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흔을 넘겨보니 알게 되는 사소한 삶의 지혜
공자는 마흔을 불혹이라고 했다.
어떠한 상황이 와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나이.
마흔을 넘겼나 싶었는데 벌써 마흔다섯이다.
마흔 이후 내 삶은 점점 속도를 내는 것 같다.
요즘 깨우친 것이 있는데, 마흔이라는 나이는 “젊음”이라는 단어로 멋을 부리기보다는 “관록”이라는 단어로 분위기를 뽐내는 나이라는 것이다.
또, 마흔에 가지게 된 내 얼굴과 몸뚱이의 모습은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삶을 오롯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물론 외모는 바꿀 수 있다. 살을 뺄 수도 찌울 수도 있다. 하지만 얼굴에서 번지는 인상과 웃음, 걸음걸이, 말투 같은 것은 더 이상 고쳐내기가 싶지 않다. 그것이 마흔이다.
열 살 때는 삶이 무언지 모른 채 어른이 되기를 바라며 살았다.
스무 살 때는 마음껏 자유하며 살았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서른에는 무작정 열심히 남들을 쫓아 성공이라는 허상을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마흔.
마흔은 이제 내 삶을 사는 것을 터득해야 한다. 타인의 시선에 대답하는 삶을 끝내고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진짜 나의 삶 말이다.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가?”에 삶으로 답하기 시작해야 하는 나이가 바로 마흔이다.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른 채 달려왔던 내 삶에서 이제는 내 위치를 가늠해야 할 때다. 아직 살아야 할 시간이 더 많다. 축구로 치면 이제 하프타임인 것이다.
거칠었던 숨을 가다듬고, 잠시 신었던 신발을 벗어 발을 말리자.
땀에 젖었던 옷을 새 옷으로 갈아입고, 양말도 뽀송뽀송한 것으로 갈아 신자.
그리고 신발끈을 다시 질끈 동여매자.
처음보다 더 쉽게 지칠지 모르지만, 이제는 삶이라는 문제에 제법 노련해졌다. 노련한 사람들은 쉬이 땀이 나지 않는다.
마흔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삶을 버리라는 것이라 아니다. 지금까지의 삶의 연장선에서 나다움을 발견해 그것을 통해 내가 만족해하고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하자.
마흔은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
내가 웃어야, 타인도 웃는다. 멋쩍어도 웃자.
세상이 아무리 삭막하고, 한 발 뒤처지면 낙오되는 그런 경쟁사회라고 말하지만 세상은 결국 사람이 사는 곳이다. 그리고 사람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지배당하는 동물이다.
뒤쳐짐보다는 조금 느리게 간다고 생각하자. 자신만의 속도로 걸어가자.
이제 나답게 걷자.
그게 마흔이 바라볼 삶이다.
그게 인생이다.
- 브런치 작가이자 유튜버 김경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