소고기를 먹는 달이었다.


진급자는 선후배로부터 축하를 받았고, 축하의 대가로 돈을 냈다. 적게는 몇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까지. 물론 한 번의 술자리에서 그렇게 많은 돈을 내는 것은 아니지만, 조직원이 많고, 축하자리가 많을수록 진급자들은 부담이 된다. 다들 먹을 때는 비싼 거 먹자 하고는 막상 자신이 진급하면 그것을 토해내야 해서 배 아파했다. 많은 지출 때문에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왜 진급을 하면 소고기를 먹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것도 관행인 듯했다. 20~30명 정도가 고깃집 홀을 통째로 빌려 진급자들을 축하했다. 사회자 앞으로 일렬로 진급자들이 서있었고 진급 축하주를 마셨다. 소주 1잔 맥주 1잔이 아닌 냉면사발, 젓가락 통 같은 곳에 소주 1병을 넘게 따라주는 일명 사발주를 마셨다. 술이 약한 친구들은 야유를 받았다. 마시고 곧바로 화장실로 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진급자들은 즐거워했다. 그만큼 회사에서 진급은 기쁜 일이다.


문제는 참석자들의 태도였다. 오늘은 남 돈으로 소고기를 먹는 날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눈치 보지 않고 엄청난 양의 고기를 주문했다. 계산서에 수십 개의 줄이 그어지는지도 모르게 그어졌고 고기가 테이블로 배달되었다. 그들은 굽고 또 구웠다. 질기다며 태웠다며 고기를 버리고 새로 주문하기도 했다. 난 그런 광경을 보면서 정말 아연실색했다. “자기가 내는 돈이면 저럴 수 있을까?”


점점 정신이 흐트러지고 술병이 나뒹굴 때까지 붓고 마셨다. 평소에 먹던 식사도 그날은 멀리하고 고기로 배를 채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고깃집 주인은 냉동고에서 고기를 꺼내며 계속 웃었고, 진급자들은 술에 취해 상황 파악이 안 되었다. 나중에 계산서를 보고 놀랄일만 남은 것이다. 수백만 원이 적힌 계산서를 몇 번 봤다. 진급자들은 최소 몇십 만원씩 각출해야 했다. 안타까웠다.


소고기가 지겹다며 대게를 먹자고 하는 리더도 있었다. 평소에 쳐다보지도 못하던 고급 일식집에서 인당 10만 원을 호가하는 코스를 시키기도 했다. 진급자들은 그들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며 그들의 진급 날이 오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조직은 계속 쪼개고 뭉쳐지며 사람들은 순환되었다.


그러면 지금은...


지금은 정말 많이 변했다. 공식적인 진급자 회식은 회사 경비로 진행한다. 리더가 진급자들을 데리고 가서 그들과 근사하게 식사를 하고 선물을 전달하고 회삿돈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공식 회식 이후 개인적인 축하자리는 사람들의 인맥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예전에는 공식자리부터 진급자들의 등골을 빼먹는 회식이었다면 이제는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참고로 올해 내가 부장으로 진급을 했는데, 아직 진급자 회식을 못했다. 코로나 사태로 공식 회식이 전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후배들에게는 소주 한잔하며 슬쩍 내가 계산을 하기도 했다. 내가 진급하게 된 것은 내가 잘나서 진급한 게 아니라 그들과의 협업의 성과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들에게 뭐라도 사주고 싶은 게 내 마음이다. 비록 비싼 소고기는 못 사줘도 삼겹살에 소주 한잔은 언제든 사줄 수 있어서 좋다.




4. 조촐한 내부 모임

사실 회사생활의 묘미는 바로 이 조촐한 모임이 아닐까? 내가 술을 좋아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내 책상 주변의 동료들, 그리고 메신저를 통해 업무/비업무를 이야기하는 동료들과 “한잔할까?”라는 얘기를 꺼내며 자연스럽게 자리를 만든다.

둘, 셋, 넷, 다섯 딱 그 정도 사람들을 모으고 약속시간을 정한다.

그리고 이동할 차량을 정하고 모여서 함께 출발하기도 하고, 따로 출발하여 식당에서 만나기도 한다.


예전에는 선배들이 장소를 주로 정했는데, 요즘은 내가 선배이다 보니 나보고 정하라고 한다. 그러면 가장 핫한 지역과 메뉴 4~5가지를 건네며 선택은 후배들에게 넘긴다.

보통 나는 집에 차를 두고 걸어서 이동한다. 천안이 좁다 보니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가 요즘 가장 핫한 곳이 많아서이기도 하고, 조금 멀어도 운동삼아 걸어간다. 가끔 가는 길이면 후배가 집 앞에서 기다려주기도 한다. 장소가 멀면 차를 두고 택시로 이동한다. 요즘은 이게 편하다.


신입사원 때도 지금도 이런 자리는 항상 있어왔다. 회사일도 인간관계다. 그러다 보니 친분이 쌓이고, 그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점점 두터워지는 것이다.

비단 회사일에 대한 고민뿐만 아니라 취미를 공유하고, 주변의 근심 걱정거리와 웃을 이야기를 함께 나눈다.


사실 이 맛에 회사 다니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이 시간을 통해 동료를 만들고, 이 시간을 통해 오해를 풀어 관계를 회복한다.


이 모임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변한 것은 우리들의 나이와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한다는 것 정도...





나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좋다. 분명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그래도 좋다. 바로 사람들 때문이다.

세상에 좋은 사람들만 있을 수는 없고, 어느 조직이나 미친놈은 있다. 오죽하면 “또라이 불변의 법칙” “또라이 보존의 법칙”이 나왔을까?


그래도 회사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인식한다.

그들의 다양한 시각 속에서 내 관점도 트인다. 그게 좋다.


그들과 좀 더 오래 일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물론 그들과 좀 더 오래 소주한잔 할수 있기도...



- 브런치 작가 김경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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