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에게서 배우는 대통령의 리더십 (3편)
(2편에 이어)
< 대통령 링컨 >
1861년 3월 4일 링컨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됩니다.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취임을 할 때까지의 4개월 동안, 7개의 남부 주가 ‘합중국’에서 분리 독립을 하겠다는 결의안을 통과시킵니다. 링컨은 노예제 폐지를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공화당 내에서도 노예제를 인정하는 온건파와 반대편의 강경파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링컨은 이 사태 즉 분리독립이라는 문제의 심각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이 분리독립의 문제는 “자유로운 국가에서 국민 중 특정세력이 원하면 언제든 국가와의 관계를 끊어낼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미 연방 대통령이 문제를 바로 잡지 못하면 앞으로도 비슷한 문제가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링컨은 아주 강력한 내각을 구성합니다. 개인적인 주장이 강한 국무부, 재무부, 법무부 수장을 뽑아서 자칫 잘못하면 지리멸렬한 집단이 될 수 있었지만, 미 합중국을 향한 충성심만은 확고부동한 인물들로 추렸습니다. 훗날 이 첫 내각의 인물들이 결국 미 합중국의 가장 커다란 과제였던 노예 해방 문제를 해결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책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 3장에서는 소제목을 중심으로 짧은 단락들이 펼쳐집니다. 이 소제목들만 읽어봐도 링컨의 정치적인 방향과 리더십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첫 소제목은 바로 “정책이 실패하면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라”입니다. 이 제목에 걸맞은 에피소드를 통해 링컨의 의사결정 과정과 생각의 전환 사례를 보여줍니다.
다음 소제목은 “먼저 정보를 수집하고, 끈질기게 질문하라”입니다. 링컨이 재임하던 당시 노예제로 인해 남북전쟁이 한창이었습니다. 이 시기의 이야기를 볼 수 있는 좋은 소설이 바로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죠. 여담으로 이 소설(물론 영화가 더 유명합니다만)에서 여주인공 스칼렛은 남부 조지아주 타라의 대농장 주인의 딸이죠. 책이나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처음 남부에서는 자신들이 전쟁을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남부의 상황이 불리해지고, 대농장의 지주였던 스칼렛 가문은 점점 힘들고 피폐해집니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들이 남북전쟁에 참여해 목숨을 잃거나 다쳐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링컨이 이 소설의 시점에 대통령이었던 인물인거죠.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초반 남부군이 유리했던 이유는 노예를 활용할 수 있어서였습니다. 노예들이 참호를 팠고 요새를 지었습니다. 또 그들이 요리를 했고 심부름과 간병을 했죠. 그래서 군인들은 전쟁에 몰입할 수 있었고 승기를 잡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링컨은 남군에게서 노예를 빼앗는다면 북군이 유리한 군사적 이점을 확보하게 될 거라는 판단을 하게 되고 그 점을 파고들어 승기를 잡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전쟁은 명분이 가장 중요합니다.
링컨은 전쟁 초기에 “북군이 미 합중국을 유지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지, 노예제도를 간섭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하며 여론을 이끌어갑니다. 그는 “노예해방이라는 무기”를 일방적인 군사적 명령으로 발표하는 걸 두려워했습니다. 그건 로마의 카이사르나 프랑스의 나폴레옹 같은 독재를 경계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국무위원들을 설득했고, 여러 종류의 다른 견해들을 예상하고 그것에 대비하며 철저하게 주장을 가다듬었습니다. 링컨은 노예해방 선언문 공포하기 위한(관보 등을 일반 국민에게 널리 알리다 promulgate, proclaim ※ 공표하다 : 여러 사람들에게 공개하여 널리 알리다 announce, make public) 때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쟁터로부터 승리의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던 중 앤티텀 전투(미국 역사상 하루에 가장 많은 피를 흘린 전투로 기록되어있음)에서의 승소식을 통해 계획을 시행하게 됩니다.
그는 노예해방 선언문 초안을 다시 수정했고 국무회의를 소집해 국무위원들의 동의를 끌어냅니다.
이 과정에서 링컨의 확실한 리더십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역사적으로 중대한 결정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떠맡았고 국무위원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습니다.
링컨은 어떤 방법으로 오만하고 야심차며 논쟁적이고 질투심이 하늘을 찌르던 그 유능한 사람들이 국가의 변화를 지지하도록 설득했을까요? 이 책에서는 바로 링컨의 “감성지능”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링컨은 그들의 정서적 욕구를 이해했고, 과거 서로 원망하던 사이더라도 그것이 문제를 만들어내지 않을 수 있도록 개인적인 원한을 초월한 관계를 형성하였습니다. 또한 상호 존엄의 기준을 세우고 분노를 조절하여 날 선 비난을 참고 또 참아냈습니다. 결국 링컨은 내각의 모든 국무위원에게 영감과 용기를 북돋워주며 그들을 변화시켰습니다. 이런 팀 리더십은 “위대함은 선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됩니다.
1862년 9월 22일 링컨은 노예해방 선언을 공포했고 1863년 1월 1일 이 선언의 법적인 효력이 발휘됩니다. 효력을 발휘하는 100일간이 바로 링컨의 내각을 시험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저는 이 기간 동안의 사례들을 읽으면서 현재 우리나라 정치적 상황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비교될 수는 없겠지만 현재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공수처 설치 문제로 정부와 국회 그리고 국회 내에서도 여당과 야당이 싸우고 있죠.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타협하고 해결해 나갈까요? 정답이 없는 문제를 슬기롭게 타협과 설득으로 합의점을 찾아가게 될 것인데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을 꼭 한번 공부해봤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이 책에서 링컨의 리더십을 “변혁적 리더십”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학자들이 거래적 리더십의 상반되는 유형으로 변혁적 리더십을 언급하는데, 거래적 리더십은 실리적인 생각과 행동에서 비롯됩니다. 그들은 추종자들의 개인적 이득을 자극하죠. 거래와 교환의 보상을 통해 추종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그들의 행동에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한편 변혁적 리더는 추종자들에게 자신보다 더 큰 무엇(조직이나 공동체, 지역, 국가 등)과 자신을 동일시하라고 독려합니다. 도덕적 원칙과 고결한 목표를 위해 희생을 요구하며, 현재의 순간을 넘어 노력해서 얻을만한 가치를 지닌 미래를 설정함으로써 이타주의에 가치를 부여합니다.
링컨 같은 경우는 이 두 가지 리더십을 적절히 안배하여 기본적으로 타인을 설득할 때 거래에 기반을 두지만 사실상 훨씬 더 차원 높은 가치를 바라볼 수 있도록 상대의 마음을 부추겨 내 편으로 만드는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맨 밑바닥의 민심을 두루 살필 줄 알았습니다. 그는 그가 머물고 있는 워싱턴 주변의 군대와 전쟁터를 수시로 방문하면서 병사들과 함께 식사하고 막사를 둘러보고 대화를 나눕니다. 또한, 부상당한 병사들에게는 북군/남군 따지지 않고 똑같이 보살필 수 있도록 조치했습니다.
혹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링컨> 보셨나요? 이 영화를 보면 첫 장면에서 전쟁터에서 흑인 병사들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링컨의 모습이 나옵니다. 병사들이 머무르고 있는 현장에서 링컨이 직접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죠. 스티븐 스필버그도 링컨의 이런 모습이 전쟁 당시 북군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해석하고 첫 장면에 이런 신을 넣지 않았을까요?
또한, 링컨이 북부군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이 바로 흑인들의 입대를 이끌어 낸 것이었습니다. 북부군은 백인과 흑인이 섞여있었는데 관행처럼 흑인은 백인보다 월급도 현저히 낮았고 처우도 좋지 못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링컨은 흑인 병사도 백인 병사와 동일한 임금을 받게 될 것을 약속합니다. 그 결과 거의 20만 명에 달하는 기록적인 숫자의 흑인들이 입대하게 됩니다.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은 1861년부터 1865년까지 4년간 이어지게 되는데 이 전쟁 중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설로 회자되는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이 나옵니다. 1863년 11월 19일에 게티즈버그에서 했던 연설인데, 300 단어도 되지 않는 2~3분의 짧은 연설입니다. 여러분들이 다들 알고 계신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이 문장이 수록되어있죠. 이 연설은 남북전쟁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게티즈버그 전투가 있은지 4개월 후 전장에 세워진 국립묘지 봉헌식에서 이루어집니다.
전쟁 중 수많은 우여곡절의 가운데 1864년 링컨은 대통령에 재선 되면서 탄력을 받아 노예해방을 행정명령에 머물지 않고 헌법 수정을 통해 국법으로 명문화시키는 작업에 착수합니다. 이 헌법이 유명한 “수정헌법 13조”인데 링컨은 살아생전에 이 헌법의 비준을 보지 못하고 죽습니다.
미국은 링컨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링컨이 흑인 노예를 해방하는 이 과정은 미국의 사회적 변화과정의 핵심 포인트가 되고 링컨은 이 과정에서 산파 역할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링컨이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존경받는 이유인 거죠.
이제 마지막 링컨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865년 4월 14일 금요일. 링컨은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날을 맞이합니다. 링컨은 이날 저녁 포드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유명 배우이자 남부 지지자였던 존 윌크스 부스는 링컨을 극장에서 암살합니다. 링컨이 연극을 관람하고 있을 때 뒤쪽에 접근해서 머리를 겨냥해 권총의 방아쇠를 당겨 치명상을 입힙니다. 그리고 그는 경호원들의 추격을 뿌리치고 도망치지만 열흘 뒤 버지니아의 농장에서 사살당합니다. 링컨은 치명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서 혼수상태에 빠진 뒤 9시간 후인 4월 15일 오전 7시 22분에 사망하게 됩니다. 이렇게 위대한 인물 한 명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고, 당시 부통령이던 엔드루 존슨이 대통령직을 승계받게 됩니다.
링컨의 이야기는 미국, 미국 민주주의의 탄생, 아메리카 합중국에서 자유의 발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링컨은 민주주의에서 리더의 강점은 국민과 하나가 되는 결속력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잠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링컨은 미국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문제들에 몰입하는 리더로 꾸준히 성장했고, 미국을 끌어가는 욕망과 미국에 봉사하려는 열망이 그의 내면에서 하나로 결합해 불굴의 힘으로 성장했습니다. 그 힘은 이후 수많은 리더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우리에게는 미래를 향해 나아갈 도덕적 나침반이 되어 주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한 과정에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두 세력이 부딪쳐 권력을 두고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또한 언론/검찰 역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며 국민들의 혼란의 화염에 기름을 붓고 있습니다. 무엇이 맞고 틀린지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 부분에도 말씀드렸듯 이 혼란이 어서 수습되고 안정된 국가로 돌아갔으면 하는 것이 국민 모두의 바람일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을 링컨에서 찾아보는 것이 어떨지 감히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제안해봅니다.
지금까지 긴 글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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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이야기)
https://brunch.co.kr/@maniac292929/188
(2편 이야기)
https://brunch.co.kr/@maniac292929/189
참고 - 책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이 궁금하시면 아래 영상 클릭!!!