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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Sep 23. 2020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음악 덕분에 타임머신을 탔다

신성우의 <내일을 향해>를 듣자마자



깜짝 놀랐다.


그때 나는 얼큰히 취한 상태에서 택시 뒷자리에 기대어 흐릿한 눈으로 세상을 흘러가고 있었다. 두어 시간의 술자리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지나가는 풍경에 어우러져 이리저리 흩어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에 웃었는지, 중요한 이야기가 있었는지 술자리 대화를 기억해내려 애썼지만 되감는 속도보다 사라지는 속도가 빨랐다.


그러다 문득 귀가 쫑긋 세워졌다. 라디오를 틀어놓은 줄 모른 채 한참을 시트에 박혀있었는데 익숙한 반주 때문에 라디오 주파수에 내 정신줄이 맞춰진 거다.


‘이게... 무슨 노래였더라?’ ‘너무 익숙한데...’


가사가 시작되기 몇 초 전 나는 그 노래가 신성우의 데뷔곡 <내일을 향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흐흐흐. 노래방에서 참 많이도 불렀던 노래였었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이미 20여 년 전으로 떠나고 있었다.




1995년. 

학생회관 2층. 신입생 환영회 시간.


누구의 추천으로 내 손에 마이크가 쥐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여하튼 나는 과별 노래 경쟁무대에 올라섰다. 2~300명 정도가 모여있는 정신없던 그 순간, 무반주로 5초 안에 노래를 발사해야 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내 입에서 신성우의 <내일을 향해>가 터져 나왔다. 

최신곡도 아니었고, 이유도 모르겠다. 물론 준비된 것도 아니었다. 노래를 잘하지도 못하지만 그냥 아무렇게나 쌩~~ 목으로 터져라 불러댔는데 10초도 넘기지 않아 내 노래는 떼창으로 변했다.

과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마이크를 넘겨가며 흥에 겨웠던 그 순간, 가슴이 벅찼던 바로 그 순간이 택시 뒷자리에서 소환되었다.


그때 나는 젊었고, 대책 없었고, 즉흥적이었고, 열정 덩어리였다. 막무가내였고, 뭐든 고민 없이 일단 내질러보던 때였다.

그 순간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라디오 음악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내일을 향해서라면 과거는 필요 없지, 힘들은 나의 일기도 내일을 향해서라면...”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나는 또 한 번 기억을 소환해냈다. 추억의 타임머신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버린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노래방에 간 날. 

고3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짝꿍과 나 그리고 옆자리 친구들 이렇게 넷이서 야자를 땡땡이치고 학교 밖에서 저녁을 먹다가 노래방에 가지는 말이 나왔다. "학생이 노래방을 가도 되나?"라는 내 머릿속에 들었었던 기억이 난다. 난 참 모범생이었다. (노래방 출입이 모범생의 기준은 아니지만 그때는 학생이 가면 안 되는 곳이었다.)

친구들의 등쌀에 못 이겨 과감히 나는 학교 앞 시장통 지하의 노래방으로 금단의 선을 넘어갔다. 


친구 앞에서 노래한다는 것이 창피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또, 녀석들은 어찌나 스스럼없이 노래를 잘도 불러대는지. 내 차례가 왔는데, 아는 노래는 많은데 '내가 제대로 부를 수 있을까?'라는 완벽을 생각하다 보니 노래를 정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빨리 선택하라는 성화에 고른 곡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아웃사이더>였다.

내 노래방 첫 곡. 


"더부룩한 머리에 낡은 청바지 며칠씩 굶기도 하고, 검은색 가죽점퍼를 입고 다녀도 손엔 하이데거의 책이 있지."


제대로 잘 불렀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데 마이크를 잡은 손과 목소리가 떨렸던 기억은 난다. 한 시간 넘게 노래를 부르고 나와 조용히 교실로 돌아가서 책상에 앉았지만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그냥 택시를 탔고, 택시에서 라디오를 들었고, 그게 추억의 노래였을 뿐인데 나는 온몸으로 짜릿했던 추억들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때 그 추억들이 아름답다고 생각이 되는 건 분명 즐거웠기 때문일 거다. 


가끔 이렇게 문득 과거의 특정 시점이 떠오를 때가 있다. 분명 기억 속에 있었던 순간인데 단 한 번도 떠올려보지 못했던 순간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이럴 때마다 내 머릿속 창고에서 이걸 꺼내어 내게 보여준 내 속의 또 다른 나는 분명 내게 이 생각이 지금 필요한 순간임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을 영원히 각인해두려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쓴다. 

이렇게 기록을 해두면 그 추억은 영원히 내 것이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행복하다.


- 브런치 작가 김경태 -


#타임머신 #추억 #소환 #추억여행 #기시감 #노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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